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 해저드’(moral hazard), 즉, 도덕적 해이란 단어가 보험가입 후 화재방지를 소홀히 해 결국 사고를 낳는다는 보험업계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본격 등장하게 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였다.
사업외형을 불리기 위한 기업들의 무리한 투자와 이를 방조하는 금융기관의 무리한 대출이 빚어내는 아시아 각국의 경제적 부실구조의 원인이 모럴해저드에 있다는 지적은 이후 우리의 사회경제적 병리현상들을 해석하는 한 코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럴해저드는 주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비리와 추문이 발생할 때마다 주로 동원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쥬’, 즉 지위가 높을 수로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의미의 말과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 실태가 빈부차이 등 계층 구별 없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날마다 미디어를 타고 전해지는 각종 사건사고들에서도 확인되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성의식의 훼손과 부동산과 주식 투기에 쏠린 나머지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몰가치화, 사회 불신풍조 등은 이미 잠재된 범죄의 수준에 이른지 오래다.
포항의 S택시회사 운전사인 김모(46. 북구 죽도1동)씨는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으로 만난 것이 한눈에 드러나는 남녀가 탑승해 나누는 대화에 낯이 뜨거울 때가 많다”면서 “이래저래 핸들을 놓고 싶지만 한달 수입 100만원에 목숨이 걸린 가족 생각에 마음을 다 잡는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문제에는 돈과 소비를 최고의 가치로 보는 천민자본주의에 빠진 국가적 병폐도 한몫해 포항 인근의 한 골프장 20대 여직원은 “몰고 온 승용차 등으로 재력을 알 수 있는 손님들이 꽤 있는데 실망할 때가 많다”면서 “골프장 여직원은 하인 부리듯 해도 된다는 구태가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사회 전반을 잠식하고 있는 ‘도덕적 해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경제적 수준만으로 선진국에 진입하는데 발목을 잡고 있으므로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민족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근본적 책임과 원인을 놓고 봤을 때 또다시 사회 지도층들에 의한 실태는 자뭇 심각하다.
각 지역마다 부와 권력을 겸비한 토호세력들은 지역의 정보와 인맥을 선점해 각종 개발을 주도하고 이익을 챙기지만 사회적 책임에는 등을 돌리고 있다.
또 전문직들의 문제도 심각해 지난 한해 20여명 안팎인 포항지역 변호사 가운데 한 40대는 협박 등 입에 담기 어려울 혐의로 구속돼 이후 또다시 여러 죄명으로 기소됐으며 50대는 경찰 등이 낀 브로커를 고용해 사건을 수임했다가 역시 구속됐으며 의사들도 해마다 보험사기 등에 연루돼 사무장 등이 구속되고 있다.
포항시와 포항시의회도 크고 작은 비리가 적발돼 간부들이 잇따라 옷을 벗는가 하면 시의원들도 최근 몇 년 새 신성한 대의기관에 먹칠을 하고 있다.
특히 얼마 후 문을 닫게 되는 4대 시의회의 경우 더욱 심각해 의원들이 부동산투기, 폭력시비, 미성년자 성매매, 공무원에게 공사를 위해 압력을 행사하는 직권남용 등으로 잇따라 구속과 불구속의 도마에 번갈아 올랐다.
또 그보다 수위는 다소 낮을 지라도 잇딴 학력조작 시비, 술자리 행패, 포스코 등 각종 기업에 대한 이권개입 등도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사회지도층의 도덕수준을 훼손한 행태로 비난받고 있다.
포항YMCA 관계자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낀 때를 벗겨내기 위해서라도 이번 지방선거는 도덕적 해이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극복 의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