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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희철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장

김진호기자
등록일 2009-02-02 20:20 게재일 200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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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회를 비롯한 교포사회가 축제분위기에 빠져있다. 지난 달 29일 국회 정개특위에서 `재외국민에 대한 참정권 부여와 관련한 선거법' 등이 여야 합의를 거쳐 통과했기 때문이다. 법률적 효력발휘를 위해서는 이달초 열릴 본회의에서 의결돼야 하지만, 천재지변이 없는 한 재외국민이 투표권을 얻게 된 것은 기정사실화 됐다.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이 박탈된 것은 지난 1972년 유신헌법 이후부터다. 유신헌법에서는 부재자투표를 할 수 없게 돼 있어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권이 국내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줘야한다는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단체가 있다. 바로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다. 현재 재외국민 유권자단체로서는 유일하게 전세계 조직을 갖춘 모임이다.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장을 맡고있는 배희철(69)씨는 포항출신으로서 30년전 미국으로 이민가 성공한 재미교포다. 배 회장을 만나 재외국민 참정권 회복운동에 뛰어 들게된 동기와 경과,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미국에는 언제 건너갔습니까.

▲내가 미국으로 이민간 것이 30년전인 1979년입니다. 당시 친척 가운데 한 분이 UN에 근무를 하고 있었는 데, 이 분의 초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캘리포니아주 임페리얼 카운티에서 20년 정도 살다가 약 10년전 LA로 이사 와서 살고 있죠.

-미국에서는 어떤 사업을 했습니까.

▲국내에 있을 때 범신전기라는 전기제품 제조회사를 운영하기도 했고, 사금광으로 금을 생산하는 한국산금개발주식회사도 운영하다가 정리를 하고, 미국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주로 가전제품 도·소매업을 해 왔습니다. TV나 비디오, 카메라, 냉장고 등 일상 생활에 쓰이는 가전제품을 모두 취급했죠. 지금은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 일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재외국민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 지 궁금합니다.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설 시기로 기억됩니다. 어떤 재미교포가 한국에 들어왔다가 병역법 위반으로 나가지도, 그대로 있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을 보고, 이런 일은 없어야 겠다고 생각해 병역법 개정을 위해 나섰던 것이 발단이 됐습니다. 그 당시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에 소속해 있던 내가 이 일을 전담해 병역법을 개정하려고, 병무청을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녔지만 조금 나아졌을 뿐, 근본적으로 법을 고치지는 못했습니다. 그 때 재외동포 관련법이나 출입국 관리법 등에도 불합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법을 바꾸려면 재외국민도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돼 시작하게 됐죠.

-어떤 절차를 통해 참정권 운동을 진행했습니까.

▲지난 2004년, 현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홍준표 의원을 미국으로 초청해 미주 한인밀집지역 5개 대도시에서 토론 및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여기서 동포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국회에서 법안 발의를 하도록 했고, 또 한편으로는 재외국민 참정권을 회복하기 위해 2005년 5월6일 헌법재판소에다 재외국민 참정권 회복을 위해 제소를 했습니다. 이게 가장 결정적인 변수가 됐어요. 이 때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고문변호사이던 김재수씨와 캐나다한인회 총연합회에서 홍준표 변호사를 법정대리인으로 해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평등권과 선거권을 침해했다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07년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재외국민 선거권 제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고, 2008년 12월31일까지 개정할 것을 명령했어요. 그 실현이 이번에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참정권 운동을 위한 모임 결성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지난 2006년 12월 15일 저와 김재수 고문변호사가 공동대표 자격으로 로스엔젤레스 로택스 호텔에서 `해외동포 참정권연대 결성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 공식 모임의 출발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몇 달뒤 서울에서도 참정권 연대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를 새롭게 결성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는 참정권 연대의 활동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끌어 낸 이후에 발족했습니다. 참정권의 확보가 끝난 만큼 그 다음 단계로 투표권 행사를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봤고, 이를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7년 8월30일 로스엔젤레스에서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 창립총회를 열었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2월25일 광화문 라마다호텔에서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이때도 저와 김재수 변호사가 공동대표를 맡았죠.

-재외국민 참정권 운동에 힘쓴 단체가 얼마나 됩니까.

▲앞서 말한 참정권 연대와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 2개 단체가 가장 많은 힘을 썼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다만 그동안 별로 신경도 쓰지 않다가 법안이 정개특위를 통과하는 등 성과가 나온 뒤 여기저기서 참정권 운동에 힘을 썼다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져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이번 재외국민 투표권에 관련된 법안 협상과정에서 총연합회가 가장 많은 애를 썼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2007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고 난 뒤 총연합회에서는 그 해 연말에 있는 대선부터 참여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찬성했지만, 민주당에서 반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민주당에서는 재외국민중 단기체류자에게 참정권을 먼저 주고, 영주권자에게는 추후 참정권을 주는 방향의 얘기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민주당 장상 최고위원, 김영진 의원 등 민주당 중진의원이 LA방문때 교포들을 만나고 교포사회의 분위기를 많이 느끼고 돌아간 것이 민주당의 태도가 바뀌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실제로 민주당이 영주권자에게도 투표권을 주기로 한 것을 당론으로 정한 사실도 LA서 먼저 발표됐고, 연합회는 이 사실을 국내언론에 알려 대서특필되도록 힘을 쓰면서 국회 정개특위에서 극적으로 법안이 통과된 셈입니다.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의 회원들은 어떤 분이며,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는 재외국민 참정권 운동을 하던 주요국 한인회 전·현직 회장과 기타 단체장들이 참여해 만든 단체입니다. 회원은 약800명인 데, 이 가운데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는 회원들이 700여명 정도가 됩니다. 재외동포 가운데 여론주도층이죠. 창립총회때 200여명의 회원이 참석했고, 올해 6월에 총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제 법안 통과가 눈앞에 왔으니, 보람도 많으실 것으로 생각되는 데요.

▲당초 김재수 변호사와 둘이서 참정권 연대 부터 시작해 재외국민 참정권 확보를 위해 뛰어 왔는데, 김 변호사가 총영사로 발령받아 나가는 바람에 혼자 책임을 맡아 말못할 고생을 했습니다. 헌법소원도 받아들여질 지 확신하기 힘든 상황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을 때가 많이 기뻤습니다. 이제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어 조만간 그동안의 고생을 깨끗이 잊을 수 있게 됐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LA에서 조촐한 축하파티라도 열 생각입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포항시 여천동에서 태어난 배희철(69) 세계한인유권자 총연합회장은 포항초교와 포항중학교, 경산 진량고를 거쳐 대구대 공업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가 전자제품 도·소매업체를 운영해 재산을 모았고, 지난 2003년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맡으면서 재외국민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참정권운동에 매달리면서 아예 자신의 사업도 정리하고, 재미교포 권익옹호에 앞장서 왔다. 미주한인회총연합회 이사장과 재외국민 참정권 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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