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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00세 시대

한 나라의 평균 수명은 그 나라의 경제력과 위생 상태 등을 종합평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일수록 평균 수명이 길다. 위생 관념이 희박한 후진국의 수명과 선진국의 수명 격차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조금은 오래된 통계이지만, 2000년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평균 수명은 당시 25.9세에 불과했다. 이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도 766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지금처럼 올라선 것도 불과 60여 년 만의 일이다. 조선시대의 서민층 평균 수명은 40세를 채 넘기지 못했던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1956년 공식 집계된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42세였다. 1960년 53세, 1970년대 들어서 겨우 60세를 넘겼다. 50년대 한국전쟁의 혼란과 60년대 한국 경제의 궁핍성이 극복되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평균 수명도 조금씩 늘어났던 것이다.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81세다. 북한은 우리보다 10세 이상 낮은 69.5세로 알려져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지구촌 곳곳의 사람 수명은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다. 한 나라 안에서도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지역에 따라서 수명의 격차도 많이 다르다. 이를 우리는 건강불평등이란 말로 표현한다.100세 시대를 앞두고 모두가 장수가(長壽歌)를 노래하고 있으나 과연 우리는 장수시대를 살고 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1세라 하나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건강수명은 73세에 머물러 있다. 건강수명은 단순히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활동하며 건강하게 산 기간을 의미한다. 선진국에서는 평균 수명보다 건강수명을 더 중요한 자료로 인용한다고 한다.여기에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고 살아갈 경제수명까지 감안하면 아직도 우리나라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많다.재벌닷컴이 우리나라 60대 대기업 총수의 수명을 조사해 보니 평균 77세에 그쳤다고 한다. 재벌 총수라고 반드시 오래 사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LG그룹 구본무 회장도 73세의 나이로 타계했으니 말이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 새삼 실감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5-23

캥거루족

캐나다에서는 직장 없이 이리저리 떠돌다 집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젊은이를 ‘부메랑 키즈’라 부른다. 우리 사회의 ‘캥거루족’과 같은 의미를 가진 용어다. 학교를 졸업해 직장을 가져야 할 나이임에도 취직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는 캥거루족은 지구촌 나라마다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프리터라 한다. 자유(free)와 아르바이트(arbeit)의 합성어다. 돈이 급할 때 임시 취업하고 정식 직장을 구하지 않는 젊은이다. 영국에서는 부모님의 연금을 빼먹는다고 하여 키퍼스라 부른다.요즘 EU 회원국에서도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모양이다. 28개 EU 회원 국가의 25∼34세 젊은이 4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캥거루족이라 한다.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그리스, 몰타,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 쪽일수록 더 심해 미취업 젊은이의 절반 가량이 캥거루족으로 분류된다. 유럽쪽 부모도 우리의 부모와 마음이 같다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일거라 짐작된다.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직장인 가운데 자신이 캥거루족이라 생각하는 젊은이가 36.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주거를 포함해 경제적 의존이 79.3%, 정신적 의존 41.2%였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월급이 적어서’가 64%로 가장 많았고, ‘목돈 마련을 위해서’가 31.7%로 다음을 차지했다. ‘지출이 커서’, ‘빚이 있어서’ 등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이유로 조사됐다.2000년대 들면서 청년 취업이 힘들어지고 취업이 사회 문제화 되자 우리 사회에도 ‘캥거루족’이란 용어가 생겨났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청년실업으로 인한 ‘늦은 결혼’ 등 사회적 문제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으나 막상 청년실업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눈길을 끄는 것은 캥거루족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캥거루족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40대가 20.3%, 50대가 15%에 달했다. 이들은 20-30대보다 독립할 의사도 희박하다. 캥거루족에 대한 새로운 진단과 대책 마련이 있어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5-21

학벌주의 퇴장

2016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을 지켜보던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세돌 9단의 우세를 점쳤던 예상과 달리 알파고의 완승으로 바둑이 끝나자, 허탈함과 동시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의 가슴을 두들겼다. 과연 장차 인간은 인간이 개발한 기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몸으로 체험했던 것이다.미국 NBC방송은 일자리 특집 방송을 하면서 로봇에게 빼앗길 직업 9가지를 발표했다. 4차 산업의 발달로 기계에게 인간이 내줘야 할 직업에는 약사, 변호사, 운전기사, 우주비행사, 점원, 군인, 베이비시터, 재난 구조사, 스포츠 기자 등이 포함됐다.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면서 우리나라도 인기 직업의 부침이 요란했다. 6·25 전쟁이 끝난 50년대에는 군장교가 최고 인기 직업인이었다. 60년대는 택시운전사, 70년대는 무역업 종사자, 80년대는 금융인, 90년대는 벤처 기업가였으며, 2000년대 들어와서는 공인회계사, 사회복지사 등이 인기 직업군으로 떠올랐다.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달려가던 길목에서 과거 우리 사회는 필연적으로 학벌과 학력이 우선되는 사회현상을 겪어야 했다. 얼마만큼 교육을 받았는지, 어느 학교 출신인지 등이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학력과 학벌이 우선시되는 풍토가 자리를 잡았고,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로 대별되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신분도 만들어졌다. 엄격히 말해 학벌과 학력은 구별되는 용어이나 능력보다는 학맥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한 사회에서 능력과 학벌, 학력의 삼자가 동등하게 나눠질 때 우리는 능력중심 사회라 한다. 직업의 귀천도 이런 데서는 차이가 날 수 없다.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가 선발하는 환경미화원 모집에 학력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얼마 전 경북 구미시 환경미화원 공개 채용의 경쟁률이 17대 1을 보였다. 전체 지원자의 41%가 대졸 출신이라고 한다. 불황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학벌을 내세우는 우리사회도 이젠 한물 갈 모양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5-18

영일만 친구 야시장

원래 야시장(夜市場)은 중화권 화교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생활 풍경이었다. 화교권에서는 그냥 야시로 부르고 있으나 우리나라에 와서는 야시장으로 호칭하게 됐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야시장 형태로 발전하였고,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야시장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특히 관광지를 낀 홍콩, 대만, 중국, 태국 등 동남아 지역의 야시장은 그곳의 문화와 현지인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우리나라도 야시장 개장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과 부산, 제주 등 전국 어디서나 야시장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부산의 깡통시장 야시장이 원조라 한다. 전국 최초의 상설시장으로 문을 열어 지금까지 인기를 모으고 있다.대구에는 전국 3대 시장으로 손꼽히는 서문시장이 지난 2016년 6월 야시장을 개장했다. 총길이 350m의 대형 야시장으로 문을 연 서문시장 야시장은 그해 여름 휴가철에만 130만 명의 인파가 몰려와 후발 야시장으로서 자리 매김에 성공했다. 휴가철 기간 동안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지출한 소비 활동 추정액도 350억 원에 달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거뒀다.대구시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서문시장 야시장은 전체 방문객의 35%가 외지 방문객으로 알려졌다. 경북은 물론 경남, 경기, 서울, 울산, 부산 등 전국에서 방문한 것으로 조사돼 야시장이 외지 방문객을 유인하는 장소로도 매우 유용한 것으로 분석됐다.특히 야시장 개장은 사업권 부여에 있어 지역의 소외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과정도 있어 지역에 따라 야시장의 개장이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요즘은 취업난의 청년을 위한 장소로서도 야시장의 활용도가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포항의 대표 시가지 중앙상가 활성화를 위한 야시장 준비가 한창이다. 행정안전부 2018년 전통시장 야시장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된 ‘영일만친구 야시장’ 개장을 앞두고 상인들의 기대감도 높다. 야시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거리다. 포항의 특징을 잘 찍어낼 야시장 개장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5-16

핵실험장

세계 최초의 핵실험은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중인 1945년 7월 16일 이뤄졌다. 독일 출신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1939년과 1941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빨리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히틀러의 독일이 핵폭탄을 만들고 있으니 미국이 보다 빨리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핵무기를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3년의 노력 끝에 맨해튼 프로젝트팀은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Alamogordo) 사막에서 세계 최초의 핵실험을 실시했다.이 핵실험에는 ‘트리니티(Trinity)’라는 암호명이, 폭탄에는‘가제트(Gadget)’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류 최초의 핵폭발은 12km 상공까지 버섯기둥을 만들었다. 가제트는 TNT 20킬로톤(kiloton)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증명됐다.핵무기가 처음으로 실제 사용된 곳은 일본 히로시마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1945년 5월 7일 항복을 선언했지만 일본은 끝까지 연합군과 대치했다. 미국은 핵무기를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했다. ‘리틀보이(Little Boy)’라는 이름의 이 폭탄은 히로시마 600m 상공에서 폭발, 당시 사망자만 8만 명, 이후 방사능 오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8월 9일에는 일본 나가사키에 두 번째 핵폭탄 ‘팻맨(Fat Man)’이 투하돼, 첫 넉 달 동안에만 6만~8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그해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다.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 폐쇄하겠다고 발표해 화제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3일 6차 핵실험까지 모두 6차례의 핵실험을 치른 곳이다.지하 암반 대부분이 화강암이어서 각종 방사성 물질의 유출 가능성이 크지 않아 핵실험 장소로서 안성맞춤이란 평가를 받아온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쇄는 한반도 비핵화에 한 걸음 나아갔다는 낭보로 여겨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5-15

복부인

우리나라에 복부인(福婦人)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다. 우리나라는 60년대부터 시작한 경제개발 정책으로 농촌 인구 이탈과 함께 대도시 집중화가 본격화된다. 강북 중심의 서울 도심이 포화 상태에 도달하자 정부는 늘어나는 인구수용을 위해 서울 강남을 개발키로 한다. 서울 강남은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맞물리면서 토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년 사이 10배가 오르는 등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졸부가 대거 등장한다. 토지 투기에서 시작한 부동산은 70년대 중반 아파트로 옮겨 붙으면서 부동산 열풍을 더욱 진작했다. 75년 분양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대표적 투기 아파트다. 복부인이라는 신조어도 이때 생겨난다. 당시 언론에서는 투기를 위해 복덕방을 들락날락하는 상류층 부인을 복부인이라 지칭했으나 이후 이 말은 부동산 투기의 대명사로 변모한다.한국에 복부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와타나베 부인’이 있고, 중국에는 ‘다마’가 있다. 중국의 다마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큰엄마란 뜻을 가진 단어이나 ‘중국형 복부인’이다. 다마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한국의 복부인이 부동산 정도에 그치고 있는데 반해 중국의 다마는 세계 각국의 경제를 뒤흔들 정도의 엄청난 경제파워를 과시한다. 2013년 4월 국제 금 가격이 폭락했을 때 중국의 다마가 금을 사들이기 시작해 불과 열흘 만에 국제 금값을 정상화시켰다. 당시 다마가 사들인 금의 양이 300t에 달했다. 전 세계 연간 금 생산량의 10% 수준이어서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2014년~2015년 우리나라 제주도의 주택가격과 땅값 상승을 끌어올린 것도 중국의 복부인 다마의 자금이었다고 한다. 대구법원이 옮겨갈 대구시 수성구 연호동 일대가 투기꾼들이 몰려 야단법석이라고 한다. 법원이 옮긴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50여명이 살던 조용한 마을에 갑자기 건축 붐이 이는 등 투기열풍이 한창이라고 한다. 개발이익을 노리는 투기꾼의 장난으로 이 일대 땅값이 오르면 그 피해는 서민 몫이 되게 마련이다. 당국이 복부인들 단속 좀 해야겠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5-14

내 고장 영주 부석사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다. 중국의 전진(前秦)왕 부견이 승려 순도를 시켜 불상과 불경을 고구려에 보내면서부터다. 이후 그 영향으로 백제와 신라도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신라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국교화하는데까지 이르게 된다.불교가 이처럼 오랫동안 우리민족의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한반도에는 불교와 관련한 많은 유물과 유적이 남아있다.영주 부석사와 양산 통도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가 이제 곧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것이란 소식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처음은 아니지만 우리민족의 문화가 세계 인류의 유산으로서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다. 애초 ‘한국의 산사’라는 이름으로 7개 사찰을 신청했으나 세계문화유산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는 4개 사찰에 대해서만 세계유산위원회에 등재를 권고할 모양이다.이 중 영주에 소재한 부석사(浮石寺)는 우리 고장의 사찰이란 점에서 더욱 반갑고 자랑스럽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세운 절이다. 우리에겐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 무량수전이 있는 절로서 잘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 10대 사찰의 하나일 정도로 소문난 절이다. 국보 5점과 보물 6점, 유형문화재 2점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예사롭지 않는 절이다. 또 열손가락이 채 꼽히지 않는 고려시대 목조건물 가운데 두 동이 이 곳 부석사에 남아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부석사는 건축가 200명의 설문에서도 우리나라 고건축물로서 가장 잘 지은 건축물로 압도적 1위에 올랐다. 방랑시인 김삿갓도 극찬한 부석사가 오늘날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우리 모두가 축하할 일이다.오는 22일은 불기 2562년의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와 관련한 봉축 점등식이 막 시작되면서 부처님 오신날 기념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을 때다. 부처님 자비의 뜻이 널리 퍼져가는 시기에 부석사 등 4대 사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또 다른 축복의 소식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5-11

미아방지 지문등록제

가정의 달을 맞아 나들이가 많아지면서 어린이를 잃어버리는 사례가 잦다. 미아 방지를 위해 정부에서는 지문 등 사전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미리 지문, 사진, 보호자 인적사항 등을 등록해 놓고, 실종되었을 때 등록된 자료를 활용해 신속히 보호자를 찾아주는 제도다. 지문사전등록대상은 18세 미만 아동과 지적장애인과 치매질환자 중 보호자가 원하는 사람이다. 신청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안전Dream 사이트(www.safe182.go.kr)에서 등록하는 방법인 데, 지문등록은 방문해야 가능하다. 또 하나는 경찰서 지구대나 파출소에 방문하여 등록하면 된다. 어린이 지문등록이 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 어린이를 찾는 시간이 크게 차이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어린이날 연휴 기간 동안 18세 미만 실종 아동 신고 건수는 총 182건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8세 미만 미취학 아동은 27명이 실종된 것으로 접수됐다. 2016년 19명, 지난해 24명에 비해 소폭 늘어난 숫자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실종된 미취학 아동은 신고 당일 모두 발견됐지만 지문 등록 여부에 따라 발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올해 실종 신고된 아이 중 지문이 등록된 4명(14.8%)은 신고부터 발견까지 평균 23분이 걸렸다. 반면 지문이 등록되지 않은 23명은 경찰이 탐문 수색을 통해 발견하기까지 평균 66분이 소요됐다. 어린이날 연휴 기간에는 경찰 인력이 수색에 총동원되기 때문에 발견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평소 같으면 사흘 이상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참고로 지난해 지문 미등록 아동의 발견 시간은 평균 81.7시간으로 나타나 부모의 애간장을 다 녹였다는 통계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처럼 편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사전 지문 등록 비율은 2015년 말 29.9%에서 지난달 말 42.2%까지 늘었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지문 등록이 돼 있지 않다. 한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될, 미아방지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5-10

노노 학대

늙고 쇠약해진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고 하는 장례 풍속을 고려장(高麗葬)이라 한다. 오늘날에도 늙고 쇠약한 부모를 낯선 곳에 유기하는 불효한 행위를 일컬어 이렇게 통칭한다. 고려(高麗)라는 이름 때문에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있었던 장례 풍속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나 이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은 고증된 증거나 자료가 전혀 없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고령화되면서 노인인구 증가와 더불어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가 나날이 많아진 요즘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으나 부정적 현상의 사회 이슈화는 국가로서도 적잖은 부담이다. 특히 노인인구 증가로 인한 노동 인구의 비중 감소는 별도 대책이 필요한 분야다. 국가 전체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국가가 부양해야 할 짐은 그만큼 많아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 않다.우리나라는 작년 8월 말 기준으로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어섰다. 유엔이 정한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현실화됐다. 2000년 고령화 사회(노인인구 비중 7% 이상)로 진입한 후 불과 17년만에 닥친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참고로 일본은 24년, 미국은 73년, 프랑스는 113년이 걸렸다.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온 가족이 만나 1년에 한번 있는 어버이날을 기념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효의 나라다. 부모를 존중하는 마음만큼은 선진국 어느 나라 못지 않다.그러나 노인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우리가 겪는 불가피한 어두운 측면도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노노 학대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노인이 된 자녀와 배우자가 고령의 부모를 학대하는 행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령화와 함께 나이 든 자녀의 부양 능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경제적 어려움이 노노 학대 증가의 원인이라고 한다. 노인학대 유형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가해자 10명 중 4명이 자식이라 하니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인 것같다. 어버이날이 존속돼야 할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5-09

더블케어 & 트리플케어

우리나라에도 위로는 노부모를 부양하고, 아래로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성인 자녀를 지원해야 하는 5060 세대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른바 ‘더블케어’의 늪에 빠져있는 것이다. 더블케어는 자녀 양육과 부모 간병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본 요코하마국립대학 소마 나오코(相馬直子) 교수가 처음 만든 용어다.저출산과 만혼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육아를 해야 하는 시기에 부모도 간병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된 곤혹스런 상황을 일컸는다. 여기에다 손자 육아까지 떠맡는 ‘트리플케어’도 드물지 않다.문제는 5060 세대의 경우 경제활동에서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까지 얼마 남지 않은 세대라는 점이다.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기대수명은 71.7세였고, 85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약 20%에 불과했다.이에 반해 2016년 기대수명은 82.4세이고, 85세 노인 생존율은 50%에 이른다. 그 결과 어떤 형태로든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5060 세대가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또 1990년 한국은 9.8% 고성장 시대로, 청년실업률은 5.5% 수준에 불과해 성인 자녀의 독립 시기도 빨랐으나 2017년 경제성장률은 3.1%로 떨어졌고, 청년실업률은 11.6%(2018년 3월 기준)까지 치솟았다.실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지난해 12월 국내 만 50~69세 남녀 2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060 세대 2가구 중 1가구(53.2%)는 성인 자녀에게 매달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고, 노부모에게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주거나 간병 중인 경우는 62.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손자 육아는 더 심각하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30대 가구의 맞벌이 비중은 44.6%로, 맞벌이 가구가 부모 등에게 육아 지원을 받는 비율은 2004년 23.6%에서 2014년 53%까지 늘어났다.‘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 5060세대의 고뇌가 더블케어와 트리플케어로 정점을 찍고 있는 듯 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5-08

독도 새우

한 국가의 수반이 초청하는 국빈 만찬의 메뉴에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시 만찬장에 등장한 2억원짜리 마오타이주도 상대에 대한 예우와 맞물려 설왕설래됐다. 김 위원장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전과 대우를 가늠케 한 만찬이란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의 혼밥 외교와 비교가 돼 뒷얘기가 무성하게 나왔다.지난달 있은 판문점 남북정상의 만찬 디저트에 등장한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기 장식을 두고 일본이 항의하는 모습에서 국빈 메뉴의 정치적 민감성을 살펴볼 수 있다.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우기는 일본의 터무니없는 트집이 우스꽝스럽다. 일본은 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의 한국방문 때도 청와대 만찬 메뉴에 포함된 독도새우를 두고 시비를 걸은 적이 있다. 한국이 양국 간 갈등 현안인 독도를 염두에 두고 의도된 메뉴 선택을 한 것이라 했다.독도새우가 제철을 만났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청와대 국빈 메뉴로 등장했던 독도새우는 갑자기 유명해졌다. 서울에서는 1마리에 1만원을 넘게 팔려나간다 한다. 어획량이 많지 않아 쉽게 구경할 수도 없단다.최근 경북도수산자원연구소가 독도새우로 알려진 도화새우 12만 마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육해 울릉 해역에 방류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독도해역에서 포획된 도화새우로, 배에 알을 품고 있는 성숙한 암컷만 골랐다고 한다. 독도새우는 독도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물렁가시붉은새우, 가시배새우, 도화새우 3종을 말하나 그 중 고급요리 재료로 쓰이는 대형종인 도화새우를 독도새우라 지칭한다. 도화(桃花)는 복숭아처럼 곱다는 뜻도 있고, 복숭아 꽃피는 계절이 제철이란 뜻도 있다.독도새우는 수심 150~300m에서 발견되며 부화 후 4살 정도는 수컷이고 4살 반에 암컷으로 성전환해 5살에 산란을 한다. 살이 단단하고 단맛이 뛰어나다. 독도새우의 국빈 만찬메뉴 등장으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됐다. 독도새우가 국익을 선양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일 아니겠는가.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5-04

말 많은 대통령 경호법

대통령경호법을 둘러싼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대통령경호법은 지난 1963년 대통령 등에 대한 경호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경호의 조직과 직무범위,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법은 대통령 등의 경호를 위해 대통령실장 소속으로 경호실을 두고, 경호대상은 대통령과 그 가족, 대통령당선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 또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에 대해 대통령 경호처가 ‘퇴임 후 10년, 추가 5년’ 경호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 문제에서 비롯됐다. 현행법상 지난 2월24일로 끝난 이 여사의 경호 업무를 경찰로 넘겨야 할 상황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경호처가 이 여사의 경호를 계속 맡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 문제에 대해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법제처는 “대통령경호법은 경호대상을 의무적 경호대상과 처장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경호제공 여부와 기간을 결정할 수 있는 임의적 경호대상으로 구분하는 체계”라면서 “의무적 경호대상과 임의적 경호대상은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보충적 관계여서 한 번 전자(의무적 경호대상)에 해당했다고 해서, 절대로 후자(임의적 경호대상)에 해당할 수 없는 게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즉, 경호 기간이 종료된 전직 대통령과 그 배우자도 경호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경호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이에 대해 야당 등 정치권은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대한민국 법치는 죽었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 여사를 전직 대통령 배우자로 15년간 경호하다가, 이제부턴 ‘그밖에 국내외 요인’으로 옮겨 계속 경호가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해석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현재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법정기간이 끝난 2005년부터 경찰 경호를 받고 있다.만민평등의 법 해석원칙에 어긋나는 전직 대통령 부인 경호 연장조치는 이해하기 어렵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속담이 괜한 말은 아닌 모양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5-03

대북 심리전

사면초가(四面楚歌)를 풀이하면 사방에서 들리는 초(楚)나라의 노래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사용 의미는 ‘몹시 어려운 일을 당해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라는 말이다. 이 고사성어 속에는 요즘 일컫는 심리전의 역사적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다툴 때의 일이다. 초나라 왕 항우가 싸움에 져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 한나라 군사들이 그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그러나 워낙 힘이 좋았던 항우라 쉽게 무너지질 않았다.이때, 한나라의 지략가 장량이 유방에게 작전을 바꿀 것을 권한다. “지금 초나라 군사는 오랜 싸움에 지쳐 멀리 있는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을 터이니 구슬픈 초나라 노래를 밤마다 들려주면 초나라 군사의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그날 밤부터 초나라 노래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항우는 들려오는 구슬픈 노래 소리를 듣고 “백만 대군보다 더 무섭다”고 탄식했다. 노래 소리를 들은 초나라 군사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하나 둘씩 도망가기 시작했다. 항우는 끝까지 맞서 싸우다 이 싸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당시 한나라가 들려준 초나라 노래가 바로 심리전이다. 심리전이란 비무력적인 선전이나 모략을 수단으로 적의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이다. 우리의 경우 대북 확성기 방송, 대북방송, 전단 살포 등이 이런 것이다. 1962년 북한이 대남방송을 시작하자 우리도 이에 맞대응했다. 그동안 남북관계에 따라 확성기 방송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북한 체제 비판과 자유민주주의 우월성 등을 홍보해 왔다.국방부는 1일부터 대북 심리전 수단인 확성기 방송의 중단을 발표했다.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라 했다. 휴전 상황에서 북한군에 가장 효과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대북 확성기 방송의 중단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올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중단하는 것이 옳다. 1960년대 이래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온 대북 심리전이 이번에는 정말로 끝장을 내는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5-02

통일 무관심세대의 관심사

남북정상회담이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 없는 젊은 세대에도 큰 충격을 준 게 분명해 보인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판문점에 나타나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와 함께 포옹을 나누고, 얼굴을 맞댄 채 정상회담을 하는 장면은 분단시대를 살아온 장년층들은 물론이고 젊은 층들에게 더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징후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핵실험과 미사일도발 등으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다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노력에 힘입어 올들어 급작스레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연내 종전선언’등 파격적인 내용이 판문점 선언으로 합의돼 통일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던 청년층들도 함께 들썩이고 있다. 이들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군대·취업·입시·여행 등 분야다. 이들 청년세대들이 맞닥뜨린 현실적 고민들이 해빙 무드가 시작된 대북 관계와 연결되면서 갖가지 핑크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먼저 가시적인 반응이 나타난 곳은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다. 대표적인 것이 ‘종전선언이 되면 예비군 훈련을 축소·폐지하자’ ‘평화협정을 맺으면 군복무 기간을 대폭 단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행도 새로운 화두가 됐다.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 트레킹이 소원”이라고 얘기했던 사실이 알려지자 북한 여행이 향후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선언문에 동해선과 경인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시너지효과를 불러온 듯 싶다. 남북 관계 개선은 학생들의 대학입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이색적이다. 토목공학과와 건축공학과, 북한학과가 인기 학과로 부상할 것이란 얘기다.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면 대형 토목 및 건축공사 프로젝트가 잇따르고, 북한 전문가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은 청년층들의 반응과 관련, “청년층은 진보·보수라는 이데올로기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통일 무관심세대인 청년층들이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남북통일로 나아가는 길 초입에서 빚어지는 현상일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5-01

선주후면(先酒後麵)의 평양냉면

작년 한 포털 사이트에서 알바생 1천 명을 대상으로 “여름철에 생각나는 음식을 손꼽아 보라”고 물어 봤더니 응답자의 59.8%가 냉면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 빙수와 아이스크림, 삼계탕 순으로 답했다. 언제부터인가 북쪽지방에서 유래한 냉면이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냉면의 원조는 평양냉면이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동국세시기’에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로 말고 돼지고기와 섞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 기록이 나온다.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한 음식문화이며, 그 중 평양냉면의 맛이 가히 일품이라고 했다. 동국세시기에는 냉면을 11월 동지 날에 먹는 음식으로 설명하고 국수에 메밀이 많이 함유됐다고 했다.문헌 기록에 의하면 18세기 이후 냉면이 본격 등장했다. 북쪽지방의 음식이었던 냉면이 남한에 퍼지게 된 것은 6·25 전쟁을 전후해 남쪽으로 넘어온 피난민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평양의 명물로 감홍로, 냉면, 비빔밥을 들었다. 40도가 넘는 독주인 감홍로를 마시고 다음날 숙취 해소는 냉면을 먹고 속을 풀었다고 한다. 여기서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평양에는 냉면이 해장국 역할을 한 풍속이 있었던 모양이다.남북 정상회담이 있던 날 평양냉면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정은 위원장의 언급으로 평양냉면이 알려지면서 외신들의 관심을 크게 자극했다. 미국 CNN 뉴스는 남북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음식으로 냉면을 소개했다. 남북정상 간 대화 중 화제로 떠오른 한국의 독특한 음식인 평양냉면이 알려지자 각국 취재진이 평양냉면 소개에 열을 올리는 모습도 연출됐다. 중국에서는 중국식 표현인 ‘조선냉면’이란 이름으로 포털 사이트 이슈 검색순위 10위에 올랐다.남북정상이 만나던 날 서울 등지 냉면 집들도 냉면을 먹으러 찾아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남북정상 회담에 대한 관심도를 반영한 현상이다. 비빔밥, 불고기, 삼계탕 등으로 알려진 한국의 대표 음식 반열에 평양냉면도 이름을 올려야 할 것 같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4-30

슬로건

기업에서 광고의 목적은 상품의 특징을 어떻게 잘 드러내서 주목도를 높이느냐에 있다. 글이나 그림, 사진, 소리 등은 이 같은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데 사용하는 재료다. 기업이나 단체, 개인이 사용하는 슬로건이나 캐치프레이즈도 비슷하다. 타깃으로 하는 사람의 행동을 자극할 수 있어야 성공적이다. 사람은 늘 논리적 판단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때로는 감정이나 정서에 의해 움직이는 일도 많다. 광고 때 사용되는 그림, 음악 등은 이를 자극하는 충족적 요소다. 정치에 있어 제대로 된 슬로건 하나는 수많은 공약보다 투표율에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정치인이 유권자를 향해 던지는 슬로건은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생각과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슬로건은 이해가 쉽고, 표현은 단순하며,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가야 한다.2008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예스, 위 캔(Yes, We Can)’이란 슬로건을 사용했다. 미국의 변화와 희망을 담은 메시지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후보이면서도 거부감 없이 미국인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절제되고 적확한 느낌의 슬로건을 전달한 때문이라 본다. 두산그룹 이미지 광고로 “사람이 미래다”고 한 광고카피가 있다. 광고로서 평가도 좋았다. 그러나 광고의 내용에 부합하는 기업의 실행력이 뒤따르지 못해 이미지가 구겨진 일이 있다. 기업이 내건 슬로건과 기업의 정책은 상호일치 될 때 광고로서 가치도 살아난다. 문재인 대통령도 슬로건처럼 쓰는 구호가 있다. “사람이 먼저다”다. 문 대통령은 구호에 맞는 철학과 소신을 몸소 실천할 수 있어야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슬로건은 언행이 일치될 때 비로소 빛이 날 수 있는 것이다.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 슬로건으로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고 발표했다. 문 정부 정책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경계한 슬로건이다. 한국당이 내건 슬로건이 지방선거에서 얼마나 먹혀들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슬로건을 선택한 한국당의 몫이 될뿐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4-27

만찬의 정치학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오는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때 즐길 만찬 메뉴가 복잡미묘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있어 화제다.남북 정상회담 당일 만찬은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 뜻을 담아 준비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만찬 메뉴는 역사적 인물의 고향 식재료를 사용한 것, 양 정상을 상징하는 것, 남북 교류를 상징하는 것 3가지 콘셉트로 구성됐다. 우선 역사적 인물을 기리는 음식으로는 김대중 대통령 고향인 전남 신안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 등을 가공한 민어 해삼 편수, 노무현 대통령 고향 김해 봉하마을에서 오리 농법으로 수확한 쌀로 지은 밥이 오른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한 데 착안해 충남 서산 한우를 이용한 숯불구이, 그리고 작곡가 윤이상씨 고향인 경남 남해에서 난 문어 냉채도 곁들여 진다. 양 정상을 상징하는 음식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년 시절을 보낸 부산의 대표 음식 달고기 구이와 김 위원장이 스위스에서 유학한 것을 고려해 스위스 감자요리‘뢰스티’를 우리식으로 조리한 감자전도 올라온다. 정상회담 만찬의 주요리는 남북교류를 상징하는 음식인 ‘평양 옥류관 냉면’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으로 북측에 전달됐고, 북측은 흔쾌히 수락했다. 북측은 신선한 옥류관 냉면을 위해 제면기를 판문점 통일각에 설치, 통일각에서 뽑은 냉면을 만찬장인 남측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바로 배달할 수 있도록 했다. 1·2차 남북정상회담의 메뉴에는 모두 화합을 상징하는 비빔밥이 포함됐다. 2018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에도 비무장지대 산나물로 만든 비빔밥과 쑥국이 오른다. 만찬주로는 면천 두견주와 문배술이 선정됐다. 면천 두견주는 진달래 꽃잎과 찹쌀로 담근 향이 짙은 술이다. 문배술은 고려시대 이후 1천년의 맥을 이어온 술로서 중요무형문화재다. 문배술의 고향은 평안도이지만 남한의 명주로 정평이 났다.한반도 평화통일의 첫 단추를 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남북정상회담 첫날 만찬에서 엿보이는 만찬의 정치학은 우리 민족의 여망을 다시한번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4-26

책의 힘

마이크로소프트사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1년에 2주일은 ‘생각하는 주간’으로 정해놓고 이 기간 동안은 외부와 단절한 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생각주간에는 오직 책만 읽고 사색을 하고, 자기성찰의 시간으로 보낸다. 생각주간 읽은 책으로 아이디어를 얻고 회사 운영에 관한 고민에도 몰입해 본다고 한다.위대한 성공을 일군 리더들한테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의 자기 훈련법이 있다. 빌 게이츠는 독서와 사색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해 냈다.책과 독서는 인류의 문명사회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었다. 많은 위대한 성인들이 책을 읽고 책을 저작해 내면서 인류에게 깨달음의 철학을 전달했다. 인류의 문명사는 책과 독서가 만들어 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오늘날에 있어서도 그 진리는 통하고 있다. 독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익한 자기 수양과 발전의 수단이다. 모바일 문화가 확산되면서 화려한 영상 콘텐츠에 밀려 비록 그 자리가 위협을 받고 있지만 모바일이 독서의 본질을 뺏을 수는 없다.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포한 ‘책의 해’다. 지난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로서 우리나라 책의 해와 겹치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했다. 문광부는 ‘책의 해’에 맞이하는 ‘세계 책의 날’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지역 초중고 학교에서만 책과 관련한 1천800여 개의 행사를 벌였다고 한다. 서울 중심의 행사란 점에서 지방도시의 소외감이 없지 않으나 책의 날 이미지 확산을 위한 의미 있는 행사로 봐야 한다.문광부는 2012년에도 ‘독서의 해’를 지정한 바 있다. 올해 책의 해도 국민독서 분위기 조성과 출판 산업 활성화 등을 위해 기획한 범국가적 행사다. 국가가 나설 만큼이나 책 읽는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해 국민 독서실태조사에서 나타난 독서율(1년간 일반 독서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은 성인 59.9%, 학생 91.7%였다. 2015년보다 성인은 5.4% 포인트, 학생은 3.2% 포인트 각각 감소했다. 모바일 문화의 영향으로 봐야 한다. 책의 힘을 생각할 때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4-25

미투운동의 반작용

최근 ‘미투(#Me Too)’운동을 계기로 성폭력 고발이 늘면서 가해자를 편드는 ‘성폭력 가해자 변호’시장이 크게 활개를 치고있다. 아예 ‘성범죄 전문’을 표방하는 한 법무법인은 이렇게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강간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면 아주 적극적인 법적 자기방어가 필요합니다. 우리 변호인단은 경찰, 검찰 출신의 변호인들로 구성되어 찾아오시는 의뢰인들께 적극적인 상담과 더불어 변호를 진행합니다. 성폭력, 적절한 대응을 통해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실명만 지운 성공사례 판결문 1천여 건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강제추행부터 성희롱, 준강간까지 각종 성폭력가해자가 이곳 변호사들로 인해 구원받고 감사의 말을 남긴 ‘후기 게시판’도 방문객이 넘친다. 이같은 현상은 미투운동의 활성화로 인한 성폭력 고발이 그만큼 크게 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성폭력으로 고발된 피의자들을 돕기 위한 변호사들의 소송 수주경쟁이 펼쳐지고, ‘성범죄 전담변호사’ ‘성범죄 전문변호사’ ‘성범죄 전담센터’ 등의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무수한 광고가 떠오른다. 이들은 아동성추행, 강간범죄, 기타 성범죄 등을 예시로 들며 ‘부당한 처벌을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로 이끈다’는 과장광고까지 서슴지 않았다가 논란이 커지자 광고판을 철거한 경우도 있다.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엄단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커지면서 예전같으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행위에 대한 과도한 처벌 우려도 늘었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는 매우 엄하게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성범죄에 연루된 일반인은 어떤 행동이 강제추행 등의 성폭력 혐의로 처벌 될 수 있는 범죄인지 예측하지 못해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성범죄전문 변호사들은 “강제추행은 그 중에서도 어떤 행위가 혐의로 성립할 수 있고 어떤 행위가 그렇지 않은지 예측하기 어려운 죄목”이라며 “예컨대 최근 대법원은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유형력을 행사했다면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판시해 판결에 대한 예측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했다.이래저래 미투운동의 반작용이 우리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4-24

혈세 낭비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정부는 국가 경영능력이 우수한 정부다. 한 국가가 잘 경영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세금 납부가 국민의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가 되는 이유다. 국민이 내는 세금이 얼마나 잘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나라가 잘 지켜지고 국민이 풍요롭게 잘 살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것은 선진국의 기준이다. 세금을 집행 감시하는 국회의원과 공직자의 판단에 따라 예산은 효율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낭비가 되는 것이 현재의 국가 시스템이다.올 한해 우리나라 소요 예산이 400조 원을 넘었다. 이 예산은 국가 정책 등 나라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적절하게 투입된다. 특별히 올해는 복지 관련 예산 비중이 우리나라 예산의 34%를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선진국처럼 복지 비중이 높아져 예산투입에 따른 국민적 만족도가 어떨지도 요즘의 관심사다.예로부터 세금은 민심의 잣대 역할을 해왔다. 공평한 잣대에 의해 세금이 매겨지고 잘 사용되느냐에 따라 민심이 오락가락했다는 뜻이다. 공자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한 것도 관리의 세금 착취를 경계한 말이다. ‘백성이 살아가기 힘든 정치'를 말할 때 옛 성현들은 가렴주구(苛斂誅求)라고 표현했다. 조선시대 후기 있었던 백골징포(白骨徵布)는 죽은 사람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등록해 가족들에게 세금을 내도록 한 악질적 폐해였다. 결국 이것이 발단되어 민란이 일어난 것이다.최근 경기도 한 아파트에서 교통사고 위험을 이유로 택배차량의 단지 내 출입을 저지하던 주민과 택배사 간에 마찰이 발생했다. 중재에 나선 국토부가 세금지원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다 이 사실을 안 국민들이 국민청원에 나서는 바람에 백지화됐다고 한다. 특정 아파트의 문제를 국민이 낸 세금으로 민원 해결을 하겠다는 관료들의 발상이 한심하다. 요즘은 툭하면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다. 국민의 세금이 무슨 봉이나 된 듯하다. 왜 국민 세금을 혈세(血稅)라 부르는지 관직에 계시는 분들은 곰곰이 곱씹어 볼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