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백경훈이 안내하는 무스탕과 파키스탄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상황. 멀리 보이는 네팔의 설산이 일상에 갇힌 사람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상황. 멀리 보이는 네팔의 설산이 일상에 갇힌 사람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던 하늘길이 대부분 막혔다. 외국으로의 여행을 꿈꾸던 사람들의 발도 묶였다. 이런 상황에선 ‘책을 통한 대리 만족’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독서의 계절’ 아닌가. 여행작가 백경훈의 책 2권과 함께 한국인에겐 다소 낯선 여행지 무스탕과 파키스탄으로 떠나보자. 코로나19가 한시바삐 우리 곁에서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여행자를 꿈꾸게 하는 책 ‘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
여행자를 꿈꾸게 하는 책 ‘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

‘숨겨진 왕국’이 유혹하는 땅으로 가고 싶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다.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전자의 경우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여행을 꿈꾸는 삶을 산다면, 후자는 아이들이 부르는 단조로운 동요와 같은 일상을 그저 견딜 뿐 일탈의 용기를 내지 못한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우리는 어떤 부류의 인간이 되기를 열망해야 할까? 시인이자 여행작가인 백경훈의 네팔 기행기 ‘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는 위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한번 뿐인 인생, 네 영혼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젊은 시절 백경훈은 세칭 ‘잘 나가는 광고쟁이’였다. 높은 연봉에 창의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광고대행사 CD(Creative Director)의 삶을 과감히 버리고 그가 설산(雪山)과 푸른 하늘의 네팔에 매혹된 이유는 뭘까?

광고 촬영지로 적합할 지 검토하기 위해 우연히 회사 자료실에 비치된 네팔 관련 영상을 본 백경훈. 그것이 그의 미래를 결정지을 운명이었을까. 백씨는 화면 가득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신비로운 풍경에 완벽히 매료되고 만다.

이후 오랜 짝사랑 끝에 마침내 9일의 휴가를 얻어 수천m의 설산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네팔 히말라야로 향하는 백경훈. 그 첫 여행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네팔의 주술’에 걸린 그는 마침내 ‘출근-근무-퇴근-출근’이 반복되는 일상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버린다.

그때부터 한 번 가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5개월 이상을 네팔에서 머물며 그곳 풍경과 사람들의 친구가 된 백경훈이 그 체험을 묵혀 ‘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을 낸 것은 ‘수박 겉 핥기’식의 고만고만한 네팔 여행기에 질려버렸기 때문.

그가 20여 일을 머물며 훑어본 무스탕은 네팔 중북부 산간에 위치한 왕국. 백씨가 여행할 당시엔 22대 국왕 ‘지그미 팔벌 비스타’가 통치하고 있었다.

무스탕은 1992년에야 외국 여행자들의 방문을 공식적으로 허락한 지구 위 마지막 금단의 땅. 1년 내내 거센 모래바람이 불고, 해발 3천m를 훌쩍 넘는 곳에 위치한 탓에 이방인들은 고산병으로 쓰러지는 일이 흔하다. 그 존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누구나 찾아갈 수는 없는 왕국 무스탕. 백경훈은 위험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곳을 향해 출발하며,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를 인용한다.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모든 것의 끝, 심지어 세상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추동한 여행이었다.

멀리 낯선 땅에서 들려오는 “영혼이 자유로운 자, 내게로 오라”는 목소리. 백경훈은 지구 위에 남은 마지막 금단의 땅이자, 눈 덮인 웅장한 산들이 춤추는 무스탕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자신의 가슴 속에서 맹렬히 끓고 있는 순정한 욕망을 거부하지 않았다.

책은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무스탕에서의 3주를 세세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한 성과물이다. 사진작가 이겸과의 동행이었고, 이겸의 사진은 백경훈의 글 못지않은 울림으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당신은 이처럼 용기 있는 떠남을 행할 수 있는가”라는 아픈 질문을 함께 던진다.

너무나 푸르고 높아서 현실 같아 보이지 않는 하늘, 척박하지만 꿈을 품은 꽃들이 숨어있는 대지, 순정과 순수의 절정을 사는 사람들. 백경훈은 무스탕에서 “나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이어주는 신(神)을 만났다”고 말했다.

‘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를 읽은 당신은 무엇과 만날 수 있을까? 책이 들려주는 막막한 바람 소리에 네팔로 향하는 배낭을 꾸릴지도 모른다.
 

파키스탄이란 나라가 궁금할 때 펼치면 좋을 ‘신의 뜻대로’.
파키스탄이란 나라가 궁금할 때 펼치면 좋을 ‘신의 뜻대로’.

선량하고 눈 맑은 아이들과 만나고 싶다면…

시인 김수영처럼 말하자면 “먼 데서 먼 곳을 보는 눈빛”이다. 어떤 세속적 욕망의 때도 묻지 않은 투명한 눈망울. 죄 짓지 않고 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선량한 표정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착한 색채’로 물들일 듯하다.

궁핍과 불편함이 주위 사방에 산재한 척박한 땅 파키스탄. 그러나, 소년의 눈 속엔 외부 환경이 가져다줬을 법한 서글픈 그늘이 없다. 백경훈은 이 소년을 보며 영혼이 흔들렸다고 한다.

여행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은 고백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생면부지의 땅에서 내 전생을 본다”고. 눈 맑은 파키스탄 소년을 만나 영혼의 흔들림을 경험했다는 백경훈. 그 역시 잊었던 전생의 자기 모습을 소년에게서 발견했던 것일까?

여행기(旅行記) ‘신의 뜻대로-파키스탄, 그 거친 땅에서 만난 순수’는 예쁜 책이다. 시와 고전 인용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백경훈의 물기 어린 미문(美文)과 유별남이 찍은 사람 향기 물씬 풍기는 사진의 결합. 두 사람이 빚어내는 하모니가 책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2개월 동안 파키스탄을 여행한 백경훈은 해발 6천m에 달하는 미답봉(未踏峯) 등반기와 오지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여기에 기차로 37시간을 달려야했던 ‘이슬라마바드-카라치 구간’의 체험을 꼼꼼하고 세밀한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기에 ‘신의 뜻대로’는 “잘 만들어진 파키스탄 가이드북”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하지만, 통상의 가이드북과는 또 다르다. 왜냐? 백경훈의 책에선 자신이 여행한 곳에 대한 꾸미지 않은 사랑이 읽히기 때문이다.

설산이 녹아 형성된 투명한 호수에 발을 담근 파키스탄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 그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어린 소년, 소먹이일 듯한 풀짐을 짊어진 그 아이가 미소를 띠며 우리 앞에 서 있다. 두건 그림자 어리는 이쁘디이쁜 소년. 땡볕 아래 게슴츠레한 내 눈이 번쩍 커진다. 너, 누구니… 먼 길에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별 같은 아이야… 지금도 그 소년이 눈에 선하다. 나도 그런 표정을 가진 적이 있었을까.”

몸이 아닌 마음으로 파키스탄의 산과 강, 사람들을 끌어안으며 옮겨 다닌 발걸음이기에 백경훈의 글에선 소년의 옷자락에 묻은 바람 냄새와 손끝 미세한 떨림까지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다. 우리는 이때껏 ‘한 손엔 코란(이슬람 경전), 다른 한 손엔 칼’이란 문장을 읽으며, 이슬람교도의 비타협성과 폭력성만을 이야기 들어왔다. 서양, 특히 미국 중심의 시각에서 그들을 봐온 것이다.

‘신의 뜻대로’는 그간 우리 내부에서 굳어진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도 작지 않은 도움을 준다.

마지막 장에 묶인 ‘살람! 이슬람, 평화’는 요약된 이슬람의 역사와 왜곡·굴절돼 왔던 이슬람교도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슬람 문명’ ‘무슬림 여성과 베일’ ‘세계는 평평하다’ 등 다수의 책을 읽고 핵심을 요약해낸 백씨의 성실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여행을 마친 백경훈은 60일간의 떠돎이 제 삶에 끼친 영향과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파키스탄에서의 여행은 혁명이다. 태양과 원초적 대자연 아래 자신을 허물고 부활을 꿈꿀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언젠가 청정의 땅, 파키스탄 길 위에 다시 서고 싶다. 신이 원하신다면, 신의 뜻대로… 꿈은 꾸는 자의 몫, 나는 계속 꿈을 꿀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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