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공존의 역사가 된 ‘아야 소피아’ 건물
화해와 공존의 역사가 된 ‘아야 소피아’ 건물
  • 등록일 2021.04.20 20:01
  • 게재일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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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
박문하
전 포항시의회 의장

필자가 생활하는 포항의 지근에 자리한 경주는 992년 동안 통일신라시대의 수도였었다.

1천년 여 동안 한 국가의 수도로 보낸 도시는 세계사에도 그 유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1천200여 년 동안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이탈리아 로마와 중국의 전한, 당, 수나라 등 세 나라의 수도였던 시안(장안)과 함께 터키의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가장 긴 세월동안 수도로 보낸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로 정평이 나 있다.

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서기 330년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이스탄불을 삼으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장장 1천600여 년 동안 3개 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던 이스탄불은 십자군 원정, 이슬람 세력의 침공 등 격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러나 이스탄불이 긴 역사적 배경과 지형적인 특수성만으로 유명세를 탄 도시로 기억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곳엔 한 도시를 오랜 시간동안 화해와 공존의 상징으로 만든 한 건축물이 있는데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을 가진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 성당)’가 그것이다.

서기 360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콘스탄티누스 2세가 총주교좌가 있는 ‘아야 소피아’를 목조지붕으로 창건했지만 화재와 반란으로 두 번이나 소실되는 아픔을 겪은 후에야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가 537년 직경 22m 거대한 돔을 가진 역사적 건축물로 다시 중건하였다.

‘아야 소피아’가 로마제국이 세운 건물이어서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슬람교와도 관련이 적지 않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봉쇄된 바닷가 길을 포기하고 72척의 함대를 해발 60m의 갈리타 언덕으로 이동시켜 난공불락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사흘간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해도 좋지만 ‘성 소피아 성당’만큼은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후 많은 그리스도 교회가 모스크로 개조되는 우여곡절 속에서 ‘아야 소피아’도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는 것을 피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성화 모자이크와 코란을 새긴 원판이 보존되고 있는 독보적인 문화유산으로 존중받아 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최근 에드로안 터키 대통령이 핵심지지 기반인 이슬람 강경보수층 지도자들이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아야 소피아’를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초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시스코 교황이 이라크를 방문하여 이슬람 주요 지도자들을 만났다는 뉴스가 있었다. 복잡한 종파분쟁과 테러위협으로 강한 반대가 있었지만 두 종교의 갈등과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화합의 차원에서 방문을 강행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아야 소피아’의 이슬람 사원으로의 회귀로 교황의 숭고한 뜻을 퇴색시키고 말았다.

자기 가치만 고집하고 상대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 시대에 문명의 다양성을 배우고 역사적 화해를 실천하는 학습장으로 공존해 왔던 두 종교의 상징성 이야말로 1천600여 년을 묵묵히 견뎌온 ‘아야 소피아’의 미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 그 판단은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긴 채 오늘도 역사는 쉬지 않고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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