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중국 전국시대 말엽, 진나라가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공격하자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平原君)을 초나라에 보내 원군을 청하기로 한다. 평원군이 수행원 스무 명을 뽑을 때 마지막에 나타나 스스로를 추천한 인물이 모수(毛遂)다. 평원군은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로 거절한다.

낭중지추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말로 인물이라면 주머니를 뚫듯 저절로 나타나는데 모수는 3년을 평원군 집에 식객으로 있었지만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모수는 “한 번도 저를 주머니에 넣어 주시지 않았지 않았느냐”는 절묘한 답변으로 수행원에 포함되고 이후에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나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를 받아 지난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천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석열이 24.7%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낙연 대표는 22.2%로 2위, 이재명 경기지사는 18.4%로 3위를 차지했다.

이어진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정례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처음으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한 것도 주목거리다. 이 조사에서는 윤석열 총장은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의 각각 19%에 이어 3위였다. 윤석열의 지지도는 11%로 한 달 만에 무려 8%나 수직상승했다.

‘윤석열 현상’으로까지 회자되는 이 흐름을 놓고 정치권은 엇갈린 분석들을 쏟아내고 있다. 여당은 대체로 떨떠름한 표정이고, 야당 또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야릇한 처지에 빠져들고 있는 양상이다.

윤석열의 대권후보 지지율 선두권 부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윤석열 부각의 일등공신은 모두가 알듯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추 장관은 윤석열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지휘권·감찰권·가족 수사·공개 저격 등 오만 핍박을 다 펼치고 있다.

‘김대중을 만든 건 박정희’라는 말이 떠오른다. 박정희의 가혹한 탄압이 오히려 담금질이 되어 연철에 불과하던 김대중을 강철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같은 원리를 적용하면 추미애의 말도 안 되는 채찍질·발길질 횡포가 윤석열을 날로 단단한 강철로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윤석열의 부각을 가장 두려워해야 할 쪽은 국민의힘이다. 가뜩이나 마땅히 떠오르는 주자가 없는 마당에 윤석열이 야당의 잠재영역을 다 차지해 여지를 말살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날로 까발려지는 정치권의 온갖 추잡한 이면들을 바라보면서 ‘법치의 위기’를 절감하는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 ‘입법부를 행정부에 종속시키는 것이 파시즘의 본질’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진보지성 버트런드 러셀의 파시즘 정의가 아니더라도, 3권분립이 무너지고 있는 이 나라는 진실로 위험하다. 아직은 그를 담아낼 마땅한 그릇조차 없는데, 어쨌든 ‘윤석열’은 온다. 검찰청 앞 화환에 붙은 ‘낭중지추’ 응원 문구가 새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