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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최정미

윤희정기자
등록일 2008-06-13 16:54 게재일 200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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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세상에 빚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 아닐까요"

자그마한 체구 정감나는 사투리, 천상 여자인 듯 고운 눈매지만 누구보다 커다란 세상를 품고 사는 조각가 최정미(44)씨.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술쪽에선 국내 최고 학부라해도 과언이 아닌 홍익대 미대 조소과를 나왔지만 부와 명성을 좇는 화려한 생활을 따르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작품을 하며 살고 있다.


“내가 숲으로 간 것은 생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고,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대면하고 싶어서 였다. 또 인생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 인생을 헛 살았다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존경한다며 그의 말을 잠시 인용했다.


흔히 작가와 작품은 많이 닮는다고 한다. 그 역시 그러했다.


자연과 교감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세밀한 필치로 묘사하는 구상조각 작업은 꾸밈없고 편안한 인상에서 자연미가 물씬 풍기는 그와 참 많이 닮아있었다.


“저는 자연 앞에만 서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서 이곳, 상옥이라는 곳을 찾아와 살고 있는 지도 모르죠. 이런 경험이 작업색깔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일평생 여체를 형상화한 마이욜의 고요함을 닮았지만 결코 관능적이지 않으며, 실존을 향한 자코메티의 처절한 고독과도 거리를 둔다.


그의 작품엔 한결같이 스치는 바람마저 조심스러워할 새벽녘의 고요와 평화가 배어 있다. 그 고요의 진원지는 바로 자유의 온기를 품은 작품의 선에서 기인하며 작품 전체에 유유히 흐르는 선은 덩이의 윤곽선에 그치지 않고 무한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으로 확대된다.


사실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인간 존재를 확인하고 극도의 자기 부정과 사변적 인식에 바탕을 둠으로써 대중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그의 작업은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 풍광 속에서 어김없이 조그맣게 자리잡은 인물들이 한국화의 낙관처럼 등장한다.


주 관심사가 처음엔 ‘사람에 대한 연민’이랄까. 그 다음엔 ‘관계’‘사람과 사람’‘사람과 자연’‘사람과 사물’, 이러한 것을 많이 생각했고 요즈음은 하나의 사물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깊이 연구한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내 작업이 타인의 삶에 도움이 됐으면 하고 더 욕심을 부리자면 세상에 도움이 됐으면 했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 이것도 자만이고 만용이고 어줍잖은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는 좋은 작품을 남겨야 한다,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런게 살아가는 데 뭐 그리 중요한가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우리 삶 중에는 알려지지 않고 바라지 않고 그 무엇에 해 되지 않는, 산에 풀 같고 강가에 돌멩이 같은 존재로 훌륭히 살아가는 이들이 많잖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드러냄 없이 세상을 더럽히지 않고 그저 주어진 자신을 자연에 의지해 자연과 더불어 세상에 빚지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진정 값진 게 아닐까. 그러니까 결국은 창조하지 않는 것이 진정 창조적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면서 자연보다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죠.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인 만큼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요?”


작품 속 인물은 작가와 관람객을 포함한 현대인들이다. 문명의 희생양이 된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이 시원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모습이다. 갑자기 내가 작품 속의 인물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화면 속의 아늑하고 넉넉한 자연의 품 속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그는 여러 재료 가운데 흙을 좋아한다고 했다.


“주물이나 테라코타, 만지거나 표현되는 그 느낌이 참 좋아요.”


자연을 닮은 듯한 그의 심성을 이해할 듯 싶었다.


그는 지난 2000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로 이사해 온 이후 포항조각가협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과 지역 작가들에게 조소를 통해 도움이 되고자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하는 단체라 자부한다고 했다.


그는 취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주로 음주, 내키면 신나는 가무까지.


그의 자택을 한 번이라도 찾은 이들은 그가 살아가는 이유를 공감하게 된다. 그가 화려한 도시생활을 떠나 자연을 찾아 시골에 터를 마련했듯이 꽃 한송이, 풀 한 포기도 친 자식처럼 애지중지 길러온 것이다. 그리고 누가 시킨 게 아닌데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묵묵히 시골집을 가꾸어 온 그 모습이 아마도 우리 현대인들의 궂은 인생사를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 추위가 있었냐는 듯 따사로움이 퍼져가는 봄. 꽃 사이에 다소곳이 서있는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오늘도 꽃을 다듬는 그가 대자연을 품은 이 시대 지성인으로 비치는 것은 나 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는 포항예고 출강하는 것 말고는 모든 시간을 작업에 바친다. 꼼꼼하게 재료를 빚다보니 작업에 고도의 집중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지녔던 화가의 꿈을 이룬 데 감사하고, 더 열심히 작업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오감을 열어 놓고 살기가 어렵지만, 열어놓고 살자”면서 “하루 하루를 사랑하며 사랑 받으며 기쁘게 사는 것, 최대한 자유롭게, 최소한으로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그의 소박하지만 거대한 꿈이 자주 내 가슴 깊이 밟힐 듯 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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