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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의로예문

장경식기자
등록일 2007-10-01 16:01 게재일 200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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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식 대구 취재본부장

추석(9월 25일)을 앞두고 팔공산 자락의 고향 친구들이 모였다. 대부분 대구에 살고 있지만 서울과 부산, 울산, 창원 등 외지에서 온 친구들이 함께해 모처럼만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언제부턴가 명절을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이어져 오고 있다. 매번 얼굴을 내미는 친구도 있고 가끔씩 보이는 얼굴도 있다. 아예 연락이 안 되는 보고 싶은 친구도 있다. 이번에도 아지트인 친구 사무실에 얼굴을 내밀고 그냥 가는 친구도 있었지만 친구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래도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는 친구는 열 명 남짓. 자리가 인근의 식당으로 옮겨질 무렵 대화는 무르익었다. 친구들의 안부와 근황을 묻던 대화는 어느새 민생고로 이어졌고 대선(정치)으로 치달을 무렵이면 자리가 곧 끝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술기운이 얼큰하게 달아오를 무렵 누군가의 입에서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꼭 정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왜 MB(이명박)여야 하느냐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 친구는 평소에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편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실전’에 뛰어든 것은 아닌데 ‘공부’를 많이 한 듯 보였다. 옆에 있던 친구도 거들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시나리오를 그러듯하게 읊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정치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행될 쯤 갑자기 한쪽에서 친구들끼리 모인마당에 정치얘기는 그만두자고 소리 질렀다. 갑작스런 제동에 친구들의 눈길은 쏠렸고 일순 조용해졌다. 그때 다수의 친구들이 “그래 맞다. 정치이야기는 그만두자. 모처럼 친구들이 만났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나 하자”며 맞장구를 쳤다.

친구들의 술자리 공동화제는 대선에서 신정아·정윤제 사건, 남북정상회담으로 넘어갔다. 이와 관련된 정말 ‘소설’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서울발, 부산발 등등. 그땐 처음 듣는 것도 있고 해서 귀가 쏠깃했지만 지나고 가만히 생가해 보니 대부분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맞는 얘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신정아·정윤제 사건이 터졌을 때 대통령조차도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했으나 실체가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5년 전 지난 2002년 추석 밑 친구들의 모임이 생각났다. 그때도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친구들은 모임 내내 정치이야기만 하다 헤어졌다. 상황도 지금과 비슷했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치 ‘게임끝’인양 했다. 논공행상만 남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분위기가 그랬다. 그래서 감히 반대의견을 다는 친구가 없었다. 역적이 되기는 누구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5년 전과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정치이야기, 한나라당 집권 당위론에 제동을 걸고 반대의견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엄청난 변화다. 다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비판도 스슴없이 했다. 그것도 대구에서 말이다. 그동안의 학습효과 덕분일까. 어쨌든 많이 바뀌었다.

의로예문(義路禮門)이라는 말이 있다. ‘정의는 길이고, 예의는 문이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정의는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이지만, 이 길은 예의라는 문을 통해 가야만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의는 옳은 것이지만 언제나 실행되지는 않는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정의가 언제 어떻게 실행되는가의 문제는 그래서 중요하다. 예의란 서로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는 부모의 도리를 다하고,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부모 자식 간의 예의이며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다하고,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부부간의 예의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예의란 무엇인가.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은 그 권력의 주인인 국민에게 도리를 다해야 한다. 즉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예의의 문을 통해 그 권력을 정의에 맞게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이 주장하는 어떠한 정의도 실행될 수 없다.

이번 추석과 5년 전 추석 때 모인 친구들의 화제가 정치에서 끝나거나 어그러진 것은 義路禮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학습효과를 보인 이번 친구들의 변화가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는 미지수이지만 올 연말의 대선과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예의(禮義)라는 문을 통해 정의(正義)의 길을 걸을 최소한의 마음 준비라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장경식기자 gs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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