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온 사진들을 컴퓨터에 심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단기기억장애가 있는 나 같은 이에게 디지털 카메라야말로 필수품이 아닐까. 글을 쓰거나 추억을 헤집고 싶을 때 디카는 더할 나위 없는 친구가 되어준다.
사진작가(?)로서 데뷔무대는 동촌 유원지였다. 엄마 생신을 맞아 동촌 친정에 갔을 때였다. 엄마, 사진 찍어줄까? 화소수가 전문가용급인 디카를 메고 엄마에게 곰살맞게 군다. 미뤄둔 숙제처럼 엄마를 모델로 소설을 써야지 결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집앞 동촌 유원지로 나간다. 오랜만에 다정한 모녀가 되어 방죽길을 걷는다. 이른 코스모스 사이에 엄마를 세우고 아파트 숲을 원경으로 한 채 셔터를 누른다. 내친 김에 전기줄에 앉은 참새떼들의 무료한 오후와 낮술을 마시는 부랑인, 둔치에서 운동하는 젊은이들의 재기발랄함까지 찍는다. 방죽을 걷는 모녀의 기억 속에 이 모든 것이 함께 했음을 사진은 증명해줄 것이다.
동촌의 명물 구름다리를 건넌다. 예나 지금이나 흔들다리는 출렁인다. 주변이 온통 아파트와 모텔 촌으로 변해갈 때 몇 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이곳 다리이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엄마는 휘청거린다. 그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현기증 돋는 구름다리 위 같은 삶을 엄마는 용케도 건너왔다. 구름 걷히고 혹, 햇살 비칠 그날이 올까 기대하며 칠십 평생을 흔들리며 견뎠으리라.
다리 끝자락에는 골뱅이와 번데기를 파는 난전이 기다린다. 흔들리며 건너온 생의 정점에서 만나는 달콤한 위안이다. 먼지 묻은 천원 어치의 위안을 입안으로 가져간다. 달고 고소하다. 지저분한 플라스틱 양푼에 담긴 그 소품도 한 컷 찍는다.
모서리가 날아간 나무 벤치에 엄마가 앉는다. 젊은 술주정뱅이의 호기 어린 발길질에 벤치 모서리가 뭉개졌을 것이다. 반듯한 모서리도 때론 상처와 맞바꾸기도 해야 한다고 엄마의 눈빛이 말한다. 그 무언의 가르침도 한 컷 담는다.
유람선 직원들이 호객을 한다. 엄마, 우리도 저 배 타볼까? 이 동네 붙박이 할미인 엄마는 여태 한 번도 유람선을 타지 못했다. 엄마는 못이기는 척 유람선에 오른다. 금호강 물줄기를 거스르며 흰 배가 달린다. 멀리 분수대에서 한껏 물보라가 뻗친다. 분수대 물줄기처럼 팍, 한 번 솟구치기도 전에 가버리는 게 세월이라고 엄마의 주름살이 말한다. 분수대를 배경으로 쪼글해진 엄마의 얼굴도 한 컷.
유람선 스피커에서 뽕짝 메들리가 흐른다. 선상 캬바레가 펼쳐진다. 오른손을 깁스한 젊은 청년이 엄마 손을 이끈다. 엄마도 춤 좋아하잖아. 넌지시 엄마의 등을 떠민다. 인자는 흥을 다 잃어뿌릿다 카이. 장남을 먼저 보낸 당신 공허를 그렇게 표현한다. 자식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은 늙어서도 유효한가 보다. 마지못해 의자에서 일어난 엄마가 어깨춤을 춘다. 프레스 기계에 손을 다친 청년을 위로하기 위해 동료들이 마련한 선상 춤 파티를 나는 주저 없이 카메라에 옮긴다.
선착장을 돌아 나온다. 콘크리트 계단을 뚫고 나온 강아지풀과 민들레가 초가을 바람에 흔들린다. 가늘고 여린 풀꽃들에게도 강인한 모성이 있었다! 디카가 아니라면 금세 잊혀졌을 그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담는다. 디카에 담긴 순간의 기억들이 소설로 거듭날 수 있을까. 숨겨 두고 클릭해 볼 일이다.
<김살로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