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건축공학박사 이창환

이창환 씨는 “건축물이 곧 사람이다. 건축을 할 때는 가장 먼저 그 집에서 살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복합시설, 도시계획, 재개발계획, 공동주택은 물론이고 도서관, 평생학습관, 체육관, 공연장 같은 공공시설까지, 도시가 필요로 하는 전반적인 프로젝트를 설계하시는 건축공학박사 이창환 씨를 토담건축사사무소 아래의 카페에서 만났다. 어떤 건물을 설계했는지 물으려는데 먼저 말씀해주신다. 누구나 익히 알 수 있는 건축물로 아양아트센터와 포항 뱃머리마을 평생교육원, 안동하회별신굿놀이공연장을 비롯해서 대구대, 금오공대, 영남이공대 등의 도서관과 체육관 기숙사, 대구대학교 경산캠퍼스 외의 다수 건축물을 이 건축사가 설계했다고 한다. 건축물은 한 번 짓고 나면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며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라며, 항상 프로젝트마다 최선을 다 한다며 탁자에 두꺼운 책자를 내놓았다. 제목이 ‘콘셉트(concept)’인데 책장을 들추자 디자인이 돋보이는 건물의 위엄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책자 안에 있는 건물이 모두 이 건축사가 설계한 건물들이었다.

 

아양아트센터·포항 뱃머리마을 평생교육원 등

실용적 기능·디자인 겸비한 다양한 공공건물에

대구대 경산캠퍼스 등 대학 건물도 다수 설계

의료재단 이사·장학재단 이사장직 맡아오며

특수학교 기부도 꾸준히 해 온 숨은 봉사자

“건축인은 사는 사람의 인생을 바꿔주는 사람

자신의 기호대로 짓는 오류 범하지 말아야”

“그림으로 봐서 그런지 건물이 화려해 보이네요.”

“공모전 중심으로 설계한 건물이어서 그럴 겁니다. 시대와 소통하면서도 지속성을 지닌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모든 건축가들의 염원인데, 공모전은 그 프로젝트만의 특별함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우선 실용적인 기능과 디자인이 두드러져야 하거든요. 설계경기에 치중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외양이 화려해졌어요.”

“그 동안 지으신 건물 중에서 특별히 손꼽을 수 있는 건물이 무엇인가요?”

“내 손으로 지은 건물이면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 인상이 깊은 건물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포항 뱃머리마을 평생학습원과 아양아트센터를 들 수 있겠어요.”

연꽃 봉우리 같기도 하고 상모돌리기를 연상하게도 하는 뱃머리마을 학습관은, 문화의 장으로 지어진 공간 같지 않게 우아하면서도 내면이 실용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지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점을 높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아양아트센터는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공간을 담은 공공시설로서 실용적인 면에서나 기능적인 면에서 보나 체육과 문화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잘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뱃머리마을의 평생학습관이 외유내강의 건물이라면 아양아트센터는 내유외강의 건물이라고 할까.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다. 뱃머리마을의 학습관이 아름다운 외양으로 주목을 끌었다면 아양아트센터는 주변 환경 과 잘 어우러지고 내부시설 또한 수영장까지 빠짐없이 갖춘 실용성이 높은 건물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아양아트센터라면 팔공산이나 공항 가는 길에 동부의 랜드마크처럼 서 있는 건물이 아닌가. 친구가 거기서 날마다 수영을 하고 있으니.

“큰 건물을 한 점 설계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건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아양아트센터는 거의 일 년 걸렸습니다.”

이 건축사는 건축가이면서 의료재단 이사 또는 장학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 영광학원 특수학교의 장애인을 위해서 꾸준하게 기부를 해오고 있다. 설계사무실 운영과 대학교 건축학 학도를 위해 20년 이상 강의를 한 분이시다. 책자를 보니 함께 일하는 직원이 열댓 명이나 된다.

“사무실 직원을 뽑을 때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저는 경력사원채용보다는 건축학과 5년을 졸업하고 3년 실무경력을 쌓아야 시험 칠 자격이 주어지는 졸업예정인 건축학도를 우선적으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짓는 건물만큼이나 실용적인 그릇이다. 장래가 보이는 제자들이나 신입생들을 가르쳐서 크게 쓰려는 의식은 아무나 쉽게 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흔히 그러지 않는가. 잘 가르쳐서 일 좀 하겠다 싶으면 높은 임금을 찾아서 점프하는 것이 다반사이거늘. 아예 그렇게 하라고 자리까지 깔아주니 배우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스승이다. 이런 사람이 더 많은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돈의 논리 앞에 자신의 이익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렇게 배워서 나간 인재들 중에 큰 회사나 건축설계 분야로 진출해서 잘된 제자들이 많다니 내가 다 고맙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아름다운 건물은 어떤 것입니까?”

“건축은 종합예술입니다. 건축을 제대로 알려면 팔십쯤, 한 생애를 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건축물을 알까 말까인데, 우리나라는 건축가들이 너무 일찍 피고 너무 일찍 시드는 경향이 있어요. 아까운 인재들이 너무 일찍 사라지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젊을 때는 우선 봐서 형상이 특이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형태를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좋은 건축은 기능이 중요하기 때문에 생활하는 사람이 안락감을 느끼며 편해야 한다고. 이 건축사의 말씀에 의하면, 자기 집을 세 번만 지어보면 진정한 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머무는 사무실을 짓는데 계획 기간만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자기 입장에서 집을 지어보면 모든 면에서 심사숙고의 시간을 거치기 때문에 비로소 건물다운 건물이 완성되는 과정을 실감할 수 있다. 건축은 사람과 같다는 말씀이 마음에 쏙 들어온다. 덕지덕지 화장을 한 모습보다 본래의 모습이 아름다운 건물이 진정한 건축물이라고. 계명아트센터를 짓기 전에 외국에 나가서 수많은 건물을 보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붉은 벽돌과 흰색 벽돌의 조화로움으로 지어진 클래식한 건물이 눈앞에 훤히 떠오른다. 그곳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뮤지컬의 선율과 율동까지 생생하다. 건물을 지을 때 외관도 단정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기능성이 뛰어나야 하기 때문에 대학교육시설과 도시공간이 맞닿는 부분까지 생각하고 설계를 했는데, 나중에 건축물이 현상설계 당선작의 원안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필요에 의해, 외관이 변형되는 걸 보며 마음이 안 좋았다고 속내를 살짝 비추었다.

“집값이 무섭게 치솟는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것인지 아니면 전 세계적인 형상인지 궁급합니다.”

“집값이 오르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복합적인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택이 자본주의의 또 다른 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세대에, 집의 재산적 가치와 둥지로서의 가치 중에서 어디에 더 큰 의미를 둬야 할지 모르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이 있으면 일단 사들이고 봅니다. 몇 층이고 환경이 어떤지에 대한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들은 투자적 가치로서 부동산을 바라볼 뿐입니다.”

오늘날 도시의 불균형이 극심한 것은 애초에 도시계획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온 나라가 아파트화 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불안한 미래를 예고하지만 이제는 너무 나가버려서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건축에 대한 선생님만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건축물이 곧 사람입니다. 건축을 할 때 가장 먼저 그 집에서 살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건축물은 그 안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자칫 건축가의 기호대로 건축물을 지을 우려가 있는데, 가장 조심해야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보다 건축물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패턴에 맞추어서 지어야 한다고. 그 집에서 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사는 사람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집을 짓겠다는 마음이어야 한다고 귀띔해주신다.

 

“건축물이 곧 사람입니다. 건축을 할 때 가장 먼저 그 집에서

살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집에서 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사는 사람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합니다”

“건축을 할 때 혹시 전통을 생각하시는지요.”

“영천시립도서관은 건물을 지을 때 전통을 의식하고 지었어요. 우리 전통 가옥의 서까래를 재해석해서 건축물에 인용하고, 그것을 새로운 기법으로 만들었고. 그런가 하면 뱃머리마을의 평생학습관은 우리 전통의 상모돌리기에서 착상을 가져왔는데, 부포를 세워 고갯짓을 할 때 연꽃 봉오리처럼 보이는 상모돌리기의 동작을 가져왔기 때문에,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건축물이 사물놀이 형태를 띱니다. 남쪽으로 형산강이 흐르고 있는 모습까지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건축을 남기고 싶으세요?”

“일반인은 자기 집을 평생에 한 번 짓습니다. 한 번이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 세밀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의사는 의료사고가 나면 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만 건축가는 그 속에 사는 사람 모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의사들보다 더 조심해야 합니다. 가족 전부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점심시간이 되며 카페에 손님이 많아졌다. 의자소리, 말소리, 쟁반소리.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천장이 이층 높이 뚫려 있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식탁이 놓여 있는 카페 천장 위로 토담설계사무실의 모습이 살짝 비친다. 어쩌면 사무실 직원들이 카페로 점심을 먹으러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떴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