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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무상급식예산 삭감 유감

윤경희포항여성회장“나의 시어머니는 나의 두 아이들을 키워주셨다. 아이들을 맡기고 사무실로 출근할 때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고된 실랑이를 해야 했고, 퇴근 후 집에 가면 기운이 소진된 어머님과 아직도 장난칠 거리가 무궁무진한 활기찬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고집 센 아들과 활기찬 딸을 감당하느라 10여년을 보내신 후 어머님은 부쩍 늙으셨고 편찮으신 곳도 많아지셨다. 우리가 셋째를 낳을까 고민하는 것을 알고 어머님은 일언지하에 반대하셨다. 사회가 함께 나눠주지 않는 육아의 고단함을 아는 까닭이다”돌이켜보면 내가 경험한 이 땅의 어머니들은 천사였다. 자신의 욕구와는 상관없이 가족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했으니 말이다. 기꺼운 헌신은 세월이 흘러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천사의 품성으로 길들여진 그녀들의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상처투성이다. 하여 어머니됨의 고단함과 위대함에 대한 경외는 신화가 됐다.산업화 시대를 살아낸 우리 어머니들은 가족공동체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무급 가사노동과 보살핌 노동을 감내해 온 세대이다. 가부장적 가족제도 속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과 성장의 기회를 박탈당하면서도 그것이 숙명인양 순응해 왔다.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책임과 의무에 비해 권리를 누릴 수 없었음에도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척박한 시절의 고달픈 여성들이었던 것이다.그러나 그녀들도 인간이기에 올곧게 헌신만을 할 수는 없는가 보다. 아이들을 키워달라는 자녀들의 요구를 냉정히 거절하기도 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가족 내 누군가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요양기관에 위탁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으며, 자녀들도 믿을 수 없으니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도 하신다. 또한 어머니 세대의 고단함과 고단함 후의 빈곤과 고독을 목도한 이후 세대 여성들은 가족과 사회의 삶 이전에 자신들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냉철한 자각과 실천은 현상적으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는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의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키우고 교육시키는 과정이 오로지 한 개인과 가족만의 문제일까를 생각해본다. 또한 우리사회를 지속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대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즈음이다.그러던 중 지난 3월 셋째 주와 넷째 주 경북매일을 통해 경북도의회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무상급식예산 전액을 삭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에 대한 점차적인 무상급식 실시를 골자로 하는 교육청의 예산에 대해 포퓰리즘(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로 대중영합주의)이라 폄하하며 삭감한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바라고 원한다면 그 이해와 요구를 받아 국가 정책과 예산 속에 반영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 것이 무릇 권력을 위임받은 의회와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의정활동과 행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 국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은 대중의 인기를 얻고자 특정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정책이 아니라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일을 개인과 가족, 사회가 함께 나누자는 정책적 대안이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안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정책이다. 게다가 이미 구미, 포항, 고령, 영천 등 각 시·군에서 대응예산을 확보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사업을 단지 포퓰리즘에 동조할 수 없어서 예산을 삭감했다는 것은 경북도의회야말로 정치논리로 예산을 삭감했다고밖에 볼 수 없음이다. 경북도의회의 이번 예산안 심의 과정을 나를 비롯한 많은 도민들은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봄을 기다리는 4월, 경상북도의회가 심히 유감스럽다.

2011-04-13

추석과 한가위

이정희 위덕대 일본어학과 교수추석만 되면 늘 의문이 생기는 게 있다. 추석의 다른 말인 `한가위`, `가위`, `중추절`, `가배`에 대해서는 그 어원 설명이 잘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가위`는 `한`이라는 `크다`라는 뜻과 `가위`의 `가운데`라는 말로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고, 또 `가위`는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눠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를 베풀어 갚는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다고 한다. 이밖에 `중추절` 역시 가을을 초추 · 중추 · 종추 3달로 나누어 볼 때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어가므로 붙은 이름으로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해진다. 그런데 `추석`에 관해서는 이렇다 할 해석이 없다. 어딘가에서 추석(秋夕)은 칠석(七夕),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중추(仲秋)의 추(秋)와 월석(月夕) 석(夕)을 따서 추석이라 한 것이라고 한다. 왠지 이 대목에서는 뭔가 석연치 않다. 추석, 한자 뜻풀이를 하면 말 그대로 가을 저녁이다. 분명 가을은 저녁이 좋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즈음 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일본문학에서 최초의 수필집으로 `마쿠라노소시(枕草子)`라는 작품이 있다. 1천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저자는 세이쇼나곤이라고 하는 여류작가이다. 내용은 당시 궁정 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자연이나 인생사에 관한 감회 등이다. 이 수필집의 첫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라 인용해 본다. 봄은 새벽이 인상적이다. 차츰 동이 터오는 동쪽 산과 접한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져서 보라색으로 물든 구름이 가늘고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여름은 밤이 좋다. 달이 떠 있을 때의 풍경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어두운 밤일 때도 좋다. 반딧불이 여기저기 수없이 날아다니는 것도 재미있다. 또 한 마리가 어렴풋이 날아가는 것도 재미있다. 비가 내리는 정경도 풍취가 있다. 가을은 저녁이 멋있다. 석양이 빛나며 산 능선에 가까워져서 이제 금방 지려고 할 때에 까마귀가 서너마리, 두세마리 떼를 지어 바삐 날아가는 것이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다. 또 기러기들이 줄지어 날아가는 것이 멀리 자그맣게 보이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 바람소리나 벌레소리 등이 들려오는 정취 또한 더 말 할 나위 없이 멋지다. 겨울은 이른 아침이 좋다. 눈이 내려 쌓인 아침은 더할 나위 없이 좋으며…. (생략)” 음미하면 음미 할수록 좋은 문장이다. 각 사계절 중 가장 좋은 시간을 뽑아 노래한 것인데, 참으로 공감이 간다. 봄은 새벽이 가장 인상적이고, 여름은 밤, 가을은 저녁, 겨울은 이른 아침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 역시 여름은 뭐니뭐니 해도 밤이 제일 좋고, 가을은 해질녘의 저녁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이러한 뜻에서 `추석`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번 추석에는 해질녘의 저녁 정경을 마음껏 만끽 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니고 싶다.

2009-10-01

한청청소년문화제를 준비하며

지수옥한국청년지도자聯 경북포항여성지회장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 경북지부에는 포항지회, 신포항지회, 여성지회 등 3개 지회가 있다. 스스로의 역량을 갈고 닦아 건전한 지도자로의 의식과 자질을 함양하고 전통문화와 예절을 숭상하며 인간애가 넘치는 복지사회 건설의 초석이 된다는 한청신조를 실천하는 단체로서 젊은 지도자양성을 통하여 젊은이의 문화창조에 앞장서고자 노력하는 이들이다. 미래를 주도할 지도자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단체이니만큼 지역사회와의 교류는 물론이지만 리더십에 포커스를 맞추도록 활동하고 있다. 작년에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여성지회가 창립이 되었고 또한 경북지부가 포항에서 탄생하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 포항에서 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는 경북지부를 중심으로 3개 지회가 왕성한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한국청년지도자연합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대외적인 행사로 올해로 3회째 맞이하는 한청청소년문화제를 소개할까 한다. 다음 세대를 주도할 청소년들의 한마당 잔치인 한청청소년문화제가 앞서 2회까지 성황리에 치루어지고 이번에는 경북지부와 여성지회가 합류하면서 보다 더 알찬 청소년문화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올해에는 특히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는 한청`이란 제목으로 청소년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지역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인정해주는 청소년문화제가 되도록 노력하고 차근차근 수순을 밟아 나가고 있다. 이번 한청청소년문화제의 주제는 `창의성을 통한 도전하는 청소년`으로 정했다. 창의성은 청소년의 무기이며 도전은 청소년의 의무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진학을 위한 입시 경쟁에서 조금이나마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청소년문화제를 추진하는 시간들은 어쩌면 기쁨일 수 있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은 그들의 재능과 꿈과 열정이 들어 있는 노력의 결과로 기뻐하는 그들과 같이하는 시간들이 즐거움이다. 숨어 있는 끼의 발산과 건전한 몸짓은 청소년이기에 건전하고 건강하게 보이는 것이다. 바로 젊음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젊음은 있었지만 젊음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미래의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나가느냐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청청소년문화제가 청소년들의 문화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어 다양한 문화활동과 참여를 통해 건전한 가치관 정립과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2009-09-18

초지일관(初志一貫)

윤경희포항여성회장어느 날 퇴근하여 집에 가니 책상 위에 콩이 담겨진 접시와 빈 접시, 그리고 젓가락이 올려져 있다.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치고 나자 어머님은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젓가락으로 콩을 옮기기 시작하신다. “어머님~ 뭐 하세요?” “젓가락질 연습하고 안 있나. 남들하고 밥 먹을 때도 그렇고~ 젓가락질을 못하니 좀 그래서~” 그렇게 시작한 젓가락질은 20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어머님, 쉬엄쉬엄 하시죠~. 같은 근육을 쓰는 일이라 손가락에 무리가 갈 텐데~” “괘않다. 연습하면 나아지겠지~ 젓가락도 자꾸 쓰니까 금방 느는구만~ 인자는 쌀알도 안 집나.” 그렇게 며칠을 하시더니 이제는 제법 젓가락 사용이 익숙해지셨단다. 어머님의 유년시절, 어머님 댁의 여성들에게는 밥상 위의 금기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적으로 집을 수 있는 젓가락의 사용을 남자들에게만 허용했었다는 것이다. “어디 여자가 감히~어른들 앞에서 음식을 콕콕 집어서 먹느냐~”는 금기가 어머님댁에는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숟가락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중심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단다. 때문에 어머님께서는 젓가락 사용법을 익힐 기회가 없었으며 지금까지도 젓가락 사용이 서툴다고 하신다. 덕분에 나의 남편도 젓가락 사용이 서툴다. 어머님의 시대에는 특별히 여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금기들이 많았던 듯하다. 논리가 정연한 언변, 활동적인 성격, 자주 웃는 일, 공부 잘하는 것, 글 잘 쓰는 것 등 이들 모두 어른들의 걱정을 듣기에 충분했었다고 한다. -나름 근대화된 시기를 살아온 내게는 납득하기 힘이 들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어머님과 비슷한 시절을 살아오신 세대의 어머님들에게는 후회와 한이 많아 보인다. “내가 그때 부모님 말씀 거역하고 공부를 더 했으면 지금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꿈이 있던 자리에 후회가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후회가 들어선 자리엔 한과 질투도 혼돈스럽게 공존한다. 여성으로서 당신들의 삶이 얼마나 소외받고 배제당했었나를 한스러워하시지만, 이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저항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자신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입장과 처지에 있든 보편적 가치에 따른 초지일관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대체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사회현상과 일상을 판단하겠으나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가치의 적용이 달라지기도 함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에게 있어 가치관의 적용과 판단이 변화하는 것은 그다지 사회적 반향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나, 그것이 제도를 비롯한 사회로 확대될 때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인권에 대한 보편적 가치는 시대와 정권의 성격을 불문하고 관통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들의 인권이 침해될 때 이를 구제할 수 있도록 국가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더불어 소외되거나 배제되었던 여성인권이 오늘날처럼 확장되기까지 그저 주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님 세대 여성들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받았던 차별적 관행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개선의 요구가 높았으며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이들의 희생과 헌신적인 싸움 끝에 얻어낸 성과였던 것이다. 이후 국가정책 속에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여내기 위한 정책 전담 기구로서 여성부가 신설되었으며 여성가족부를 거쳐 다시 여성부로 오늘까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외된 이들의 인권과 복지를 담지해야 할 직무를 가진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에 대한 권한의 축소와 정책 방향의 시대적 역행은 유감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특별히 근래 들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권고안이 시정되지 않는 일이 많다 하니 인권 구제의 후퇴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이다. 심려가 늘어나는 요즘, 어떤 정치적 입장과 처지에 따라 변화하지 말아야 할 보편적 가치의 중심은 인권-평등권·자유권·사회권 등- 즉, 국민들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고르게 누릴 수 있도록 함에 있음을 위정자들이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

2009-09-17

생명의 무게

이정희위덕대 일본어학과 교수일본의 단편소설의 귀재라 일컫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의 작품 중에`거미줄`(1918)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이 연못가에 앉아서 연꽃 사이로 보이는 지옥을 바라다보았다. 지옥에서 간다타라는 죄인이 다른 죄인들과 함께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간다타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한 악독한 도둑이었는데, 단 한 번 좋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날 숲 속을 지나가다 작은 거미 한 마리가 길가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여 밟아 죽이려고 했는데, `아무리 작은 것이지만 생명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밟아 죽이는 것은 불쌍하다` 하여 그냥 살려주었던 것이다. 부처님은 간다타가 이런 일을 한 것을 기억하시고는 간다타를 구제할 생각으로 연꽃 위에 있던 거미를 살짝 집어서 지옥을 내려 보냈다. 지옥에 있던 간다타는 자기가 있는 쪽으로 거미줄이 내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하면서 거미줄을 잡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올라오면서 잘하면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고, 어쩌면 극락까지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 올라와서 잠시 쉴 생각으로 자기가 올라왔던 밑을 내려다보았다. 지옥은 어느새 보이지도 않았다. 간다타는 지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여 좋아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자기 뒤를 이어 거미줄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아닌가. 간다타는 자기 한 사람으로도 견딜까 말까 한 거미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무사히 올라왔는지 의아해하면서, 만약 거미줄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므로 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죄인들! 누구 마음대로 올라오는 거야. 내려가” 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그 순간 거미줄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간다타는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일본문학의 이해`라는 시간에 이 작품을 읽고 토론한 적이 있다. 학생들의 첫 질문은 “부처님이 너무하시네요. 구해주시려면 끝까지 구해주시지” 하는 것과, “극악무도한 간다타가 딱 한 번 거미 한 마리 살려준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 등이었다. 학생들 지적처럼 극악무도한 간다타가 딱 한 번 거미 한 마리 살려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 될 수 있을까. 간다타가 거미를 밟아 죽이려고 하다가, “아무리 작은 것이지만 생명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밟아 죽이는 것은 불쌍하다”고 깨달아 거미를 살려준 것에 초점을 맞추어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깨닫고 실천하는 것과 깨닫지 않고 우연히 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때 `할육무합`이라는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처님이 시비(尸毘)왕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비둘기 한 마리가 매에 쫓기어 시비왕 품속으로 날아 들어오며 구조를 요청했다. 시비왕은 비둘기를 자신의 품속에 품으며 매에게 비둘기를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매는 시비왕에게 비둘기는 저녁 먹잇감으로 비둘기를 먹지 못하면 며칠을 굶은 터라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에 시비왕은 비둘기를 살리고 매도 살리는 방안을 생각하여 매에게 비둘기 무게만큼의 자기 살을 떼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비왕은 저울에다가 비둘기를 올려놓고 자신의 팔뚝의 살을 떼어내어 다른 한쪽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훨씬 가벼워 보이는 비둘기 쪽이 더 무거웠다. 시비왕은 하는 수 없이 다른 한쪽 팔뚝의 살을 떼어 올려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가벼워 보이는 비둘기 쪽이 무거웠다. 이번에는 다리 살을 떼어 놓아도 여전히 비둘기 쪽이 무거웠다. 하는 수 없이 시비왕은 자신의 몸 전체를 저울에 올려놓았더니 그제서야 비둘기 무게와 똑같아졌다는 것이다. 시비왕도 처음에는 비둘기가 작고 가벼워서 비둘기만큼의 고깃덩어리는 얼마든지 떼어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목숨을 다 내놓아야 비둘기 몫하고 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생명의 무게, 즉 생명의 소중함은 똑같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생명마저도 경시되어 가는 이 시대에 다시 한번 되새겨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2009-09-16

투명사회 만들기 운동

지난 7월18일,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에서 주최한 `2009년 전국 청소년 투명사회 만들기 발표 대회`에 참석했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는 1913년 도산 안창호선생님이 세운 흥사단의 부설기관으로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없애고 밝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창설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부패 사건을 조명하여 성명 및 논평, 그리고 토론회 등을 통한 `반부패 정책 활동`과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될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정직을 심어주는 `청소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국 청소년 투명사회 만들기 발표대회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패문제에 대해 글과 이미지로 표현하게 하여 이를 공모하고 발표 기회를 주어 심사·포상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투명의식을 고취하여 우리 사회를 투명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투명사회는 정직과 근면에서부터`, `청소년은 미래다` 라는 글을 비롯하여 `진실을 보여주세요` 등의 이미지 분야에 이르기까지 20명의 중고등학생들이 내놓은 깨끗한 사회를 위한 주장들은 참신하다 못해 그 자리에 참석한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국투명성기구가 작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반부패 인식지수가 10점 만점에 6.1점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응답자의 17.7%가 `10억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고, 그 일로 인하여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도 좋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또한 중고등학생들의 80% 정도가 `우리 사회는 썩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국민이 더 잘 살 수 있다면 지도자의 어느 정도 부패행위는 괜찮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부패는 있을 수 있다`, `금품을 써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쓰겠다` 라는 대답이 20%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 반부패교육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는 87.4%가 `교육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패되어 있는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인류 역사상 어떤 사회도 부정부패가 없었던 사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지속된 적 또한 없었다. 발표자 중에 반부패 교육 실시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생이 있었다. 지속적인 반부패 교육의 실시, 정직의 가치 고취, 그리고 투명한 사회 만들기 운동은 지금 우리 사회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투명사회운동본부인 흥사단 산하 지역 흥사단 중에 경북지역은 한 곳도 없다. 대구지역흥사단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난번 발표대회 참가자 중에 경북지역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거니와 대구지역 중고등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투명사회 만들기 운동의 주체는 시민들일 것이다. 투명사회 만들기 운동이 조직적으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확산·전개된다면, 분명 언젠가는 투명한 사회가 도래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009-08-31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지난주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 북단으로 날아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측에 억류되어 있던 여기자들과 함께 귀국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에 대해 외교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가 내겐 없다. 다만 전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귀환한 밝은 표정의 두 여기자가 느꼈을 안도의 마음이 내게도 절박하게 다가올 뿐이다. 같은 시각 한반도 남단의 평택에서는 파업에 참여해 농성 중이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대테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사측과 경찰의 진압 작전이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대테러 작전에 사용되어야 할 테이저건, 다목적 발사총, 발암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최루액, 곤봉과 방패를 이용한 집단 구타 등이 국가와 사법권이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국민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미 신원이 확보되어 인신이 구속된 노동자를 여러 명의 무장경찰이 곤봉과 방패로 무차별 난타하는 장면과 굉음을 내며 저공비행으로 최루액을 끊임없이 쏟아내던 헬리콥터의 모습은 1980년 광주를 연상케 한다. 갈등 당사자 간 주장의 시비(是非)를 떠나 갈등과 분쟁이 치열한 사안에 대해서 평화적으로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 그러나 이 쌍용차 사안에 대해 해당 부처 장관은 방관하고, 공권력은 한쪽 이해 당사자와 함께 노동자측에 대한 진압작전을 펼쳤다. 결국 사측과 경찰의 막강 화력으로 노동자측이 벼랑 끝 아찔한 상황까지 몰린 후에야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었으며, 노사 양측과 경찰 모두에게 부상과 손실을 입힌 채 일단은 불안한 평화를 얻었다. 평택의 쌍용자동차 문제는 단지 노사 양측의 물리적·경제적 상처를 논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노동계만의 사안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받던 시절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해 사용하던 최루액과 다목적 발사총 등을 비롯한 각종 신무기가 공격의 목적으로 적이나 테러집단이 아닌 국민을 향했음을 내외에 적극적으로 표방한 사건이기에 인권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는 격동의 세월을 슬기롭게 헤쳐 나왔던 많은 경험들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겪었으나 전쟁의 참화를 슬기롭게 극복해냈으며, 광주의 아픈 기억이 있었으나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정으로 제한적이나마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더불어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차별적 관행을 일소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신설로 여성, 장애인, 아동, 노인, 노동 등 인권 부문에서도 많은 진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인권부문의 후퇴가 두드러지고 있어 심히 안타깝다 아니할 수 없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확보해 주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 규모를 대폭 축소해 그 지위를 격하시켰을 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장 임명 과정에서도 후보자 자질을 검증하기 위한 어떤 공적 절차도 진행하지 않았으며, 인권과 무관한 인사를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인권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결국 이와 같은 까닭으로 한국의 인권위원회 등급을 A등급에서 B등급으로 격하시킬 것을 골자로 하는 아시아인권기구(AHRC)의 요구안이 8월 국제인권기구(ICC)에 제출되었다. 평택에 전쟁 같은 진압이 펼쳐지고 있을 때 늦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구제안이 발표되었다. 축소된 권한만큼 그 파장이 크지는 않았으나,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여 제 목소리를 내는데 게으르지 않아야 할 듯하다. 이번 쌍용자동차 사건은 정부와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민심이 천심이다. 국가와 정부는 국민의 안녕을 위해 위임된 권한을 적절하게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현대사회가 다양화된 사회이기에 다양한 목소리와 비판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에 억압하기보다 깊이 경청하고 공감해 주는 따뜻한 정부가 경쟁력 있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음을 위정자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9-08-13

휴가

언제부터인지 여름이나 겨울에 아이들 방학쯤이 되면 가족단위 휴가를 떠나는 게 관례가 되었고 못 가면 왠지 없어 보인다든가 괜스레 기가 죽어 보인다든지 해서 무조건 어디를 다녀와야 하는 걸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으로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이른 휴가철 스케줄로 어딘가 떠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여러 차례 가고 싶었던 자연휴양림을 가게 된 것이다. 보통 휴양림이라면 약간은 깊은 산 속에 자리잡혀 공기 좋고 경관 좋고 요즘 말하는 웰빙코스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꼭 한번 가서 쉬었다 오고 싶었는데 아는 분의 도움으로 그것도 공짜(?)로 가게 되어서 먹을거리를 준비하여 출발을 하였다. 좁은 2차선 도로에 인접한 깊지 않은 산속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예쁜 오두막집들이 보이고 입구에서는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가져온 짐들을 옮겨주는 서비스까지 받으며 마음이 한껏 부푼채 첫날이 시작되었다. 깨끗하게 청소된 방 2개짜리에 작은집 제목은 `비둘기`. 준비해온 짐들을 정리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였다. 조금 내려가니 아이들이 계곡 끝에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모아놓은 곳에서 부모님들과 물장구를 치며 신이 났다. 풍덩! 날씨가 무더운 탓에 온몸에 땀이 나서 나도 풍덩 물속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며 조금후에라도 꼭 물속에서 놀아보리라 생각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무로 만든 테이블 같은 시설도 되어 있어서 삼겹살이라도 구워먹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야외 공간도 있고 작은 무대도 있었다. 저 무대에서는 무엇을 할까? 휴양림이라면 조용히 좋은 분위기에서 휴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착오였을까? 어느 콘도나 리조트에서 보았던 생각에 약간 실망같은 마음이 지나갔다. 나의 고정관념속 노파심이었겠지만…. 밤이 되니 주변에 보이는 것은 나무와 풀과 벌레들! 옆에 있는 작은 집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무것도 없다. 그것도 아직 이른 휴가철에 주중이어서인지 불이 켜진 곳이 두 곳 뿐이었다. 휴가는 무엇일까.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고 앞으로의 좋은 미래를 위해 생활 속에 재충전의 기회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휴가도 외국여행으로 대체가 되어 공항에 여행객이 넘쳐난다는 소식도 들은 바 있지만 휴가는 꼭 가야 하는지, 다녀온다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생활 속에서 고민하고 걱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정말 재충전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머리가 너무 어수선해서 잠시라도 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신선하고 조용한 숲 속 오두막집에서 며칠 쉬고 온다면 우리 두뇌 속이 깨끗해진 느낌으로 새롭게 무한정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을 것이다. 얼마든지 무엇을 새롭게 계획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의 휴가 의미는 어떨까? 일 년에 한두 번은 가야만 하고 누구네가 가니 우리도 가야하고 남들이 가는데 우리만 안가면 웃기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생도 학교에서 결석처리를 하지 않는단다. 이제 휴가는 가야 한다. 못 가면 요즘 애들 말로 쪽(?) 팔린단다. 그렇다면 다녀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입었던 옷가지 빨랫감, 사용하고 난 물건들 정리 등 오히려 더 일거리가 생길 것이고 좋았던 생각과 나빴던 생각에 며칠은 머리가 혼란스러울 것이다. 몸도 피로에 지쳐 있을 것이고 또다시 며칠 집에서 쉬어야 예전처럼 될 것 같다. 그럴 걸 왜 휴가를 떠나느냐 하겠지만 휴가는 또다시 떠나게 될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사찰도 여러 군데 들리면서 마음공부 하며 일찍 도착했다. 외롭고 고생스런(방의 위치가 높아서) 시간이었지만 잠시 의미 있는 시간이라 생각되며 언젠가는 아쉬운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아 그리움을 만들지도 모른다.

2009-07-27

고민하는 힘

이정희위덕대 일본어학과 교수참으로 많은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까 에서부터, 당장 무엇을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한번 심각하게 고민을 하면 소위 고민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고민을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사고가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 결국에 가서는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그 순간에 난 새로운 생각과 확신을 얻는다. 며칠 전에 재일교포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전임교수가 된 도쿄대학 강상중 교수의 저서 `고민하는 힘`을 읽었다. 참 좋은 책이다. 요는 진지하게 고민하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에 인생을 건 20대부터 나는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해왔다. 대학시절인 1980년대 초도 그리 편안한 사회는 아니었다. 민주화 운동으로 대학 수업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고, 졸업이 다가오면, 취업 준비로 타자나 부기 자격증 취득하느라 학원을 다녀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취업 준비로 자격증 획득에 신경을 쓰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졸업 후 일본 유학 갈 예정으로 취직 준비는 뒷전으로 졸업논문에 심혈을 기울였다. 졸업논문은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 작품론이었다. 강상중 교수가 `고민하는 힘`에 거론한 작가다. 그래서 더욱더 `고민하는 힘`에 공감이 간다. 젊은 시절, 최대의 고민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였다. 몇 날 며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철학서 등을 알지도 못하면서 읽고 또 읽곤 했다. 이 문제의 해답을 얻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확실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나름대로 삶의 가치체계를 정립했다고는 하지만,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여러 가지 모순이나 문제점이 어딘가 중간 단계에서 완화된다거나 여과되지 않고 개인에게 공격적으로 작용을 할 때가 많다. 또한 변화무쌍한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인간을 원하면서도 개개인에 대해서는 과도하리만치 일관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홍수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정보 정보들. 정보에 둔하다거나 정보에 민감하지 않으면 뭔가 이 사회에서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해하기도 한다. 많이 알고 있다거나 정보통은 지성(知性)과는 별개의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지성의 작용은 아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우(know)` 가 아니라 `씽크(think)`인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지적(知的)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야말로 지성(知性)이 있는 사람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새로운 발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민부터 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민만 하면 뭐하냐 하겠지만,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분명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민의 힘이라는 것이다.

2009-07-16

다른 점을 인정하라

그동안 참 단순하게 살아온 것 같다. 아주 쉬운 말인데 모르고 사는 우리들이 우매한 것인지 너무 소홀하게 사는 것인지 모르지만 쉬운 것을 이해하려고 들거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도 아등바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누가 그랬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오기까지 몇십 년이 지났노라고. 나와 상대방이 틀림없이 다르다. 우주공간 어느 곳 어느 누구도 서로 똑같은 사람은 없다. 모습이 다르고 사는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들도 모든 것이 아주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다르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갈등도 생기고 미움도 생기고 원망도 생기는 법이다. 촌수가 없는 가장 가까운 남편도 살아온 환경에서부터 나와 사뭇 달랐다. 그저 서로 불만을 간직한 채 맞추어 가고 있을 뿐 결코 나와 모든 것이 같아서 잘 살아지는 건 아니다. 단순한 내 생각 때문에 그가 나와 다르다는 걸 잊고 살았고 다르지만 내가 옳으니까 내게 맞추어 주지 않는다고 항상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맞추어 주지 않는 데서 불만이 생기고 미움이 커져간 것이다. 며칠 전 대학교수와 연구실에 근무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하는 도중 “아! 그랬구나” “그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퍼뜩 정신이 정리되는 듯 했다. 교수는 주말이나 시간이 잠시라도 생기면 그동안 부족했던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을 챙긴다 하면서 자기 여자친구는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것이다. 교수는 남을 가르치는 직업이므로 책과 강의뿐으로 운동이 부족했겠고 또 운동을 좋아했을 것이고 여자친구는 연구실에서 많은 연구와 실험을 하는 사람이니 정신적 소모가 많았고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다르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만일 쉬는 시간에 운동을 해야지 왜 저렇게 늘어져 있을까 혹은 왜 쉬지 않고 저렇게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을까 한다면 둘의 관계가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며 움직이는 사람은 편히 쉬는 사람을 이해 못할 것이고 편히 쉬고자 하는 사람은 움직이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여길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힘이 들어도 시장에 가서 싸고 많이 주는 편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 비싸더라도 편하고 시설 좋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선택할 것이다. 시장가는 사람은 백화점 가는 사람을 소비가 심하다고 평하고 반대로 백화점 가는 사람은 시장가는 사람을 짠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백화점 가던 사람도 시장에 가면 더 싱싱할 수 있고 더 쌀 수 있는 좋은 점이 있고 시장가던 사람도 백화점이 편리하지만 약간의 지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뿐이겠는가 수많은 경우 속에서 수많은 갈등들이 생기고 자라나기 전에 상대방의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그럴 수 있구나” 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모두 다 다르다. 그러나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편하게 하고 원만하게 해주는 길인데 그것을 가슴으로 터득하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고 지금이나마 가슴깊이 알고 상대를 인정하는 시선으로 쳐다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아들의 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 내 가슴이 열렸다. 누구나 말뜻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슴으로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다는 것이다. 특히 부부간에는 상대가 나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다음에 이해하면 어찌해서 다툼이 생길 것인가? 그런데 우리들은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꼭 느지막이 깨닫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나와 분명히 다른 남편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제 자신 있게 나의 자식들에게 말할 수 있다. “네 처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네가 커피를 좋아한다면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어 보라”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서로 바꾸어 먹으며 시원한 해변을 걸어보자. 두 가지 맛이 다르기 때문에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2009-07-14

잭 스탠튼의 연설

“정치가는 공장을 다시 열지도 조선소 일을 제공하지도 조합과 여러분을 돕지는 못합니다. 이 나라에서 육체노동자는 대우를 받지 못 해요. 경제의 국경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머리 근육을 단련시켜야 합니다. 학교로 돌아가서 새 기술을 익혀야 해요. 이것은 약속드리죠. 전 여러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평생교육을 위해 투쟁할 겁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요.” 1999년에 개봉된 영화 `프라이머리 칼라스`(primary collors)에 나오는 대사다. 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어 실의에 빠진,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 앞에서 극중 대선후보인 주인공 잭 스탠튼이 연설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획기적인 일을 하겠다고, 정치가가 진실을 말하는. 참가자들 대개는 정치가에 대한 불신, 현실에 대한 무력감, 실직에 대한 분노로 폭발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을텐데 그는 과연 어떤 진실을 말할 것이며, 무슨 약속을 해 줄 수 있을까? 뒷 장면이 절로 궁금해지는 가운데 그는 뜻밖의 말을 쏟아낸 것이다. 사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존 트라볼타가 이 영화의 모티브인 클린턴을 매우 잘 연기했다는 소소한 즐거움을 제외하고는 크게 기억에 남을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연설 장면 때문이다. 정치지도자의 필요와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바로 그 장면. 잭 스탠튼의 말처럼 정치가는 닫힌 조선소 공장을 당장 다시 열거나, 잃어버린 일자리를 되찾아줄 수는 없다. 그렇게 해 주겠다고 주장했더라면 그의 연설은 그저 그런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을 뿐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식산업사회로의 이동이라는 커다란 변화가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초래할 변화를 직시하도록 설득하고, 새로운 투자와 교육을 통해 육체노동자들에게 재교육과 평생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는 비전을 제시하여 참석자들로부터 열광적인 협력과 지지를 이끌어내었다. 영화 속 이야기니까 그 이후의 결과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난국을 헤쳐나갈 분명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영화에서와 같이 실직자들이 크게 증가하여 실업자수가 1백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실직률이 남성에 비해 3배~5배 정도 웃돌아 현재의 경제위기는 곧 여성의 위기라고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우선 배제시키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성을 `가계 보조자`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의 오랜 차별의식이 노동시장에서도 고스란히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전일제 취업이 어려운 주부 등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단시간 근로를 활성화하기로 했다는 정부의 발표가 반갑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7월 여성주간을 앞두고 우울한 통계를 접하며 잭 스탠튼의 연설을 떠올렸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영화에서 노동자들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탄탄한 비전이 지금 우리 여성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위기를 불안이 아닌 새로운 도약과 변화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9-06-30

일곱 살 아이의 세상 알아가기

요즈음 책 `일곱 살 아이의 세상 알아가기`에 푹 빠져 있다. 마침 딸아이가 일곱 살이라 정독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일곱 살 딸아이에게 무엇을 체험하게 하고 무엇을 할 줄 알게 하고 무엇을 알게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생겼다. 아마 직장 때문에 아이랑 많이 놀아주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일 게다. 이 책에는 한 아이가 일곱 살이 되는 동안 무엇을 체험하고, 할 줄 알고, 알고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적어도 접해봐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일곱 살 아이라면 살림살이 가운데 네 가지, 예를 들면 계단 청소, 침대보 깔기, 빨래 널기, 손수건 다림질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선물을 포장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과 친구 한 명 또는 친구 세 명을 위해서 두 가지 요리 정도는 해낼 수 있어야 하고, 한 번 쯤은 아기 기저귀를 채워보았거나 그것을 도와준 적이 있어야 하고,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야 하고, 감기에 걸렸을 때 자기 몸에 어떠한 일이 생기는지 알아야 하고, 상처를 처리할 줄 알아야 하고, 각기 다른 동물 세 마리에게 어떻게 먹이를 주는지 알아야 하고, 꽃에 물을 줄 주 알아야 하고, 한번 쯤 묘지에 가본 적이 있어야 하고, 점자가 뭔지 알아야 하고, 점자 혹은 수화로 세 단어 정도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간단한 마술 두 개쯤은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노래 세 곡을 부를 줄 알아야 하고, 그 가운데 한 곡은 외국어로 부를 수 있어야 하고, 한 번쯤은 악기를 만들어 보았어야 하고,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교향곡의 느린 악장을 지휘해본 적이 있어야 하고, 외국어 세 가지 정도와 방언을 소리로 구할 줄 알아야 하고, 수수께끼와 우스갯소리 세 가지는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고,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 하나쯤 부드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기도문 하나는 알아야 하고, 한자를 써본 적이 있어야 하고, 망원경을 본 적이 있어야 하고, 별자리 두 개는 알아야 하고, 해시계를 본 적이 있어야 하고, 시내 지도나 건축 모형 따위를 알아야 하고, 도서관과 박물관에 가본 적이 있어야 하고, 한 번쯤은 무대 위에 서서 다른 사람과 함께 관객에게 뭔가 준비된 것을 보여준 적이 있어야 하고, 부모나 조부모의 인생 혹은 어린 시절 등 가족사 몇 가지는 알고 있어야 하고, 비밀이 무엇인지, 손님을 환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소리가 무엇인지, 질투심, 향수, 오해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기고자 하는 것과 패배할 줄 아는 것을 알아야 하고, 배고픔과 짜증을 혼동하지 않고, 피로와 슬픔을 혼동하지 않고, 밤에 오줌을 싸는 것이 정서 상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마치 풍선이 터지듯이….”, “통이 가득 차 넘치는 것처럼….” 등의 비유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아빠가 면도하는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어야 하고, 아플 때 아빠의 병간호를 받아본 적이 있어야 하고, 눈사람을 만든 적이 있어야 하고, 모래성을 쌓아본 적이 있어야 하고, 다른 집어서 자본 적이 있어야 하고, 생으로 먹는 것과 익혀 먹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뭔가를 수집해 보기도 하고, 싸움을 중재해본 적이 있어야 하고, 못을 박고 나사를 끼울 줄 알고 건전지를 교환할 줄 알아야 하고, 북을 칠 때나 안마를 할 때 힘을 적절히 배분할 줄 알아야 하고, 자기 맥박뿐만 아니라 친구나 동물의 맥박을 느껴본 적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따 끝낼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그리고 `어린이`임을 자랑스럽게 여긴 적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일곱 살 아이의 세상 알아가기는 계속해서 열거되어 있다. 읽어내려 가면서 딸아이는 무엇을 할 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손으로 세어 가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아이를 위한다고 하면서 내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더 확장할 수 있는 아이의 능력을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가 여덟 살이 되기 전에 생활 속에서,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체험하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서, `어린이`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고 싶다.

2009-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