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문화의 상징과 공간 (3) 스틸아트

최정화 作 ‘Flower Tree’
최정화 作 ‘Flower Tree’

도시의 미래를 준비하며 발전의 동력을 문화예술에서 찾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 산업 생산에서 인문학과 문화예술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가 정착되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차별화된 도시 브랜드를 만들고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지자체 간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 확립을 위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이를 문화예술로 녹여내는 작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포항도 새 활로를 열기 위해 시 차원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노력을 해보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포항시가 사활을 걸고 있는 관광산업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야심차게 준비한 해양관광도시로의 도약은 답보 상태에 있으며 미증유의 지진까지 겪어 도시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다. 그 여파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9년 전국 주요 관광지의 방문객 조사’에서 포항의 주요 관광지는 단 한 곳도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2018년까지만 하더라도 호미곶의 새천년기념관이 순위권에 들면서 자존심을 지켰지만, 지난해부터는 기념관 관광객 수가 100만 명을 넘지 못하면서 인기순위 바깥으로 밀려났다. KTX와 공항 같은 광역교통망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지자체의 경쟁력이 다른 시·군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포항시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9년 12월 관련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관광 활성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포항관광 2030 권역별 개발 및 활성화 마스터플랜’이 그것이다. 하지만 연구용역 중간 보고회의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인구수 16배 차 포항vs영덕 작년 관광객 400만vs576만’, 경북매일신문 2020년 8월 10일자 참조). 과연 포항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이며, 어떤 미래를 꿈꿔야 하는가?

 

‘철과 예술의 융합’ 신선하고 특별한 발상으로 탄생한 스틸아트페스티벌

내년 10주년 맞아 ‘스틸아트시티 조성’ 새로운 문화담론으로 승화시켜야

폐쇄 앞둔 포항제철소 1고로, 스틸아트와 연계 문화관광 인프라 활용을

송운창 作 ‘I’m fine-230’
송운창 作 ‘I’m fine-230’

□ 철과 예술이 한몸이 된 페스티벌

철강산업의 미래가 어둡다고 한다. 철강도시 포항의 미래도 밝을 수 없다. 이미 세계의 여러 철강도시들이 철강산업의 불황으로 쇠락하였고, 그중 몇몇 도시는 새로운 동력으로 부활에 성공했다. 철강산업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하더라도 포항에서 철은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가야 하고 더 큰 가치를 새롭게 부여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다면 철이 포항의 미래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역 문화계에서 이 문제를 놓고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대표적인 결과물이 스틸아트페스티벌이다. 스틸아트페스티벌의 산파역 중 한 사람인 김갑수 포항미술관장의 다음과 같은 얘기는 이 페스티벌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서 기획되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1995년경에 스페인 빌바오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잘 나가던 철강도시가 형편없이 기울어버린 장면을 두 눈으로 보고 깜짝 놀랐지요. 빌바오는 그후로 대규모의 도시재생에 성공하고, 구겐하임 미술관도 유치하면서 다시 일어섰지만 당시는 대단한 충격이었어요. 그때 포스코 생각이 나더군요. 포스코도 머지않아 어려워질 수 있고, 포항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철의 쓰임새를 바꿔서 철을 예술과 한몸이 되도록 해보자. 그래서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고민이 스틸아트페스티벌까지 이어지게 되었지요.”(‘스틸아트시티 포항’ 포항문화재단, 2018년, 76쪽.)

요컨대 철을 예술과 한몸이 되도록 함으로써 철강도시의 위기를 돌파해보자는 것이 스틸아트페스티벌의 근본적인 기획 취지이다. 즉 산업의 재료이자 지역의 정체성인 철이 예술가의 창의성과 첨단 과학기술을 만나고 이를 축제와 접목한 것이 스틸아트페스티벌이다.

사실 ‘스틸아트’는 미술용어사전에 등재돼 있는 용어가 아니다. 금속재료를 이용한 예술장르를 통칭하는 신조어인데, 쇠는 탄소 포화도에 따라 아이언(철)과 스틸(강)로 구분되므로 철이든 강이든 금속을 주재료로 사용한 예술 장르를 상징적으로 명명한 것이다.

이일 作 ‘푸른 숲의 거인’
이일 作 ‘푸른 숲의 거인’

□ 21세기형 예술도시의 의지를 반영

2012년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을 처음 시작하면서 커미셔너 역할을 했던 오의석은 이 축제의 방향성에 대해 이렇게 규정했다.

“전국에 넘쳐나는 수많은 축제 가운데 철을 테마로 한 예술축제는 찾기 힘든 신선하고 특별한 발상이었고 철의 도시 포항만이 기획하고 시도할 수 있는 것이기에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은 철을 산업적 코드에서 문화적 코드로 접근하고 변용해 나감으로써 예술과 산업과 기술을 융합하여 이루어가는 21세기형 예술도시로 포항의 변화를 예고하며 추구해 나가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앞의 책, 144∼145쪽.)

‘예술과 산업과 기술을 융합하여 이루어가는 21세기형 예술도시’라는 표현에 스틸아트페스티벌의 방향성이 담겨 있다. 국내 유일의 스틸예술축제인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은 내년에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동안 포항을 대표하는 예술축제로 성장한 것은 물론, 국내 문화예술계에서도 주목하는 예술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철강도시라는 무거운 회색톤의 도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 예술축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은 소중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또한 페스티벌에 출품된 스틸아트 작품 130여 점을 작품 성격과 잘 어울리는 장소에 재배치함으로써 도시경관을 개선한 것은 물론, 문화예술도시의 면모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축제가 취소되었으나 스틸아트페스티벌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에 맞춰 무대행사는 지양하지만, ‘온고지신, 새로운 10년을 향하여’라는 주제를 정하고 영일대해수욕장을 비롯해 포항운하, 철길숲, 오천예술로 등지에서 작품투어 형식으로 진행된다. 스틸아트 투어앱을 개발해 작품의 위치와 해설을 제공함으로써 시민들과 소통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배영환 作 ‘천개의 달’
배영환 作 ‘천개의 달’

□ 스틸아트시티 담론의 필요성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처음 열린 2012년부터 조각 예술가들 사이에서 포항은 스틸아트의 메카로 인정받았다. 그만큼 이 예술축제의 지향점이 확실했고, 메시지도 강렬했다. 국내 거의 모든 조각가들이 포항을 주목했고, 금속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작가군이 두터워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틸아트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작품의 수준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는 효과를 불러왔다. 스틸아트페스티벌 10년의 역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2018년 스틸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았던 김노암의 발언을 들어보자.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조각과 설치미술, 키네틱아트와 미디어파사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현대미술로 장르와 형식을 확장해가리라 기대하면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동북아의 대륙을 용맹하게 달리던 유목민족의 철기문명이 한반도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와 포항에서 현대의 철의 산업과 문화를 꽃피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다. 포항의 철강산업이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조각작품, 설치미술이 만나는 아트페스티벌로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현대예술과 시민이 함께 공감하고 호흡하며 대화하는 장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앞의 책, 171쪽.)

오랜 세월 철을 매개로 포항 안에서 싹을 틔우고 성장해 온 포항만의 고유한 개성과 가치를 새로운 문화 담론으로 만들 때가 되었다. 그 담론을 ‘스틸아트시티’라 부를 수 있겠다. 스틸아트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품게 된 문제의식과 미학적 실험을 도시 곳곳에 전면화하는 것이 스틸아트시티이다. 그동안의 페스티벌을 통해 많은 스틸아트 작품이 도시에 곳곳에 배치되었고, 스틸아트공방에서 시민들이 스틸아트 제작기술을 배우고 있다. 지역의 철강기업이 직접 스틸아트 작품을 제작해 페스티벌에 출품하는 것도 페스티벌의 대중성을 강화하는 데 적지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스틸아트시티의 골격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스틸아트시티라는 새로운 담론을 통해 그동안의 문제의식을 정교하게 가다듬고, 지역의 미래를 본격적으로 바꿔나가는 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스틸아트시티는 지역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철강도시가 철과 예술의 융합을 기반으로 진정한 문화예술도시로 새롭게 거듭나는 서사를 도시 곳곳에 실현하는 실험이다. 예술가와 시민, 행정기관이 창조적인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한 도시를 스틸아트공원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 작업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좀 더 과감한 상상을 해볼 수 있겠다.

이를테면, 2021년 폐쇄가 결정된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를 스틸아트와 연계한 문화관광 인프라로 활용해보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스틸아트시티 실현을 위한 과제

스틸아트페스티벌을 플랫폼으로 진정한 스틸아트시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점검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매년 개최되는 방식의 페스티벌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점검해보고 필요하다면 비엔날레나 트리엔날레로의 전환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국제적 수준의 스틸조각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셋째, 스틸아트공방 등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할 필요가 있다. 넷째, 스틸아트시티 실현을 위한 세미나, 심포지엄 등 본격적인 공론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사안을 고려한다면 스틸아트페스티벌 조직위원회 같은 독립된 기구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틸아트시티의 필요성과 방향성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어떤 담론이나 정책도 시민들이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야 확실한 동력이 생긴다. 아무리 좋은 담론이나 정책도 시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생명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생산적인 담론의 활성화는 시민의식의 수준과 도시 공동체에 대한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스틸아트페스티벌의 잠재력을 더 확장하는 것은 물론, 스틸아트시티 담론을 활성화하는 것은 매우 긴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예술이 일상이 되는 품격 높은 도시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안성용>

 

류영재 화가
류영재 화가

글/류영재

화가. 한국예총 포항지회장, 포항시립미술관 건립추진위원장·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운영위원장·장두건미술상 제정 및 운영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