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에 관한 추억 담긴 600여 편 국내외서 응모
유덕희 씨 ‘붉은 닻’ 금상 등 총 10점 입상 영예

‘제4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이 선정됐다.

영예의 대상에는 ‘가족을 위한 어부의 칼’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가난한 가장의 인생을 그려낸 이치운(58·부산시·사진)씨의 ‘줄칼’이 선정됐다.

금상에는 유덕희(전남 영광군)씨의 ‘붉은 닻’, 은상 이은서(경주)씨의 ‘수문지기의 열쇠’, 동상 양태순(포항시)씨의 ‘조선 문고리’·문경희(경남 창녕군)씨의 ‘다마스커스의 문양’이 각각 뽑혔다.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은 현대문명의 상징이자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온 철강산업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재도약을 기원하기 위해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스틸에세이 운영위원회 주관으로 올해 4회째 개최됐다.

올해 공모전은 지난 7월 23일부터 11월 8일까지 국내외 거주자(기성문인 포함)를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한 결과 일본을 비롯 서울, 경기, 전남 등 국내외에서 철에 관한 추억이 담긴 600여 편이 응모해 대상 1점, 금상 1점, 은상 1점, 동상 2점, 가작 5점 등 모두 10점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공모전 심사를 맡은 김은주·박시윤 수필가는 “‘제4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철과 연관된 신선한 소재와 날카로운 주제로 삶의 부면을 조화롭게 작품으로 건져 올린 수작들이다. 무엇보다 철이라는 일차원적인 소재의 억압에서 벗어나 소재 넘어의 것을 바라보는 상당한 수준의 안목이 작가의 유연한 리듬과 특유의 어법,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 품성과 인생관이 고르게 반영된 좋은 작품들이었다”고 전했다.

대상 수상 소감

먼저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을 주최한 포항시, 주관한 경북매일신문, 포항스틸에세이 운영위원회 관계자분들, 그리고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감을 쓴다는 것이 저에게는 과분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선 전화를 받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무척 기뻤습니다.

줄칼은 손톱만한 작은 물건이지만 아버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물건입니다. “뱃사람이라면 줄칼 하나 정도는 허리에 차고 다녀야 한당께”라는 호기 있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칼이란 날카롭고 위험한 물건이지만 아버지에게는 가족을 부양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묵뚝뚝했지만 속심이 깊었습니다. 줄칼을 만들면서 급한 성격을 다스리고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을 옆에서 아들은 지켜보았습니다.

아버지가 행동으로 보여준 소중한 교훈이 훗날 아들이 철공소 보조에서 대학 교수가 될 때까지 인내하는 힘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지도해주신 교수님과 부경수필 문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평생어부로 사시다 돌아가신 아버님과 노구로 소리도를 지키는 어머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독자를 자청해 늘 글을 먼저 읽어 주었던 아내와 아들, 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1963년 전남 여수 출생 △부경대 대학원 영문학 박사 졸업 △ 전) 부산 경상대학 교수 △2018년 ‘수필과 비평’신인상 수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이사 △부경수필문인협회 이사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대상 수상작 

‘줄칼’

붉은 꽃무리가 해마다 늘어간다. 엄지 손톱만한 반달모양의 녹 하나하나가 햇빛을 받아 선연한 핏빛을 반사한다. 흙 한줌 물기 한 방울 없는 곳에서 피는 꽃의 생명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시골집 어두운 광에는 낡은 대나무 소쿠리가 오래전부터 놓여 있다. 그곳에 담긴 물건은 대부분 50년 전 아버지가 집을 지을 때부터 썼던 도구들이다. 육지로 나서면 자잘한 것들에 불과 하지만 섬에서 살려면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필수품이다. 소쿠리에 담긴 괭이, 호미, 부엌 칼, 낫, 쇠톱, 못 등은 쓸모없어지면 외면당한다. 그렇더라도 버리거나 버려질 수 없다.

시선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길이는 한 뼘 정도이고, 손잡이는 동백나무이고 칼은 줄톱을 갈아 만들어졌다. 생전에 아버지는 그 칼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셨다. 찢어진 그물코를 깁거나 생선을 손질할 때, 고구마를 맛깔스럽게 깎거나, 갈치 국에 호박을 삐져 넣을 때 언제라도 쓸모 있게끔 했다. 손수 지은 집에 달았던 문패도 그 칼로 조각했다. 아버지는 이것을 줄칼이라 했다.

아버지는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부로 생을 마감했다. “한번 뱃놈은 영원한 뱃놈이랑께”라고 호기 있게 일갈했던 아버지는 뱃놈이라는 신분을 평생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거친 파도와 맞서야 하는 남자에게 뱃놈은 하대 말이 아니라 바다 남자에게 어울리는 신분의 명칭이다.

평생 칼을 사용하는 직업이 적지 않다. 대목수는 한옥을 짓기 위해 정과 끌을 한 몸으로 취급한다. 재단사는 품에 맞는 옷을 짓기 위해 재단 가위를 비단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다닌다. 쉐프는 맛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용도에 적합한 식도를 소중히 보관한다. 이들을 칼잡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섬에서는 만능 줄칼을 허리춤에 차고 다녀야 어부라 불릴 만 했다.

동네 어른 중에서도 몇 분만이 줄칼을 만들 줄 안다. 바다 물길을 알고 고기를 잡는 어부의 도리를 아는 집안 대주쯤 되어야 줄칼을 만든다.

쇠의 성질을 알고 인생의 끈기가 있어야 줄칼을 찰 수 있다. 줄칼은 온전히 숫돌에 쇠를 문질러 갈아낸다.

숫돌은 쇠를 다듬는 과정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녹을 제거하거나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금강(金剛)과 비수(備水)를 사용하고, 칼날을 세우기 위해서는 내담인지(內曇刃砥)를 사용한다. 칼에 딱 맞는 숫돌을 구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자연석으로 만든 숫돌을 사용했다. 그 돌에 강철을 문질러 갈려면 성미 급한 뱃사람으로는 감당하기 불가능한 일이다. 뱃사람이 가지고 있는 조급한 성질을 모두 죽여야 쇠를 대할 수 있다.

아버지는 쇠의 재질과 숫돌 종류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단숨에 잘라 낼 수 있는 칼날을 만들어 냈다.

섬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할 때는 금기를 따른다. 소리도 섬에는 노루를 신성시 여겨 배에 페인트를 칠할 때 노루표 페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제비표 페인트를 사용한다. 아버지가 줄칼을 만들 때도 엄격히 지키는 일이 있다. 줄칼 만드는 날짜가 정해지면 생선 배를 따지 않고, 손에 피 묻히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다툼도 일절 삼가 했다. 보리가 주식(主食)인 집안에 이웃집 소가 일 년 동안 일곱 식구가 먹어야 할 보리 싹을 먹어 치워도 어머니는 화를 낼 수 없다. 좋아하는 보해소주조차 마시지 않는 것이다. 집안 분위기가 평화스러워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절대 신조였다.

쇠를 갈 때는 쥐는 힘과 호흡이 중요하다. 호흡이 거칠어지면 칼날을 망친다. 엄지손톱만한 줄칼 하나 만드는데 대략 반나절이 걸리는데 그때까지 아버지는 오른손에 줄톱을 단단히 틀어쥐고 수평을 유지하도록 왼손을 떠받친다. 조상에게 제를 지내기 위해 경건하게 술잔을 받아 올리듯 줄톱을 쥐고 숫돌과 마주한다.

먼저 톱날을 없애야 한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뾰족한 톱날이 사라지고 호박조차 썰 수 없는 정도의 뭉뚝한 쇠판만 남는다.

다음으로 날카로운 한쪽 모서리를 문질러 반달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부와 가장으로서 척박한 섬 생활의 버거운 짐을 지려는 듯 등 굽은 자세로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두 시간 가량 흘렀다.

다음 순서는 뭉뚝한 쇠를 숫돌에 문질러 날카로움을 세워야 할 차례다.

날을 고르게 갈아낼 때까지 아버지는 줄톱과 숫돌이 하나가 되도록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마음을 모은다.

칼날은 날카로워도 뭉툭하지도 않은 중용(中庸)의 품성을 지녀야 한다. 물건을 깎거나 자를 때 날이 얇으면 부러지고 굵으면 베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스치기 시작할 때 쯤 쇠는 어부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일부를 내어준다. 혈기왕성한 젊은 뱃사람의 성격처럼 날카롭고, 모가 나있던 줄칼이 점차 둥글고 부드럽고 넉넉하고 원만해진 아버지의 성품처럼 닮아갔다.

겉으로는 무뚝뚝하나 속심이 깊은 아버지에게서 나는 힘든 객지 생활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교훈을 배웠다.

철공소 보조 일을 하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치러내고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아버지가 인내를 몸으로 깨우쳐 주셨던 것들이다.

아버지가 만든 손톱만한 반달 모양의 줄칼은 생명을 앗는 칼이 아니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는 의사의 메스도 아니다. 나라를 지키라고 왕에게서 하사 받은 사인검(四寅劍)도 아니다. 그것은 가족을 위한 칼이었다.

나는 숫돌과 마주앉아 칼날에 피어 있는 한움쿰의 붉은 녹 꽃을 숫돌에 갈아내기 시작한다. 어부로 사셨던 아버지의 흔적을 읽는다.

심사평

이번 공모전에 투고된 작품은 모두 631편이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은 역동적인 산업시대를 거쳐, 무겁고 차가운 ‘철(鐵)’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변모하여 삶에 스며든 이야기를 듣고자 마련됐다. 얼핏 소재의 제한이 따를 수 있으나, 상상, 의미 확장, 성찰을 거쳐 그 이상의 것으로 확대될 때, 제시된 소재는 무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러니만큼 철이 지니는 속성 그 이상의 것으로 승화된 문학작품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필은 값진 체험으로 길어 올리는 문학이다. 신변의 이야기를 장인정신으로 빚어내는 집이기도 하다. 기억 뒤편의 편린이 어떤 사물과 결탁해 그만의 감각적 촉수를 건드리고, 사물 본질에 대한 의미와 맞닿아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언어로 재해석될 때 비로소 좋은 수필이 탄생한다. 참신하고, 간결하고 솔직한 소재에, 의미 확장과 재해석이 첨가될 때 문학성과 함께 수필의 품격은 높아진다.

‘스틸에세이공모전’은 ‘철(鐵)’이라는 특정 사물이 장소와 환경에 의해 어떻게 사람의 속살을 파고 들어가, 재해석되는지를 요구하는 공모전이다. 철과 연관된 신선한 소재와 날카로운 주제로, 삶의 부면을 어떻게 작품으로 건져 올리는지는, 심사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횟수를 거듭하며 무수히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바늘’,‘무쇠솥’, ‘만년필’, ‘자동차’, ‘주전자’, ‘다리미’다. 수필이 신변에서 시작되는 문학임은 맞지만, 철이라는 1차원적인 소재의 억압에서 벗어나, 소재 너머의 것을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을 키우는 것도 절실히 요구해본다.

또한 부모님을 사모하고 추모하는 것을 벗어나 ‘나’에서 파생되는 이야기의 전개와 차분한 서술, 성찰이 돋보이는 글이 많아졌으면 하고 바란다. 이에 이번 심사는 작가의 유연한 리듬과 특유의 어법,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 품성과 인생관이 고르게 반영된 작품을 찾고자 노력했음을 밝혀둔다.

이치운의 ‘줄칼’을 대상작으로 선정하는데 한점의 이견도 따르지 않았다. 작가는 고향집에서 만난 아버지의 유품들 중, 가장 하찮은 줄칼을 발견하고 소재로 삼는다.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오직 사용자의 쓸모에 맞춰 직접 공들여 만들어야만 하는 물건이다. 아버지에겐 삶 밑바닥까지 닿아있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물건이었다. 줄칼을 만드는 과정은 신전에 바칠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엄격하고 거룩하다. 줄칼이 손에 익숙해지는 것을 아버지의 삶이 무르익는 것과 연관을 짓고, 목공소 보조에서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자수성가한 자신의 삶에 줄칼을 관조하는 대목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하등의 녹슨 줄칼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는 줄칼과 아버지, 아버지와 나, 줄칼과 나로 연결되는 복층의 구조를 지니며 과거, 현재, 미래를 고르게 넘나든다. 질곡 한 유년의 정서를 초연하게 풀어나가는 간결한 문장에서 누구나 희망을 건져 올리게 된다. 차갑고 둔탁한 철이 개인의 신변과 맞닿아, 인간미 스민 한편의 문학적 작품으로 승화된 좋은 작품이다. 함께 보내온 두 작품 역시 수작이어서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금상으로 선정된 유덕희의 ‘붉은 닻’은 폐기 처분된 닻을 다룬 작품이다. 다소 거친 문장과 구성의 느슨함이 보이나, 부산 영도 깡깡이마을에서 배에 붙은 녹이나 이물을 떼어내, 배를 안전하게 바다로 내보내던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삶을 진솔하게 풀어내 눈길을 끈다.

쓸모를 잃은 녹슨 닻들이 재가공 되기를 바라는 것과, 신(新) 기계의 도입으로 더는 녹을 걷어낼 인력이 필요 없게 된 깡깡이마을 어머니들의 삶을 재해석하는 것은, 사물을 사람의 삶으로 끌어들인 좋은 예다.

은상으로 선정된 이은서의 ‘수문지기의 열쇠’는 소재의 참신성과 물과 쇠의 재해석이 돋보인 작품이다. 물을 가두는 저수지의 수문(水門)을 관리하던 아버지의 역할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물의 의미를 끌어낸 작가의 안목은 사물과 사람의 본질 그 너머를 향한다. 쇠를 소재로 한 수문이나 열쇠의 의미, 성찰보다, 삶과 죽음이라는 연결고리로 택한 ‘물’의 의미를 더 크게 부각한 것과, 지나친 관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 작품 역시 수준작이다.

동상 양태순의 ‘조선문고리’, 문경희의 ‘다마스커스의 문양’역시 남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했다. 열 편의 수상작 모두 수준에 이르고 있어 심사의 보람이 곱절로 더했다.

올해로 4회째 맞는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을 맞이하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한다. 선정된 열 분의 수상자에게 무한한 축하를 전하며, 의미 있는 공모전을 열어준 포항시와 경북매일신문사에 감사를 전한다.

/심사위원 수필가 김은주·박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