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선생님, 어디서 노란 박수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었어요. 오랜만에 연 창문 사이로 노란 바람이 불어와 저를 데리고 갔어요. 바람이 멈춘 곳에서 봤어요, 봄을 안내하는 산수유꽃을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제자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온 것은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날이다. 백신 접종 소식보다 필자는 제자의 봄 편지가 훨씬 더 반가웠다. 정치 좀비들에게 감염된 괴물 이야기가 아니면 이야깃거리가 없는 나라에서 제자의 편지는 산소 같은 선물이었다.

“선생님, 산수유의 노란 응원에 답하기라도 하듯 개나리도 노란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필자는 몇 달째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시를 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시는 멀리 달아났다. 시를 잡기 위해 허둥대는 마음은 조급증만 낳았다. 조급증은 억지를 불러왔고, 억지는 결국 세상을 향한 필자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 그래서 필자는 봄이 오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제자의 편지를 읽고서야 필자도 산수유의 노란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서도 봄을 들인 제자의 넉넉한 마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고마움은 곧 미안함으로 변했다. 제자의 절규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절규하는 학생이 문자를 보낸 제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학생의 절규 소리가 마치 진혼곡처럼 들린다. 억지 교사들은 그 소리에 귀를 닫았다.

“선생님! 올해 또 온라인 수업한대요. 작년처럼 온라인 수업하면,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 혼자서도 EBS와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게 어떻게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우지도 않은 과제를 하는 게 어떻게 학교 수업이에요? (….)”

비록 문자 메시지였지만, 아이의 울분이 느껴졌다. 말줄임표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필자는 정확히 알았다. 2020년 3월 17일, 필자는 온라인 수업을 정규 수업 시수로 인정해달라는 민원을 교육부에 냈다. 돌아온 답은 생각해보겠다는 상투적인 말뿐이었다. 그런데 답변이 온 바로 다음 주에 갑자기 온라인 개학을 한다는 뉴스가 특보로 나왔다. 그렇게 시작한 온라인 수업이 1년이 지났다. 2020학년도 온라인 수업은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되었다는 핑계라도 있다. 그럼 이번 주부터 시작하는 2021학년도 온라인 수업은 어떨까? “초중고 원격수업, 올해 쌍방향 수업 확대 전망”이라는 뉴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조금은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업의 탈을 쓴 수업 아닌 온라인 수업이 여전히 올해도 진행된다는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게 당연함이 된 지금, 학생들은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학생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수업의 주체는 교사와 학생이다. 더 이상 학생 없는 억지 가득한 교사 편의 중심의 온라인 수업은 안 된다. 학생을 학교에서 내모는 온라인 수업 자체를 당장 멈춰야 한다. 아니면 학교에서 학생이 사라지는 비극을 곧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