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년대까지 대구·경북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동양화가 목랑 최근배(1910~1978)화백의 자화상과 풍경화 등 유화작품 2점이 발굴돼 화제가 되고 있는 동시에 그에 대한 미술사적인 재조명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작품 발굴은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측이 갤러리 재개관을 기념해 지난 16일부터 마련하고 있는 ‘자화상 60인전’의 작품 수집과정에서 최화백의 유족들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최화백의 유일한 서양화 화풍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갤러리측에 따르면 발견 당시 자화상은 풍경화 작품 뒤 캔버스에 가려져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화상 우측 하단부에는 ‘1941 MOK RANG’라는 제작연도와 함께 그의 아호 목랑(木朗)이 새겨져 있다. 인상주의 화풍 구도로 채색된 그의 자화상은 말쑥한 서양식 머리형에 양복 조끼까지 받쳐입은 전형적인 개화인과 지식인의 이미지를 풍긴다. 특히 비교적 능숙하게 표현된 얼굴부분의 묘사와 역광 처리는 동경미술학교에서 정식으로 미술수업을 받은 역량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갤러리측은 풍경화 작품의 경우 사인이 없어 그의 작품으로만 추정만 할 수밖에 없지만 작품의 소장처가 그의 유족이었다는 점과 자신의 자화상과 함께 발견됐다는 점에서 최화백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조선미전의 출품작 중 대구,경북 화가들이 즐겨 다룬 구조로 제작된 구도의 풍경화 작품은 1920~30년대 대구를 비롯해 한국서양화단의 화두가 된 ‘향토색 경향’에 입각한 화풍으로 ‘ㅗ’로 난 길에 좌우로 마을의 초가집들이 배치된 구도는 1920년대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화가 오히라 게지로와 대구출신의 서양화가 박명조, 배명학 등의 작품과 유사한 구도와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최 화백은 1931년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미술학교로 손꼽히던 동경일본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 후 3학년 재학 시 동양화(일본화)로 전과해 수묵채색화를 전공했다. 입학 후인 1934년에는 일본미술전에서 은상을 수상했으며 제10회 국화회전과 제7회 청룡사전에 입선했다. 1937년 귀국 후 조선일보를 거쳐 김천중학교 임시교사(1940)로 재직 중 제19회 조선미전에 ‘봉선화’와 ‘탄금도’를 출품해 동양화 특선과 함께 대구 창덕궁상을 수상했다. 대구·경북지역에서 활동한 화가 중 조선미전 창덕궁상을 수상한 화가는 서양화가 이인성과 동양화가 최근배가 유일하다.
한편, 발굴 작품들은 현재 훼손이 심한 상태여서 전시기간이 끝나면 미술품 복원 전문가에게 의뢰해 보수·복원을 의뢰할 예정이다.
대백프라자갤러리 관계자는 “유가족들에 의하면 한국 전쟁 당시 일본군들의 침략으로 선생의 서양화 작품들이 소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이번에 발굴된 작품은 최화백의 서양화 화풍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으로 그 의미가 뜻 깊다”고 말했다. /최승희기자 shchoi@kb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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