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에 쌀밥 열리면
이팝나무에 쌀밥 열리면
  • 등록일 2021.04.21 20:17
  • 게재일 2021.0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러스트= 김민서 제공

봄이 무르익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팝나무가 꽃눈을 터트린다. 이팝나무 가지마다 하얀 꽃이 만발하면 흰쌀밥으로 온통 나무를 뒤덮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팝나무(이밥나무)라고 불렀는데, 옛날에는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게 피어나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여겼다.

인간은 먹이를 찾아 오래도록 떠돌았다. 야생에서 사냥과 채집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먹이가 되는 작물을 경작하면서 한곳에 정착했는데, 인간에게 농경은 삶의 방식에 혁명과 같았다. 양지바른 터에 움막을 짓고 물이 있는 강가에 밭을 개간했다. 그에 맞춰 살림살이를 빚고 농기구를 만들었다. 행동도 논밭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사계절 일상도 농작물의 생육에 맞추었다.

쇠스랑, 가래, 써레, 따비, 괭이, 호미, 절구, 맷돌, 도리깨, 망태기, 도롱이, 부지깽이,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품앗이, 깟짓동, 김칫동, 노적가리, 동동초가, 사립문, 영마루, 이엉, 짚신.

단군 때, 고시(高矢)라는 신장(神將)이 있었다. 농사와 가축을 관장하던 고시는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불을 얻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한 점 떼어 던지며 ‘고시네’하고 외쳤다. 고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고수레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는 은혜로운 음식을 짐승도 함께 먹자는 베풂이기도 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 님도 보고 뽕도 딴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않고 외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는다, 남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 장에 간다, 오뉴월 하루 놀면 동지섣달 열흘 굶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한 어깨에 두 지게 질까, 낫 놓고 기역자 모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늙은 소도 콩깍지 실으러 갈 때는 잰다, 삼사월은 굼벵이도 석 자씩 뛴다, 농번기에는 부지깽이도 쉴 틈이 없다, 메밀꽃 필 때는 동서집에도 가지 마라,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농경문화는 이처럼 많은 속담을 낳았다. 숨은 뜻을 곱씹어보면 생활에 빗댄 해학과 풍자가 은근하고 삶에서 건진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농경에서 따온 동사도 많은데, 그 내용을 보면 참 재미가 있다.

사람을 가르쳐 일깨우고 힘과 용기를 준다는 뜻으로 ‘북돋우다’를 쓴다. ‘북’은 초목의 뿌리를 덮고 있는 흙을 말한다. 농작물 밑동의 흙을 긁어 주면 영양분이 잘 스며들고 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는다. 이를 비유하여 ‘용기를 북돋우다’, ‘사기를 북돋우다’로 쓴다.

사람의 행위가 가볍고 방정맞게 보이면 ‘까분다’라고 한다. ‘까불다’는 ‘까부르다’를 줄인 말이다. 키로 곡식 알갱이를 고르는 행위를 키질이라고 하는데, 키를 아래위로 흔들면 티나 검불이 사방으로 나비처럼 날아간다. 이는 곡식을 까부르는 행위로 그 모양을 빗대어 나비질이라고도 한다.

상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는 말로 ‘어처구니 없다’가 있다. 어처구니는 궁궐 지붕의 추녀마루 끝자락에 있는 여러 가지 짐승 조각이나 맷돌의 손잡이라고 한다. 궁궐 지붕에 어처구니를 설치하지 않았거나 맷돌에 손잡이가 없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리하여 일이 뜻밖이거나 기가 막히게 한심한 상황에서 쓴다. ‘어이없다’도 같은 말이다.

하던 일을 중도에서 포기한다는 뜻을 가진 ‘팽개치다’는 ‘팡개’에서 나온 말이다. 팡개는 곡식이 여물 무렵 새를 쫓는 데 쓰는 대나무 토막이다. 토막의 한끝을 네 갈래로 쪼개어 가운데 나무를 끼우고 이것을 흙에 꽂으면 틈새로 돌멩이나 흙덩이가 낀다. 새를 향해 팡개를 휘두르면 흙과 돌멩이가 날아갔다. 이러한 행위를 ‘팽개질’이라고 했다.

모든 일을 평등하게 한다는 뜻으로 ‘평미레 치다’가 있다. 옛날 싸전에 가면 됫박이나 말에 곡식을 담고 작은 방망이로 그 위를 밀었다. 이 방망이가 바로 평미레이다. 평미레로 밀면 됫박에는 딱 한 되 분량만 남았다. 어떠한 일을 공평하게 하자고 할 때 평미레 치자라고 말한다.

운동경기에서 볼 수 있는 행위로 ‘헹가래 치다’가 있다. 농사에서 가래로 흙을 파기 전에 빈 가래로 손을 맞춰 보았다. 일종의 예행연습인데 이 행위를 헹가래질이라고 했다. 사람을 들어 올릴 때 호흡이 중요하다. ‘헹가레’는 여럿이 한 호흡을 맞추어 이겼을 때 이를 서로 치하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얼마 전까지 ‘서리’라는 풍습이 있었다. 남의 집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인데,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면 이러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서리를 맞아도 주인은 내 자식이 먹었으려니 생각하고 벌을 내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은 모두 하나이며 남의 자식도 내 자식과 같다는 인식에서 나온 넉넉한 마음이었다.

/수필가·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