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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일 연출자

윤희정기자
등록일 2008-06-13 16:18 게재일 200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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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빠져나간 텅빈 객석 '허무함의 마력'이 나를 이끌었다

"진주는 조개껍질 같은 것이 진주의 핵 입니다. 수천년동안 바다밑에서 파도에 깎이고 깎여 그 속에 단단한 핵을 형성하고 그 핵이 다시 갈고 닦여 영롱하고 찬란한 빛이 나타나지요. 연출가와 배우들은 바로 이 진주의 핵에 해당되고 그 핵이 발하는 영롱하고 찬란한 빛이 최고의 숭고미로 관객들, 즉 인류에게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주의 연극’을 표방하며 지역의 연극계를 지켜내온 맏형 노릇을 해온 포항시립연극단 상임 연출자 김삼일(67·사진)씨.


1963년 KBS 포항방송국 전속 성우 1기생 공채를 시작으로 방송하며 연극에 몰입하였으니 올해로 그 세월이 자그마치 45년이다.


신상률, 최동주, KBS 포항방송국 성우들과 극단 ‘은하’라는 이름으로 함께 연극을 시작한 것이 1965년 3월1일. 포항에서 가장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연극단체가 창립된 것도 이 즈음이다.


최근엔 포항시립연극단과 함께 ‘포은 정몽주’를 초연해 일상적인 삶속에서 희망을 풀어내는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 그는 오는 9월 무대에 올릴 연극 ‘다산 정약용’ 때문에 요즘 더욱 바쁘다. 그는 포항 연극계의 역사뿐 아니라 문화 전반의 흐름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는 귀한 자산이다.


그의 뿌리는 포항의 섬안(대도동)이다. 8대조부터 조부때까지 2백년간 섬안에 세거했는데 조부가 어릴때 울산으로 이주해 그의 아버지와 그는 울산 장생포에서 출생했으며 다시 전 가족이 1959년 선조의 뿌리인 포항으로 이주, 항구동 17번지에 본적을 두었다.


그는 “당시는 포항이 문화불모지였다”고 술회했다.


인간 상록수이며 포항문화의 개척자인 고 재생 이명석 선생 홀로 외롭게 문화를 개척하고 있었다고 했다. 65년부터 이명석 선생이 원장으로 있는 포항문화원 사무국장으로 들어가 재생 선생의 숭고한 정신인 향토애, 사랑, 진실, 의리, 지조, 박애, 개척정신을 전수받으면서 문화원 연습실에서 연극작업을 계속 했다. 당시 아동문학가 고 손춘익씨와 수필가 박이득(현 포항예총 회장)씨와 만나 평생 예술적 동지가 됐고 또한 연극동지이며 직계후배인 정정화(전 KBS 포항방송국장)를 만나 포항연극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60년, 70년대의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1983년 제1회 전국연극제에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을 연출해 최우수여자연기상(정옥희)을 수상하고 1985년 제3회 전국연극제에서 ‘대지의 딸’을 연출해 대통령상과 최우수여자연기상(이휘향)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연출가 이해랑과 유민영 현 단국대 석좌교수는 “김삼일은 중소도시에서 중앙 수준의 연극을 끌어올린 기적의 연출가”라는 평을 내놓았다.


그의 연극에 대한 열정은 그동안 많은 수상과 시민들의 성원에서 답을 받았다. 제1회 서울신문 향토문화상, 제9회 한국예술상, 제24회 경북문화상,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전국연극제 문화공보부장관상, 자랑스러운 경북인상, 금복문화상, 제14회 이해랑연극상, 2005 홍해성연극상 수상 등.


지난 2005년 연출한 창작뮤지컬 ‘연오랑 세오녀’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포은 정몽주’를 무대에 올릴 수 있었고 ‘다산 정약용’이 오는 9월 무대에 오른다.


“‘포은 정몽주’의 연극화는 포항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고려와 조선을 통털어 천년동안 포은선생만큼의 충절의 위인이 없었지요. 동방성리학의 종주이기도 하지요.”


그에게 있어 포은 선생의 연극화는 그의 연극인생에 있어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무대 위에서 대형 배가 침몰하는 장면은 전국에서 처음 시도한 연출이었다. 대부분 스크린으로 처리하는 것을 직접 무대에서 연출해낸 것이다. 연극을 본 서울 연극인사들도 어떻게 무대에서 처리했는지 궁금해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못지않게 ‘다산 정약용’에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이죠. 그 다산선생이 포항의 장기에 유배되어 살면서 장기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시를 많이 남겼고 농사법, 병 고치는 법 등 포항에 많은 영향을 남겼지요.”


역시 포항정신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리며 그것으로 시민이 뭉치기 위해 포은에 이어 다산 정약용을 무대화 하는 것이다.


“무대는 다산 정약용이 장기바닷가에 유배생활을 하는 중에 꿈속을 배경으로 정조임금을 장기 바닷가로 불러내어 두 사람이 그동안 못 다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도록 설정합니다.”


포항시립연극단이 시의 지원을 받아 하지만 여느 작품과는 다른 모습이다. 역사 초연극인만큼 극본에서부터 서울 유수의 유명극단 앞에서 문턱을 맞췄다.


그는 말한다. “냉철한 작품분석을 통해 무대위에서 총체적, 환상적 에너지를 창출해 관객들에게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배우들의 개별적 연기역량을 극대화해서 배우들의 기량을 최대한 쏟아붓도록 한다.“


이 말에는 연극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과 짝사랑을 지금껏 지켜오기까지의 지난했던 여정이 담겨 있다. 여기에 전업연극인으로서 자신과 배우들의 진정한 예술인생을 바라는 마음도 느껴진다.


그는 연극의 매력은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후 텅빈객석에 앉아 허무함을 느끼는 그것이 연극의 마력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연극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에피소드로 이해랑 선생과의 인연을 내놓았다.


“제14회 이해랑연극상 수상 때입니다. 고 이해랑 선생님은 한국연극 연출가의 1인자 이시죠. 66년 이 선생님이 서울에서 이동극장을 창단하고 배우를 모집해서 응시했는데 이때 면접을 보면서 이 선생님이 ‘김군, 자네는 포항에서 계속 연극의 길을 가서 지역연극의 개척자가 되는 것이 더 보람찬 일이네. 알겠나?’ 하면서 당장 포항으로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나는 ‘네’ 하고 대답하고 바로 그길로 다시 내려와 연극작업을 계속해 19년 후인 85년에 대통령상(당시 이해랑선생이 심사위원장)을 받고 또 19년 후인 2004년도에 연극인이면 누구나 받고싶어하는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하게 되었지요.”


그는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마하트마 간디를 존경한다.


“비폭력, 무저항의 정신으로 얻을 것은 다 얻었지요. 또 간디는 자기가 한 말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꼭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말에 있어 그런 ‘성실함’은 비폭력저항과 어우러져 핍박받던 인도인을 움직였고, 그 덕에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지요.”


간디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연극을 향한 그의 열정을 더욱 뜨겁게 했다.


“진주는 조개껍질 같은 것이 진주의 핵입니다. 수천년동안 바다밑에서 파도에 깎이고 깎여 그 속에 단단한 핵을 형성하고 그 핵이 다시 갈고 닦여 영롱하고 찬란한 빛이 나타나지요. 연출가와 배우들은 바로 이 진주의 핵에 해당되고 그 핵이 발하는 영롱하고 찬란한 빛이 최고의 숭고미로 관객들, 즉 인류에게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지난 1999년 3월 포항시립연극단과 인연을 맺게 된 건 다 ‘향토애’ 덕이다.


“포항시립연극단은 인적, 물적의 어려움으로 민간극단이 할수 없는 대형 정통연극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항상 향토애와 함께 해야하며 포항의 정신과 함께 창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연오랑 세오녀’, ‘연화재의 통곡’, ‘포은 정몽주’를 했던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 연극으로 인간들의 내면을 은근히 자극한다.


우리나라 사실주의극의 대가로 알려진 차범석의 ‘산불’이 그랬고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홉의 ‘갈매기’가 또 그랬다.


“사실주의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내부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고 환상적 에너지를 잉태하고 있지요. 전위극, 실험극은 그런 요소가 적습니다.”


그의 색깔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연출 스타일로 더 빛난다.


“저는 방향만 잡아줄 뿐입니다. 대본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과 분위기로 연기를 할 수 있게 배우들에게 많은 것을 맡깁니다. 자연스러움에는 진실이 깃들어있지요. 꾸밈에는 거짓이 들어가기 쉽지요. 억지는 진실을 멀리합니다. 자연스러움은 오랜 숙련끝에 가능합니다. 때문에 끊임없이 연습하고 연구할 때 가능하지요.”


하지만 그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으니 포항시립연극단의 활성화이다. “연극은 어려운 작업입니다. 문학이나 미술같이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종합예술로 많은 인적자원이 필요하고 배우, 조명, 무대장치, 음향 등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작업이기에 더 매력이 있지요. 어차피 인생은 고난과 역경이 연속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래서 시립연극단 발전을 위한 많은 꿈도 키우고 있다. 단원들의 실력도 향상하고 작품 예산을 줄이기 위해 직접 무대세트도 만들지만, 시민들에게 인정받는 극단이 되기 위한 피나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취미는 남다르다. 포항의 옛모습을 생각하면서 동빈내항과 그 부두, 동빈동의 뒷거리를 산책하는 것이다. 지금은 옛건물과 창고들이 다 없어지고 있지만 한 때 그에게는 몸과 마음의 오랜 안식처들이었다. 포항의 옛 모습을 그리며 내일의 희망을 설계하는 그.


“죽을 때까지 연극을 통해 포항의 정신을 살찌우고 싶습니다. 지금 연극인생 45년 입니다. 남은 것은 연극을 하면서 무대에서 숨을 거두는 것입니다. 재생 이명석 선생은 생전에 너는 연극을 통해 목숨 다 할 때까지 포항정신을 구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남은 연극 인생이 맑고 꾸밈없이 살아온 모습과 함께 우리들 마음 속에 자부심으로 존경심으로 더욱 더 잔잔하게 빛나길 소망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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