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날다
오리 날다
  • 등록일 2020.09.23 19:42
  • 게재일 20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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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경수필가
배문경
수필가

보문호수는 윤슬로 춤춘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바람이 분다. 멀리 떠가는 오리 배, 수면 아스라이 앉은 오리와 뭇 새들이 풍경을 이룬다. 乙자 모양의 오리가 수면을 치며 날아오를 때, 순간 담담하던 풍경이 소스라치듯 놀란다.


새들의 군무를 보았던 일이 떠오른다. 일몰 직후 노을 진 하늘 위로 떼 지어 날아오르던 새들은 가창오리였다. 그들의 비상과 선회는 한 폭의 점묘화를 이루며 나의 시선을 압도했다. 그 광경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단지 생존으로 다급한 힘겨운 몸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은 두 날개가 추위와 굶주림을 넘어서 함께 어울려 펼쳐 놓은 것이었기에 더욱 숨 막힐 듯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늘 한 쪽에 펼쳐진 거대한 그림을 보며 어느 순간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올라 자신을 드러낼 구도자의 춤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집에서 오리를 키웠다. 친정집 뒤에는 큰 도랑이 있어 오리를 키우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오리솟대가 있었는데 새들이 날아갈 때는 솟대의 오리도 날개 짓하는 것 같았다.

오리들은 흰 깃털이 때가 묻어 늘 거무죽죽했다. 그 오리들 사이에 색깔부터 다른 청둥오리 몇 마리가 끼여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청둥오리 알을 가져와 서너 개를 부화시켰다고 했다.

어느 날, 약으로 쓴다며 오리를 사러온 사람에게 아버지는 두 날개를 끈으로 묶어 청둥오리를 넘겼다. 내 눈처럼 오리는 젖은 눈으로 퍼덕였다.

청둥오리들은 가끔씩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기도 했지만 야생으로 영 날아가 버릴 생각은 애초에 없는 것 같았다. 가끔 비탈진 언덕을 오르거나 뒤뚱대며 내려올 뿐이었다. 이미 퇴화된 날개는 어깨의 일부처럼 붙어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높은 장대를 설치해서 그물을 치기 시작했다. 날개에 힘이 오른 청둥오리들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을까. 하지만 그 여름 태풍이 한번 휘몰아치자 냇가에 세워둔 아버지의 그물막도 장대가 넘어지면서 한쪽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그물막을 수리하는 동안 초막에 갇혀 지내던 오리들이 다시 냇가로 나왔다. 지저분한 날개를 씻어 깨끗해졌을 때, 아버지와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 아주 짧은 순간, 내 기억은 눈부신 빛 속으로 흩어졌다. 청둥오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몸을 위로 띄웠다. 그리고는 머리와 몸채가 평형이 되게 하고는 날개를 쭉 펼치자 앞으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신호를 서로 보내고 있었을까. 한 무리의 오리들이 하늘에 낫 모양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청둥오리는 솟대를 지나 그 무리를 향해 더 높이 날았다. 지상에 있던 흰 오리들이 꿱꿱하며 날개를 퍼덕였다. 청둥오리는 날아오르다 잠시 공중에 멈춰 인사라도 하듯 고개를 젖혔으나 위로만 날아올라 무리들에 섞여버렸다.

낮잠은 달았고 오리들은 자맥질 중이었다. 나는 청둥오리들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라 자유롭기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나는 반복된 일상에 젖어있었다. 나 자신의 꿈은 내려놓은 채 가정에 모든 것을 붓는다고 자위했다.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러 나의 꿈을 돌이켜 본다. 한 때 영화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외국에서 영화감독이 되어 돌아오는 나를 그려보았다. 밥벌이가 중요하다고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나는 꿈을 접어 넣는 습관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러다 늙어죽는 것은 아닐까. 의문기호가 많아질 때, 나는 집에서 키웠던 청둥오리를 떠올린다. 그 많던 오리 중에 유일하게 울타리를 박차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던, 무리와 하나가 되어 훨훨 날아가던 오리.

다시 보문호수에 바람이 불자 물결은 찰랑거린다. 언제 보아도 물 위의 오리는 수면 아래 물갈퀴 발을 열심히 움직인다. 오리 배는 여전히 묶여 있고, 에메랄드빛 하늘로 새들은 드높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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