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경북의 언택트 관광지를 찾아
⑬ 벚꽃 떨어진 거리의 ‘또 다른 낭만’

경주 보문단지 인근 도로변에 핀 수십만 송이 벚꽃.

“화개천지홍(花開天地紅).”

세상 어떤 꽃보다 먼저 봄을 알린다. 분홍빛 고운 ‘계절의 전령사’라 부를 만하다. 게다가 귀하게 피어 몇몇 사람만을 기쁘게 하는 게 아니다. 흔하디흔한 골목길에서부터 야트막한 산기슭, 심지어 청춘들 발길 분주한 대학 교정에까지 지천으로 피어나 바람에 꽃이파리 날리는 낭만과 서정. 그러니 ‘서민들의 꽃’이라 해도 좋으리라.

벚꽃이 피어나는 3~4월이면 야박한 사람들 인심과는 무관하게 잠시잠깐 세상이 환하다.

그래서다. 일찍이 선현들은 ‘꽃이 피니 하늘은 물론 땅까지 온통 붉다’고 감탄했다. ‘화개천지홍’이다. 여기서 ‘꽃’이란 분명 ‘벚꽃’일 터.

그러나 대부분의 아름다움이 그러하듯 그것이 지속되는 시간은 지극히 짧다. 미인이 그러하고, 미인의 메타포로 곧잘 사용되는 꽃 또한 그러하다.

한 시인은 “난분분 난분분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니, 이번 봄도 꼬리를 감추고 있음을 이제야 알겠구나”라고 노래했다.

2021년 올해도 마찬가지. 활짝 핀 벚꽃 아래서 밀어를 속삭이던 연인들, 지난 사랑을 추억한 중년 부부들, 환한 웃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쁘게 하던 아이들. 이들 모두가 영원히 곁에 두고 싶던 ‘벚꽃 시즌’이 끝나간다. 아쉽지만 누구도 붙잡을 수 없다.
 

지천에 피어나 봄을 알리는 ‘벚꽃’
3∼4월 초 꽃놀이 여행객들 ‘유혹’
지역 명소마다 연분홍 수십만 송이
피는 벚꽃·지는 벚꽃 모두 화려해

“화락천지정(花落天地靜).”

피는 꽃이 ‘절정의 아름다움’이라면, 꽃이 진 자리엔 ‘고요한 아름다움’이 조용히 들어선다. 4월 첫 주말 경북 일대를 적신 봄비와 제법 차가웠던 바람이 벚꽃을 가만두지 않았다.

바로 그 날씨의 변화에 후드득 소리 내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점점이 고운 분홍빛으로 떨어지던 벚꽃 잎 아래를 우산 받치고 걸어보았다. 가는 봄이 아쉬운 사람은 비단 기자 하나만이 아니었던지, 제법 많은 이들이 떨어지기 직전의 꽃을 매단 벚나무 곁을 서성이고 있었다.

‘화락천지정’이란 글귀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선 축적된 삶의 경험이 필요하다.

꽃은 누가 피라고 해서 피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수만의 사람들이 떼를 쓰며 읍소한다고 해도 결국은 지고야 만다. 그게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꽃은 ‘순환의 시간’을 산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매 순간이 단 한 번뿐이다. 우리가 벚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인간에겐 부재한 ‘다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내년에 피어날 벚꽃은 더 아름다우리라

벚꽃이 경상북도 전체를 빛나게 밝혀주던 봄이 아쉬움 속에 등을 돌리고 있다.

지척에 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포항과 영덕, 곳곳이 신라와 조선의 문화재로 가득한 경주와 안동, 여기에 김천, 예천, 문경….

어디 그뿐인가. 경북 23개 시·군 거리를 가리지 않고 반갑게 여행자들과 인사하던 벚꽃은 봄을 봄답게 만들어준, 비용 지불하지 않은 귀한 선물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국을 덮친 지난해와 올 봄 이전엔 하루라도 빨리 벚꽃을 만나려는 관광객들이 주말이면 수십 만 명씩 자동차와 버스, 기차를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오죽하면 만발한 벚꽃으로 이름 높은 경주와 경남 진해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을까. “봄이면 우리 동네 거리가 서울 사투리(?)로 가득하다”고.

바로 이 벚꽃에 관한 낭만적인 해석을 담은 책이 있다. 살림출판사에서 간행한 ‘쁘띠 플라워’다. 아래 일부를 인용한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은 우리의 삶과 무척 닮아있다. 인간이 젊음의 한 순간을 정점으로 늙어가듯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던 화려한 꽃 역시 조용하고 쓸쓸하게 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중략) 벚꽃은 피어 있는 모습이 화려해 일본에선 매년 꽃놀이를 즐길 정도다. 벚꽃은 피어 있는 모습 못지않게 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꽃이다. 꽃잎이 유독 얇고 하나하나 흩날리듯 떨어져, 꽃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또 금세 활짝 피어 화려하게 물드나 싶다가 봄비가 내리면 잎만 푸르게 남는다. 잠깐 숨 돌리는 사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느끼는 덧없음이랄까…(하략)”

그렇다. 벚꽃은 피어있을 때 물론 예쁘지만, ‘잠깐 숨 돌리는 사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순간조차도 숨 막히게 아름답다. 꽃이 진 자리의 고요와 적막은 그래서 마냥 쓸쓸한 것만이 아니다. 거기엔 약속이 망울을 맺는다.

2021년에 피었던 벚꽃은 2022년, 아니 2032년에도 같은 계절 같은 자리에서 등불 밝히듯 환하게 피어나 ‘봄의 사자(使者)’로 역할 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해서, 그 기다림은 슬프지 않다.

 

피는 벚꽃과 지는 벚꽃 사이에서 봄을 즐기는 여행자들.
피는 벚꽃과 지는 벚꽃 사이에서 봄을 즐기는 여행자들.

◆ 꽃이 떨어졌다고 서러워하지 마라

동서고금 많은 시인묵객들이 꽃에 관해 노래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시인과 화가를 더 큰 힘으로 매혹한 건 개화(開花)가 아닌 낙화(落花)였다는 사실이다. 활짝 피어 향기를 뿜어내는 꽃보다, 소리 없는 비명으로 떨어지는 꽃을 편애偏愛) 한 그들의 마음속엔 어떤 미학관이 들어서 있었던 걸까?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국문학자로도 명성이 드높았던 시인 조지훈(1920~1968) 역시 개화보다 ‘낙화’에 눈길을 주던 사람이다. 그랬기에 다음과 같은 절창을 남길 수 있었을 터.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박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반갑게 맞았던 짧은 봄과 몌별해야 하는 오늘 우리의 심정도 한 시대 이전 낙화를 바라보던 조지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다’. 그러나, 그 꽃을 데려간 바람과 비를 탓한들 무엇 하랴. 이미 2021년의 벚꽃은 기억 속에서나 불러올 수 있는 아스라한 추억이 됐을 뿐인데.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화를 기다리며…

수백, 수천 그루의 벚나무가 만들어내는 ‘꽃 잔치’는 봄날을 산책하는 여행자의 심장을 설렘으로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건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3월부터 4월 초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연분홍 ‘벚꽃 비’를 맞으려는 사람들이 수만,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게 그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벌써 2년째 벚꽃과 온전히 포옹하지 못하는 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수칙 준수와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탓이다. 해서 꽃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전의 봄날처럼 마냥 기껍지만은 않다.

내년 봄엔 경북의 벚꽃 명소들마다 ‘방문을 자제해 주세요’란 플래카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꽃보다 환하게 웃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리기를.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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