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쫓아오든 햇빛인데 / 지금 敎會堂 꼭대기 / 十字架에 걸리였습니다.”

윤동주가 원고지에 쓴 그대로 ‘십자가’ 한 소절을 옮겨봅니다. 오늘은 맞춤법을 따르기보다 시인의 마음을 좇아, 참회의 그 심정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예, 저는 개독교인입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경멸하며 비하해 부르는 그 ‘개독교인’ 맞습니다. 열정에 가득찬 누군가에 이끌려 교인이 된 게 아닙니다. 제 의지로 교회를 찾아가 교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개독교인,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못해신앙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모태신앙인입니다.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나름 논리와 합리성을 따지는 저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신앙 유전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은 개독교인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태신앙을 감사하며 이때껏 살아왔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이 장로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을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감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기독교 친화적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권사님이라고 하면 왠지 믿음이 가고 어머님같고 친할머니같은 포근한 느낌을 보통 사람들이 가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구한말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서 미몽에 갇혀있던 우리 민족을 깨우쳐 근대화를 이루게 하고, 일제하 독립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기독교였습니다. 독수리 날갯짓과 같은 믿음으로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함이 주님의 뜻’이라고 외치며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주시어 정의가 사나니”라는 찬송을 부르며 독재의 군화와 최루탄에 당당히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선배 기독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사랑과 정의의 빛이 점점 흐려지고 부정적 인식은 점점 커져 개독교라고 불리는 데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극우 집단이 태극기부대라는 이름으로 소동을 부린다 해도 태극기를 부끄러워할 수는 없듯이, 일부 극우 기독교 세력의 과격 언사와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이 기독교를 싸잡아 욕한다고 해도 저는 개독교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 저 또한 기독교를 ‘개독교’로 부르게 만든 원인 제공자임을 자백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보다는 욕망을 좇고 욕정에 뒤엉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데에 가톨릭교인들은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사회적 이미지가 좋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90년 9월 말 ‘내탓이오’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타락을 ‘나’부터 반성하며 일으킨 사회 개혁 운동입니다. ‘내탓이오’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회개와 성찰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도 끌어안는 사랑과 포용의 자세입니다. 이 자세를 배우려 합니다.

저는 개독교인입니다. 가톨릭이 아닌 ‘개(신 기)독교인’입니다. 하여 이제 ‘다시 새로워’지겠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는 날 새벽, 교회당으로 가겠습니다. 예배실 한 귀퉁이에 조용히 앉자 두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할 것입니다. 교회당 꼭대기가 아니라 제 마음 한가운데 십자가를 가만히 걸어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