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끝난뒤 맛본 소중한 시간
이강산 영일고 3-4
17일 새벽 5시 30분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서 학교 집합장소에 도착했다. 가는 길은 너무 캄캄해서 약간 무서웠지만 봉사를 한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비록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피곤한 기색보다는 뭔가 기대에 찬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봉사를 몇 번 안 해서 피곤에 절어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달려 녹동항에 도착했다.
‘아! 이제 소록도에 가서 봉사를 하는구나’ 하는 게 실감이 났다. 첫 날부터 어르신들을 만나 봉사하는 기대에 부푼 나는 약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첫 날은 피곤하다며 봉사는 안하고 오리엔테이션만 했던 것이다. 오후시간 내내 한센병이란 무엇이고 소록도란 어떤 곳이고 어르신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고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한센병은 그 균이 공기 중에 3초이상 살수가 없고 전염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병에 걸려 고통받는 어르신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이런 분들에게 힘이 돼주고 손발이 돼 주는 일을 하러 온 내 자신이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이런 기회를 주신 교장선생님과 올 수 있도록 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여기저기 구경을 한 첫 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약간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돼서 기뻤다. 학교에서만 있었으면 한센병이 뭔지 어떻게 알았을 것이며 여기 어르신 같은 분들이 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첫날밤이 지나고 둘째 날 아침 긴장반 설렘 반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내가 봉사를 할 녹생리에 갔다. 솔직히 어르신들을 처음 보면 무서우면 어떻게 하지 했던 걱정과 달리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같다고나 할까 너무 평범한 것 같았다. 일단 사무실에서 지시를 받고 열심히 봉사를 했다. 열심히 하려고 마음은 앞섰지만 막상 청소하는데 벌레들이 나오고 방에서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나는 걸 맡으니까 순간 욱하는 느낌이 드는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평소 방청소도 스스로 안하고 바퀴벌레도 안 잡아본 나에게는 정말 힘들었지만 의지로 극복해 냈다. 지금은 뭐가 나와도 무덤덤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날은 이렇게 청소만 하고 끝이 났다. 셋째 날은 정말 인상 깊었던 하루 같다. 바로 신현복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시는 것 같았는데 우리에게 너무도 주옥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봉사하러 온 학생들은 봉사자가 아니라 당신 자신 안에 있는 예수님을 찾아 온 천사들이라는 것, 단순히 봉사만 하러온 나에게 할아버지의 말씀은 신선한 충격이고 너무나도 감사한 말씀들이었다. 당신은 비록 통장에 돈 한 푼 없지만 이 소록도에서 제일 부자라 자부하시는 할아버지, 바로 마음의 부자라 자부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는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경쟁위주로 물질만을 추구하며 살려고 한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봉사의 기쁨뿐만 아니라 인생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소록도에 와서 청소만 하며 약간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 때쯤이었다. 다른 마을에 농을 좀 옮겨 달라는 부탁을 받고 농을 옮기는데 차라리 청소를 할 걸….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정말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했지만 힘들면 힘들수록 짜증보다는 기쁨이 포기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조금만 더 열심히 라는 의지와 오기가 생겨났다. 그리고 마지막은 보람으로 온몸이 꽉 차는 것이다. 정말 내가 여기 안 오고 다른 애들처럼 수능 끝나고 놀기만 했으면 평생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내 인생이 세상에 물들어 사는 걸 피할 수 있었을까? 또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며 내 몸에 대한 소중함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 등을 느낄 수 있었을까?
정말 이번 소록도 봉사 활동은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던 최고의 봉사활동 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여기 못 오고 속세에 절어서 살고 있을 아이들이 가엽다. 내가 이제 세상에 다시 나가면 거기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로 그 아이들을 정화시켜 줘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와서 내가오면 더 좋고 내가 못 오더라도 밑에 후배들이 와서 내가 느낀 것들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