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발
함께 가는 발
  • 등록일 2020.11.25 19:53
  • 게재일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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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좀이 도졌습니다. 엄지와 검지발가락 사이가 찢어져 따끔거립니다. 오래 전부터 각질이 벗겨지는 정도의 무좀증세가 있긴 했지만 온 여름내 멀쩡하던 발이었습니다. 맨발에다 샌들을 신던 여름에는 통풍이 잘 되어 무좀균이 숨어 있었는데, 간절기를 맞아 양말을 신는데다 신발마저 부츠로 바뀌니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제 역할을 잊고 있던 무좀균이 환경이 조성되자 저 좋다고 활개를 친 것이지요.

무좀만이 발에게 성가신 게 아닙니다. 날씨가 서늘해지니 뒤꿈치까지 말썽입니다. 여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갈라지다 골이 점점 깊어집니다. 물기 부족한 뒤꿈치는 잎맥처럼 잔금이 서리고 부스스한 가루마저 날립니다. 심한 곳은 골이 푹 파이기도 합니다. 심해져 허벅지나 다른 살에 스치기라도 하면 날카로운 송곳이 지나간 듯 상처가 돋고 각질까지 묻어납니다. 쌀쌀한 날씨가 돌아오면 생기는 불청 현상이지요. 제때 각질을 밀어주고 연화용 화장품만 발라주면 되는데 귀찮다고 방치하면 금세 그렇게 됩니다.

젊은 날, 겨울에 대중탕에 가면 둥근 돌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있었는지 개인이 준비해왔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중년의 엄마들은 물에 불린 뒤꿈치의 각질을 면도칼로 도려낸 뒤 그 돌에다 대고 문질렀습니다. 그라인더 역할을 하는 돌 위에서 뒤꿈치를 갈고 나면 일주일은 개운할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각질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번 목욕탕에 갔을 때는 전보다 더한 강도로 뒤꿈치를 문질러대는 분들을 만나곤 했으니까요.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졌지요. 매일매일 각질을 관리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만 못한 것이지요.

젊었을 때는 그런 풍경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청춘의 뒤꿈치에는 각질이 생기지도, 골이 패지도 않았으니까요. 해서 생업에 전력투구하는 엄마들의 고단한 땀이 모여 당신들 발을 거칠게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노동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뒤꿈치가 망가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건 열심히 산 흔적이 아니라 단순한 노화 현상 중의 하나라는 걸 알겠습니다.

며칠 무좀약을 바르고 연화제를 문지릅니다. 무좀균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친구 삼아도 좋을 위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네 소소한 일상 자체가 무좀 앓는 발이요, 각질 쌓이는 뒤꿈치 아니던가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시련은 무좀 앓는 발에 비유할 수 없겠지만 웃고, 울고, 떠들고, 마시는 가운데 생겨난, 감당할 만한 모든 고충을 무좀균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비의는 가지고 삽니다. 아픔이나 상처의 옷을 입은 그것은 평소에는 비활성화 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있으면 표면으로 드러나지요. 통풍에 문제가 없을 땐 잠잠하던 무좀균은 바람 쐬어 주지 않고 꼭꼭 싸맬 때 스멀스멀 피어나 발가락 사이를 갉습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에 무좀균이 생깁니다. 그때 위로라는 약을 발라 상처를 달래는데, 금세 낫긴 합니다. 그렇다고 무좀균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딘가에 숨어들었을 뿐인 이때의 무좀균은 발이 발로 단련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경고 장치로 기능합니다. 박멸하지 못할 바에는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그 어떤 약점에도 노출되지 않는 삶이란 없습니다. 산다는 건 환희라는 날개옷을 걸칠 때보다 고통이라는 갑옷을 두를 때가 더 많습니다. 수고로운 갑옷의 시간을 무좀 앓는 발이라 쳐둡시다.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날들을 각질 쌓이고 골이 패는 뒤꿈치라 여깁시다. 성가신 쓰라림이 가슴 한쪽을 지나겠지만 그건 모두 견뎌낼 만한 고민이자, 건널 만한 고충이지요. 따라서 그것들을 야멸차게 박멸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완전히 없애버린 평범한 상처 그 자리에,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나 번민이 들어찬다면 그보다 낭패스런 일도 없을 테니까요. 함께 가는 무좀과 같이 하는 각질이 있기에 더한 고통이 들어찰 기회가 없다고 위안해 봅니다.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
소설가

모든 살아있는 것은 점점 생기를 잃습니다. 푸석해지고 거칠어진 흔적이 내 것이 아닌 건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애써 없애려 하는 것보다 달래서 함께 가는 게 더 합리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려내고 문지르고 바르고 말린다고 근본적으로 내 삶의 군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렵거나 따끔거리거나 까칠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요. 찾아오는 그것들을 지우려할수록 더 두꺼운 이물감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

발가락 사이마다 무좀약을 바르고, 양 뒤꿈치에는 보습제를 문지릅니다. 발가락이 시원해지고 뒤꿈치는 한결 부들부들해졌습니다. 삶의 자잘한 각질과 균은 잘라내고 없애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부드럽게 달래 함께 가야할 동반자라는 것을 두 발이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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