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신라 제48대 임금인 경문대왕은 귀가 나귀의 귀처럼 길었다. 왕은 왕관속에 귀를 숨겨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했으나 왕관을 만드는 복두장만은 예외였다. 평생 비밀을 지키던 복두장은 죽음이 임박하자 도림사의 대나무숲에 가서 목청껏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곤 했는 데, 경문대왕은 그 소리가 싫어서 대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고 한다. 이 설화에서 커다란 임금님의 ‘귀’는 왕의 허물을 뜻한다. 아무리 지엄한 왕의 허물이라도 끝내 숨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

어떤 정부나 국가지도자도 항상 옳을 수는 없다. 선의를 갖고있다해도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권위적인 정권은 다른 의견에 대해 집권세력을 방해하기 위한 공격으로만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반대의견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경직돼있다.

현 정부가 어느때부턴가 잘못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근로자의 소득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올림으로써 나라 전체의 소비를 진작시켜 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해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소상공인들의 반발을 불렀다. 어느덧 소주성 정책은 슬며시 사라졌다. 부동산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권 집값상승을 막으려면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고 대출규제, 세금폭탄 등 규제정책을 잇따라 내놨지만 수도권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제서야 공급위주 정책으로 바꾸겠다면서도 정책실패로 고통받은 국민들에 대해 통렬한 반성과 사과가 없다. 후안무치다.

‘정관의 치세’로 태평성세를 구현한 당 태종은 “거울이 없으면 자신의 생김새를 볼 수 없듯이 신하들의 간언이 없으면 정치적 득실에 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먹줄이 있으면 굽은 나무가 바르게 되고, 기술이 정교한 장인이 있으면 보옥을 얻을 수 있듯이 시세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진 신하의 충언은 군주를 바로 서게 할 뿐 아니라 천하를 태평성대로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충성스런 간언을 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 18일 각본없이 질문을 받겠다며 시작한 신년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가진 조·중·동은 물론 대구 경북과 부산 경남 울산 등 영남권 언론은 단 하나도 지명하지 않았다. 그저 정부에 우호적인 논조의 일부 신문과 인터넷언론·해외언론 등에 질문권이 주어졌다. 그저 눈가림식이다. 이래선 안된다. 임금님의 귀가 크면 어떤가. 큰 귀로 민초들의 얘기를 더 듣자.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고, 고치면 될 일이다. 귀 큰 임금님의 큰 귀는 허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