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촬영된 월성 일대의 모습

경주 월성(月城)은 신라의 최고지배계층이 사용한 왕궁 유적으로 2000년 유네스코에 의해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월성지구로 등재·관리되고 있다.

월성의 총면적은 193,845㎡(약 59,000평)이며, 길이는 동서 890m 남북 260m 바깥 둘레 2,340m다. 월성 내부는 전체적으로 북쪽이 남쪽보다 높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평탄한 지형이며 가장자리는 평탄면보다 2~7m 더 높은 성벽이 남아있다.

월성의 남쪽에는 자연하천인 남천이 흘러 방어에 용이하고, 경주 선상지 남쪽에 위치하여 경주 분지를 조망할 수 있는 입지적 장점을 지닌다.

월성 관련 기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사서, 실록, 지리서, 문집 등 문헌자료에 남아 있고, 고려시대 대표적인 사서인 ‘삼국사기’에 월성의 축조나 수리와 관련된 기사가 확인된다.

“파사왕 22년(101)에 금성의 동남쪽에 성을 쌓고 월성 또는 재성(在城)이라고 하였다. 신월성 북쪽에 만월성, 동쪽에 명활성, 남쪽에 남산성이 있고 시조 이래로 금성에 거처하다가 후세에 이르러 두 월성에 많이 거처하였다.”

“소지마립간 9년(487) 가을 7월에 월성을 수리하였고, 소지마립간 10년(488) 봄 정월에 왕이 월성으로 옮겨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월성 성벽 조사는 성을 쌓는 방법과 과정, 쌓은 시점을 파악하기 위해 2015년부터 현재까지 성벽 서쪽과 남쪽 일부구간을 대상으로 고고학적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월성 성벽은 흙을 주된 재료로 쌓은 성토구조물로 흙 이외에도 회가 발린 건축폐기물을 재활용하거나 불에 탄 흙(燒土), 볏짚을 태운 재(灰), 점토덩어리, 자연석(石)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 다양한 재료의 사용은 성질이 다른 재료를 번갈아가며 쌓아 재료들 간의 접착력을 높여 성벽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성벽을 쌓는 과정은 성벽을 쌓을 공간에 연약한 지반을 개량하고 땅을 단단히 다져 기초를 만드는 기저부 조성공정과 그 위에 본격적으로 성벽을 쌓아 올린 성벽 성토공정으로 구분된다.

기저부 조성공정에서는 식물의 잎이나 줄기 등 식물성 재료를 층층이 깐 부엽(敷葉)공법과 흙의 밀도를 증대시키기 위한 목적의 말목지정, 목재구조물 등이 확인된다. 부엽공법은 흙의 인장력과 지지력을 높이고 지하수의 배수를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성벽 성토공정에서는 수평 방향으로 흙을 층층이 쌓아 사다리꼴 모양의 성벽 중심부를 만들고 중심부의 경사면에 따라 소토, 벽체편, 점토덩어리 등 성질이 다른 흙을 번갈아가며 쌓고 정상부와 외벽에는 자연석을 놓아 흙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는 순서로 성벽을 쌓은 것이 확인된다.

성벽을 쌓은 시점은 성벽을 쌓는 각 단계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제작 시기가 가장 늦은 유물을 기준으로 성벽이 쌓인 시기를 파악하고 있다.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의 출토양상으로 보아 월성 성벽은 대체로 5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성벽을 만들어서 6세기대에 증축한 것으로 추론된다.

박정재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박정재
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성벽의 기초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성벽을 쌓기 직전에 성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제사의 제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확인된다. 국내에서 다수의 성벽이 조사 되었지만 성벽 기초부에서 인골이 확인된 것은 월성이 최초의 사례다.

인골의 머리 방향은 북동향이며 2구가 나란히 누워 있다. 한 구는 정면을 바라보며 팔다리를 가지런히 하여 누워 있는 신장 166㎝의 50대 남성이고, 다른 한 구는 얼굴이 남성 인골을 바라보며 몸을 약간 튼 채로 있는 신장 153㎝의 50대 여성이다. 머리를 중심으로 몸 전면에 풀과 나무껍질이 덮여 있고, 뼈에서 외상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죽은 상태에서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남성 인골의 발쪽에서는 인골과 동시에 놓인 것으로 보이는 토기 4점이 확인되며, 토기 이외에도 인골 주변에서는 동물뼈, 목재, 씨앗 등 유기물과 골각기편 등이 다량 확인된다. 인골 발쪽에서 확인된 토기가 제작되고 유행하는 시기를 분석하여 인골이 묻힌 시점을 유추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성벽 조사는 월성의 일부 구간에 대한 조사만 진행되어 성벽을 쌓는 방법과 과정, 쌓는 시기의 전모를 밝혔다고 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향후에도 월성이 만들어지고 사용될 당시의 모습을 밝혀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