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암과 심장질환… 절망 이겨낸 최고의 명약은 의지와 운동
두번의 암과 심장질환… 절망 이겨낸 최고의 명약은 의지와 운동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1.04.07 20:01
  • 게재일 2021.0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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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경북교육포럼 이해우 대표
이해우 교수는 병이 주는 고통과 심리적 압박감을 의지와 운동으로 이겨내고 있다.

담낭암, 대장암, 다섯 군데나 막힌 관상동맥…. 한 가지만으로도 쉽게 극복될 수 없는 심각한 병들이다. 6~7년 사이에 이어진 3번의 큰 수술. 경북교육포럼 이해우 대표의 중년은 생사가 걸린 ‘위기’, 그 자체였다.

포항과 경주, 서울의 병원을 오가며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를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절망 속으로 숨거나 찾아온 병에 항복하지 않았다. 투병의 와중에도 박사 학위 논문을 썼고, 미국 대학의 객원교수로 가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

이해우의 이력은 독특하다.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모자란 시간을 쪼개 교육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공부했고, 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경북대와 위덕대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도 그는 경주 동국대에서 정열적인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몇 년 전부터 당뇨와 척추협착증 치료를 위해 시작한 운동에도 열정을 쏟아 지난해엔 ‘장보고기 전국 조정대회’ 실내 조정 60대 이상 부문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며칠 전 본사 편집국에서 만난 이 대표에게선 ‘병마의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았다. 혈색이 좋았고, 인터뷰 내내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 아래는 의지와 운동으로 건강을 되찾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초등교사 시절 교육학 석·박사 도전 중

담낭암 극복하고 학위 취득했지만

관상동맥 이상으로 심장수술까지

6~7년새 세 번의 수술 위기 극복하고

경북대·경주 동국대 등서 열정적 강의

당뇨·척추협착증 치료 위해 시작한 운동

전국 조정대회서 우승이라는 기쁨 선사

“마음가짐이 중요” 희망 메시지 전해

-32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지냈다. 교대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어릴 땐 꿈이란 게 없었다. 형제는 많고 집안은 넉넉하지 못했다. 겨우 깨끗한 운동화 신고, 쌀밥 먹는 게 꿈이었다. 죽도시장에 있는 과자공장에 취직하고 싶어 하기도 했다. 고교를 마치고 대학을 가게 됐을 때쯤 ‘요즘 아이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다. 그 아이들이 꿈을 키우고 이루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교사는 어떤 매력이 있는 직업인가.

△언제나 아이들의 순수함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른들은 어떤 형태로든 때가 묻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 아이들은 동심을 가졌기에 순수할 수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게 더 많다. 살아가면서 삶의 중심을 잡는데도 교사 생활이 큰 도움이 됐다.

-초등학생만이 아니라 대학생들도 가르쳤다. 어떤 때 보람을 느끼나.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보람이다. 제자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걸 보면 힘이 난다. 동국대 간호학과 제자가 서울대병원에 취직해서 감사의 전화를 해왔을 때, 경북대 제자가 임용고시에 합격해 ‘선생님 덕택에 저도 교사의 길을 갈 수 있게 됐다’는 인사를 전했을 땐 내 일처럼 기뻤다.

-교직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1980년대이니 내가 30대 시절이다. 구룡포에서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았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가 있었다. 부모님이 바빠서 신경을 써주지 못하니 많이 힘들어했다. 그 아이를 불러 ‘앞으로는 나를 아버지로 생각해라. 넌 내 아들이다’라고 격려했다. 이후 아이의 생활 태도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했던 기억이 난다. 사랑을 주면 아이는 변한다. 3년간 빠지지 않고 스승의 날이 되면 신문지에 싼 양말 한 켤레를 선물하던 아이였다. 전근을 가면서 헤어졌는데, 지금은 50대가 됐을 그 제자를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교직 생활 중 암을 포함해 여러 번 심각한 병을 앓았는데.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 담낭암, 대장암 수술을 해야 했고, 관상 동맥이 막히는 질환도 앓았다. 담낭에 문제가 생긴 건 1998년쯤이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고통에 시달렸다. 경주와 포항의 병원을 찾았고 수술을 했다. 수술 이후 담낭 조직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 암이라고 했다. 담낭암은 간도 함께 절제해야 했기에 서울에서 다시 한 번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때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쓰던 때였다. 입원하러 간 사람이 논문 관련 자료를 잔뜩 챙겨온 걸 보고 의사와 간호사가 놀라던 모습이 생생하다.

-담낭암 치료 이후에도 다시 병마가 찾아왔다고 들었다.

△‘목표로 세운 일을 꼭 끝내고 싶다’는 의지가 담낭암을 극복하게 해줬다. 어려움 끝에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학위 취득 직후에 쓰러졌다. 관상동맥이 다섯 군데나 막혔다는 진단이 나왔다. 다시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잘라낸 내 팔뚝의 동맥을 심장 동맥에 이식하는 대수술이었다. 그때는 미국 한 대학에 연구계획서를 보내고 객원교수로 초청을 받았던 시기다. 미국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비극은 1년쯤 뒤에 또 다시 닥쳐왔다. 대장에서 암 덩어리가 발견된 것이다. 6~7년 사이에 목숨이 오가는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으니 평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세 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큰 병에 걸리면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된다. ‘열심히 살아온 내게 왜 이런 몹쓸 병이 찾아왔을까’란 비탄에 빠져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한 번도 아니고 연속 세 번이었으니, 나 또한 그런 심정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그걸 이겨내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는 내가 환자인 걸 잊고 살겠다. 내게는 병을 극복할 의지가 있다.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의지를 가다듬고, 희망을 지켜가겠다는 마음가짐이 건강을 회복시켜준 것이라 믿는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수술 과정을 겪으면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앉는다면 정말로 끝이다. 억지로라도 자신이 병에서 회복된 후 해야 할 일을 만들어야 한다. 아프기 전보다 더 긍정적인 사고로, 더욱 힘 있게 생활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자신의 병을 잊어버릴 수 있는 큰 꿈이 생기면 인간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의지, 희망과 함께 건강을 찾게 해준 또 다른 비결이 있다면.

△당뇨가 있고, 척추협착증으로 허리도 많이 아팠다. 그걸 치료하고자 혼자서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좀체 좋아지지 않았다. 3년 전쯤 ‘운동 치료전문가’를 만나 그가 권유하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실내 조정도 그때 배웠다. 힘이 들어가지 않던 허리에 근육이 붙었고, 제법 높은 산도 오르는 게 어렵지 않아졌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으로 지난해엔 상까지 받았으니 앞으로도 운동은 계속할 생각이다. 몸이 좋아지니 정신적으로도 활력이 느껴진다.(웃음)

-지금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부탁한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수술 과정을 겪으면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앉는다면 정말로 끝이다. 억지로라도 자신이 병에서 회복된 후 해야 할 일을 만들어야 한다. 아프기 전보다 더 긍정적인 사고로, 더욱 힘 있게 생활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자신의 병을 잊어버릴 수 있는 큰 꿈이 생기면 인간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삶의 좌우명은.

△젊을 때부터 ‘마중’이란 말을 좋아했다. 그 단어 속엔 기다림, 반가움, 더불어 가는 동행이란 뜻이 있다고 믿었다. ‘마중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다. 후배 교사들에게도 ‘마중물 교육’을 자주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꿈을 마중하고,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고, 제자들이 사회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지금도 바란다. 그건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의 일상은 어떠한가.

△경주 동국대에서 교육행정과 교육경영 강의도 하고, 운동도 하고, 등산도 다닌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눠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이가 일흔에 가까웠는데도 출강하는 학교에서 우수 교원으로 선정돼 상도 받았다.(웃음) 앞으로도 병이 주는 고통과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즐거운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려 한다.

-향후 ‘인간 이해우’가 열어갈 미래는.

△2~3년 전부터 맑은 소리에 매료돼 대금 연주를 배우고 있다. 지금은 남들 앞에 나설만한 실력이 아니지만, 더 열심히 연습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며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찾아가 노인들 앞에서 연주를 해주고 싶다. 나도 적지 않은 나이다. 늙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작은 도움이라도 남에게 주는 사람’으로 남은 생을 살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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