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과 어머니를 이어주던 ‘음식’ 우리 지역만의 특색 지켜야 합니다”
“자식과 어머니를 이어주던 ‘음식’ 우리 지역만의 특색 지켜야 합니다”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1.01.06 20:22
  • 게재일 2021.0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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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식 문화 기록자’ 자처한 요리연구가 신나희
전통음식을 지켜온 할머니들과 만나 그녀들의 삶과 요리 비법을 기록해 남기고 싶다는 신나희 씨.
전통음식을 지켜온 할머니들과 만나 그녀들의 삶과 요리 비법을 기록해 남기고 싶다는 신나희 씨.

세련된 옷차림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 어떤 질문에 답하건 거침이 없고, 도시적 감수성이 곳곳에서 감지되는 사람.

그럼에도 “나는 농민의 딸이에요. 실제로 여든이 넘으신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포항시 남구 연일읍에서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어요. 농어민들이 잘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겠죠”라고 말한다.

요리연구가이자 ‘한국 전통음식 홍보 대사’라고 부르면 될 듯한 신나희 씨 이야기다.

누구나 그렇듯 생에는 여러 사연이 있기 마련. 신나희씨 또한 몇몇 일을 하던 시기를 거쳐 2021년 현재는 삶을 3번째 방향전환해 전통요리를 만들고, 사라져선 안 될 한국 고유의 음식 재료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락거렸던 포항 동빈동 파시(波市·바다 근처에서 열리는 시장으로 주로 생선 등을 판매한다)의 기억을 ‘즐거운 유년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신나희 씨.

그녀와의 인터뷰는 지난주 포항 육거리에 자리한 조그만 식당에서 진행됐다. 나물무침과 찌개가 맛있는 곳이다. 물론 신씨의 추천이었다.

웃음도 많고 언변도 좋은 그녀와의 인터뷰는 시종 유쾌했다. 아래 그날 오고간 이야기를 정리해 옮긴다.
 

청도 운문사 비구니 스님이 들려준
먹거리 이야기에 매료돼 새로운 도전
요리연구가이자 전통음식 홍보대사로
한국 고유의 음식재료 알리기에 앞장서 와
영·호남 대학 강단서 전통요리 전파도
“한국의 부엌 책임져온 어르신들 비법 채록
문서화 작업 시급… 지자체·기관 관심 절실”

두 번의 발효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밥식해. ①먼저 엿질금가루를 체에 곱게 쳐서 횟대기에  뿌려준 뒤
두 번의 발효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밥식해. ①먼저 엿질금가루를 체에 곱게 쳐서 횟대기에 뿌려준 뒤

-포항에서 보낸 유년은 어땠나.

△동빈로와 남빈로에서 살았다. 바로 옆에 파시가 있었다. 대형마트가 없던 시절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생선을 샀고, 그걸 반찬으로 밥을 해먹었다. 요즘 아이들은 시금치를 먹지만 그게 어떻게 자라는지 잘 모른다. 안타깝다.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는지.

△농산물이 어디서 길러지고 수산물이 어느 바다에서 잡히는지 궁금했다. 그게 날 요리와 음식의 길로 이끌었다. 음식 공부는 늦게 시작했다. 어릴 땐 무용을 했고, 그림을 그렸다. 20대 후반쯤에 함께 그림을 그리던 청도 운문사의 비구니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앞으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라는. 당시엔 ‘겨우 먹는 게 왜 중요하지’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환경이 급변할 줄 몰랐다. 코로나19만 봐도 그렇다. 그 바이러스는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다. 면역력 강화는 음식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른바 ‘약선요리’가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 땅에서 제철에 나는 재료 대부분은 사람들 몸에 이롭다. 가장 좋은 요리는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해 본연의 맛을 살려내는 것이다. 거기엔 많은 양념을 넣을 필요도 없다. 장수하는 노인이 많기로 유명한 일본 오키나와에선 채소를 낮은 온도로 오래 우려낸 ‘채수’를 요리에 사용한다. 그게 장수의 비밀 중 한 가지다. 그런 게 바로 약선요리다. 겨울철 동해에서 잡힌 싱싱한 생선으로 회를 떠먹는다면 그것도 약선요리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약식동원(藥食同源)이란 말도 자주 듣게 된다.

△모든 음식은 약이 될 수 있으나, 약은 음식이 아니다. 물도 어떤 물을 어떤 방법으로 먹느냐에 따라 약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독일 특정지역의 폐광에서 나오는 물은 광물성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암반수다. 그 물로 암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면서 여러 개의 리조트까지 생겼다. 암의 치료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이 몸에 좋은 건 분명하다. 광물성 미네랄이 함유된 물은 세포로 침투하는 시간이 수돗물보다 훨씬 빠르다. 드라마 ‘대장금’을 보면 어떤 물로 국을 끓일지를 오래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큼 요리의 재료가 되는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하다. 서양의 유산균은 동물성이다. 한국엔 그보다 좋은 식물성 유산균이 있다. 바로 매일 먹는 김치다. 법제(法製)를 통해 사람 몸에 독이 되는 걸 이로운 성질의 음식 재료로 만드는 걸 보면 서양 사람들은 놀란다. 동양의 식생활을 신비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②곱게 내려진  엿질금가루를  골고루 혼합해 준다. 약 8시간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응달에 둔다.
②곱게 내려진 엿질금가루를 골고루 혼합해 준다. 약 8시간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응달에 둔다.

-꽤 오랜 시간 요리 혹은, 음식 만들기를 하며 살아왔는데.

△지금 우리들 밥상은 엄마가 아닌 대기업이 차린다. 밥도 전기밥솥이 한다. 예전엔 가마솥에서 밥을 뜸들이려면 20분쯤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이 우리를 만든 게 아닐까? 아궁이 숯불로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였던 할머니들은 음식을 하면서 가족들의 건강을 염원했다. 이젠 그런 게 사라졌다. 그런 ‘정성의 시간’이 없어지면서 현대병도 생겼다. 위장장애와 치주질환, 역류성 식도염, 관절염 등이다. 관절염은 먹는 음식과 관련이 깊다. 많은 한국인이 관절염을 앓게 된 시기를 거슬러 추적해보면 콩이나 포도씨에서 추출된 기름을 일상적으로 먹으면서부터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게 관절염을 부르는 하나의 원인이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빠르게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음식 재료가 사람 몸에 좋을 수 없다. 그런 흐름을 멈춰야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약식동원(藥食同源) 모든 음식은 약이 될 수 있으나, 약은 음식이 아니다. 물도 어떤 물을 어떤 방법으로 먹느냐에 따라 약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빠르게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음식 재료가 사람 몸에 좋을 수 없다. 그런 흐름을 멈춰야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③고두밥과 알맞게 절여 물을 뺀 무를 엿질금 가루에 발효된 횟대기와 함께 양념해 삭힌 후 완성시킨다.
③고두밥과 알맞게 절여 물을 뺀 무를 엿질금 가루에 발효된 횟대기와 함께 양념해 삭힌 후 완성시킨다.

-영남과 호남을 오가며 대학에서 요리사를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딱 3가지다. ‘국적 없는 요리는 만들지 않아야 한다’ ‘조리의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라’ ‘요리를 할 때는 행복한 마음과 평상심을 가져라’는 것이다. 마음에 악(惡)이 생기면 음식에는 독(毒)이 깃든다는 게 내 평소 믿음이다.

-당신에게도 스승이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영향은 받은 스승이 누군가.

△내 어머니다. 나만이 아니다. 전라북도에서 ‘남자들만을 위한 요리교실’을 열었을 때 예상을 뛰어넘어 700여 명의 참석자가 몰렸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남성들이었다. 도지사까지 왔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여전히 좋아하는 음식은 학생 때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 반찬과 된장찌개, 시래깃국 등이었다. 앞으론 포항에서도 그런 요리교실을 열어보고 싶다. 21세기엔 피자와 치킨이 대표적인 ‘엄마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자식과 어머니를 이어주던 ‘음식’이란 연결고리가 끊어진 듯해 아쉽다.

-당신이 정의하는 한국 요리란.

△외국 요리의 주인공이 ‘셰프’라면, 우리 음식의 주인공은 요리를 먹는 사람이다. 요리의 철학은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한국 요리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담긴다. 더운 여름엔 시원한 냉국을 올리고, 치아가 좋지 못한 노인에겐 부드러운 음식을 대접한다. 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겐 섬유질 풍부한 음식이 제격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좋은 요리사 아닐까?

-겨울이다. 추위를 이기게 해줄 음식 하나 소개한다면.

△이 계절엔 굴과 표고버섯으로 만든 요리가 좋다. 굴은 그 하나만으로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식재료 중 하나다. 굴무침, 굴전, 굴밥 다 맛있고 몸에도 이롭다. 표고버섯을 곁들이면 더 맛깔스러울 것이다.

-현재 가장 정성을 쏟고 있는 일은 뭔가.

△전라북도 고창은 좋은 인삼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다. 올해는 통곡물연구소장을 맡은 나와 고창군 농업기술센터 현행렬 소장 등이 힘을 합쳐 ‘메디푸드’라 할 수 있는 흑삼과 블랙소금의 연구·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상품화가 되면 외국으로의 수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향후 그려나갈 당신의 미래 청사진은.

△우리의 전통음식을 지켜가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채록해 그들의 노하우를 문서나 책으로 남기고 싶다. 한국의 부엌을 책임졌던 할머니들 대부분이 이젠 요양병원에 계신다. 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해야 할 작업이다. 이런 일에 관심을 가져주는 지자체와 관련 기관이 없어 걱정스럽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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