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표지석 한쪽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등산객들이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동안에도 수없이 보아왔지만 그저 그렇게 바라만 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문구가 새롭게 다가왔다. 갑자기 지난 4월 중순께 금강산에서 본 ‘참으로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라는 문구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이야 어찌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적벽가(赤壁歌)로 유명한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도 “일생에 고려국에 가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고 했다. 스웨덴의 국왕이었던 구스타프는 “하느님이 천지창조를 하는 6일 중 마지막 하루는 금강산을 만드는데 할애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평생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고 천지창조의 하루를 금강산에 투자했다고 했을까. 난생 처음 2박3일의 일정으로 금강산을 밟고 온지 4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문득문득 금강산의 비경(秘境)이 눈에 아른거린다. 소동파나 구스타프의 말이 허언(虛言)은 아닌 듯 싶다. 지리산은 언제나 시간만 나면 코스에 상관없이 가볼 수 있다. 그러나 금강산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금강산이 더욱 그리워진다.
이 두 산의 공통점은 모두가 우리의 기상(氣像)이라고 한 것이다. 그만큼 명산(名山)이란 뜻일게다. 비록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을 멀리서 보기만 했을 뿐 외금강 일부만 보고 왔는데도 ‘우리의 기상’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아니 충분하다고 느꼈다. 지리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지리산 전체를 둘러본 것도 아니다. 최고봉인 천왕봉과 그 언저리를 몇 번 밟았을 뿐이다. 오를 때마다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서 발원된다고 했는가 보다.
지리산 천왕봉 꼭대기에 앉아 내려다보면 눈 아래 펼쳐진 준령(峻嶺)들의 장엄함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경계도 없다. 수 만년을 이어져 온 그 신성함을 누가 감히 침범하랴. 금강산은 어떤가. 비로봉은 갈 수 없었지만 ‘나무꾼과 선녀’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상팔담(上八潭), 만가지 형상을 볼 수 있다는 만물상을 올라보니 정말이지 선경(仙境)이 따로 없는 듯 했다. 탄성(歎聲)이 절로 나왔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휴정 서산대사는 ‘조선사산평어(朝鮮四山評語)’에서 금강산은 아름답지만 웅장하지 않고 지리산은 웅장하지만 아름답지 않다(金剛秀而不壯, 智異壯而不秀)고 했다. 정말이지 딱 들어맞는 평이다. 그게 이 두 산의 차이점이다. 그러기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꼭대기에 있고 ‘참으로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는 상팔담을 오르는 중간에 있다. 금강산 꼭대기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빼어난 아름다움에 혼을 빼앗겨 기상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기에 중간에 그런 문구를 새겨놓은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의 해석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여파가 남북경협에까지 미쳐 금강산 관광의 앞날이 불투명할 것이란 보도가 있었으나 북측이 최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에는 변함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아름다운 금강산의 기상이 있어야 웅장한 지리산의 기상도 있는 것이니까.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유는 모두가 우리의 기상, 하나이기 때문이다. 금강산이 열려 있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때마다 금강산의 기상을 떠올릴 수 있게돼 기쁘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금강산을 다시 가볼 것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장경식<대구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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