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잊지 말자고, 잊지 않겠다고, 잊어서는 안 된다고 몸부림치던 4월 학교 이야기!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그때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

기념일이 야속하다 못해, 원망스럽기 그지없는 4월.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기념일들은 정치인들의 생명 연장 수단이 된 지 오래다. 파란 지붕 집에 들어가는 사람의 색깔에 따라 기념일 색깔도 달라지는 이상한 나라의 기념일! 그런 기념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기념일의 대상은 피해자다. 기념일은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 정치가 몹쓸 이유는 그 이유와 원인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바꿔 버리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것을 조작(造作)이라고 명명했다.

한때 조작과 정권은 같이 갔다. 조작 능력은 정권 생명력을 결정했다. 정권은 조작의 달인이 되었다. 조작을 끊기 위한 국민의 외침이 이 나라 기념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만 봐도 이 나라 주인은 분명 국민이다. 그런데 정권은 정의를 외치는 국민의 마음마저 수단시하고 있다.

“근원적인 곳에서부터 공정과 정의가 자리 잡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국민은 이 말이 꼭 실현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바람은 언제나 바람뿐이었다.

이번 정치인들 역시 공정(公正)과 정의(正義)를 자기들 멋대로 해석했다. 그래놓고 자기들은 이 나라를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떠들어댄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뭐가 정의롭고, 뭐가 공정한지?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필자의 책상 앞에는 대통령 100대 국정과제 목록이 붙어 있다. 그중에서 붉은 밑줄을 그은 곳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교실 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 교육의 희망사다리 복원”

물론 다른 과제도 다 이루어져야 하지만, 필자는 위의 과제만큼은 꼭 이루어지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필자 또한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중이다. 그런데 4월이면 그 힘은 다 빠지고 만다.

그 이유는 의미도 없는 학교 시험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시험의 의미는 뭘까?

학생들을 암기 기계로 만드는 시험, 학생들을 학교 부적응 학생으로 만드는 시험,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꿈을 파괴하게 만드는 시험, 교사와 학생 간 불신만 높이는 시험, 희망사다리를 송두리째 끊어버리는 시험, 학교에 남은 마지막 희망까지 깡그리 지워버리는 시험!

이 이외에 다른 의미가 있을까! 학교 비극의 주범이 되어버린 시험! 교사들에게 부탁드린다. 시험을 꼭 쳐야 한다면 학생에게 왜 시험을 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학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줄 것을. 특히 자유학년제 최대 피해자인 중학교 2학년 학생에게는 더욱더 자세하게!

멀지 않아 새로운 기념일이 만들어질 것 같다. 그날은 의미도 없는 학교 시험에 맞서서 국민이 학교 정의를 외치는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