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공정성 논란이 뜨거운 여의도 정치판에 ‘이해충돌방지법’이란 이름의 폭탄이 터졌다. 이해충돌방지법은 당초 지난 2015년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핵심내용이었지만 당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통째로 삭제된 바 있다. 이 법안은 그 이후 19·20대 국회에서 잇따라 제출됐지만 무산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미묘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건으로 공정성 논란에 시달리던 여당이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 관련 의혹 등을 계기로 이해충돌방지법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이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고, ‘박덕흠 의원’ 탈당사태로 면목없는 야당도 일단 이해충돌방지법 논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과연 이 법안이 무사히 통과될 수 있을까.

동상이몽격으로 시작된 이해충돌방지법안이지만 법 제정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해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된 상태인 이해충돌방지 법률안은 공직자의 이해충돌 상황을 예방·관리하기 위해 직무관련자가 사적 이해해관계자인 경우 신고·회피·기피, 고위공직자 및 채용업무 담당자의 가족채용 금지, 고위공직자 및 계약업무 담당자 본인 또는 그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 존·비속과 수의계약 체결 금지 등 8가지의 구체적인 행위기준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해충돌 법안에 대한 태도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여당 지도부 일각에선 벌써 법안내용을 신중하게 다뤄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척과 기피제도와 관련해 국회직은 일반공직자와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제척·회피제도 수위가 높아지면 판사·검사출신은 전문성이 있어도 국회법제사법위에서 활동하지 못할 수 있고, 의사출신 의원이 보건복지위를 피해야 하고, 기업인출신은 기재위를 비롯해 예산과 경제활동에 관련있는 대부분의 상임위에서 일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대기업 오너 출신인 정몽준 의원의 경우 7선을 거치면서도 국회의원 시절 내내 주로 외교통일위원회를 맡아 오가야했고, 산업통상자원위나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한번도 활동하지 못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해충돌방지법은 특히 기업인 출신 국회의원의 행보를 크게 제한한다. 따라서 보수야당도 적극 찬성하기 어렵다. 이 법안이 제정되면 기업의 자유활동을 보장하는 야당이 스스로 기업인출신의 국회활동을 제한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국민의힘은 이해충돌 법안처리에 찬성 입장을 보이면서도 민주당 의원들의 이해충돌 소지를 먼저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피감기관 장관·이사장 출신인 도종환·이개호·김성주 의원, 포털사이트 출신으로 ‘카카오문자’논란을 일으킨 윤영찬 의원의 이해충돌 소지를 먼저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이해충돌방지법안의 오랜 표류에는 국회의원들과 정면으로 이해충돌하는 법안이란 이유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