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안의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언스플래쉬

결혼을 앞둔 친구를 만났다. 직장생활 7년 차에 접어들었다는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듯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긴장 속에서 끝마친 상견례와 주고받은 예물, 예단, 어렵사리 계약한 신혼집의 위치와 남편 될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 헤어지기 직전, 친구는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괜찮아?” 딱히 괜찮지 않을 것도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내가 걱정이라고 했다.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으냐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누군가에게 내 인생은 유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2019년을 프놈펜에서 보냈다. 거기에서 소설을 썼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고향에서 지냈다. 사교활동이나 일을 하는데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그것이 내 생활을 좌지우지할 만큼 커다란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인터넷이나 전화로도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 가능했다.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다. 소속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유로웠고 동시에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을 가진다. 그곳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약속된 월급을 받는다. 이러한 조직의 형태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여파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하나의 직업을 가지지 않고 다양한 일을 개척하는 잡(Job)노마드나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프리터 등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직장에 고용되지 않고 일하는 자발적 프리랜서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조직사회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창출하기를 자처하며 삶을 디자인한다. 기업에서 원하는 학벌이나 토익점수, 자격증에 목매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찾고 그것을 노출하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다. 회사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만든 콘텐츠를 내보인다. 우리는 주변에서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를 찾는 크라우드 펀딩이나 단독으로 일하는 1인 크리에이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근무 체계에서는 조직의 형태가 흐려지고 오롯이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개인의 역량이 중요해졌다는 말은 다르게 해석하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직의 보호 아래에서 일을 분담하는 것과는 다르다. 업무적인 실수는 곧바로 개인의 무능과 연결된다. 감당하기에 벅찬 중대한 일 역시 오롯이 혼자 결정해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게다가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의 경쟁 대상은 인간을 넘어 로봇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벌써 그렇다. 키오스크로 대체되는 단순 노동 일자리부터 인공지능, 자율주행,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 데이터까지. 조직이 만들어놓은 틀을 그대로 따라가면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개인이 해낼 수 있는 생산에 대하여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

누구나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의 능력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따르지 못할 수 있고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은 이렇듯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사실 불안이라는 것은 회사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국한된 말이 아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생산을 종용하며 결국 일종의 무대만 바꾸어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는 전언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것은 인간은 태초부터 어쩔 수 없는 불안함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물리칠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안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것이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는 사회가 녹록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테다. 길을 잃고 실수도 할 수 있다. 그럴수록 두려움과 손을 잡고 자신의 고유한 길을 완강하게 걸어가면 된다. 불안을 딛고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