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 입문기
초보 농사꾼 입문기
  • 등록일 2020.09.14 19:47
  • 게재일 2020.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지연씨의 농사 지은 고추.

농사를 짓다 보면 생각만큼 쉽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직장 생활이 힘들거나 하던 일이 잘 안 풀리면 ‘고향에 내려가 농사나 짓지 뭐’하고 씹던 껌 버리듯 무심코 말을 내뱉지만 농사야말로 그 어떤 일보다 많이 생각 해보고 결정을 내려야 될 일이다.

남편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무료한 시간을 보낼 겸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조그만 농장을 하나 샀다. 뜻하지 않게 나를 동참시키는 바람에 얼떨결에 남편이랑 같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산비탈 들쑥날쑥한 땅을 포크레인으로 고르게 평탄 작업해 놓으니 땅 모양이 화장한 여인처럼 근사하게 바뀌었다. 초봄이라 잡풀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이 새로 집을 지어 이사한 것처럼 흥분되고 설레기까지 했다. 예쁘게 자랄 방울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등을 상상해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봄이 무르익자 온갖 잡풀들이 쑥쑥 올라왔다. 작물들을 심으려고 땅을 뒤집으니 곳곳에 돌이 박혀 있어 돌 고르는 작업을 먼저 해야 했다. 뒤집으면 다시 돌이 올라오고 치우고를 반복하며 우리 부부는 조금씩 지쳐갔다. 남편이 전화로 서울 사는 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토요일에 아침 일찍 내려왔다가 일요일 저녁에 올라가면 어떻겠냐고. 아이들은 왕복 열차표를 끊어 준다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어설픈 호미질에 외발 수레에 돌을 싣고 언덕을 오르는 작은 딸아이가 몇 번씩 고꾸라졌다. 남편은 눈짓으로 내게 못본척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옷이 흙으로 더럽히고 손바닥이 까여 상처가 났지만 일하고 먹는 삼겹살 맛이 최고라며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그 후로 두 번 더 주말에 내려와 돌 고르는 작업을 도왔다. 직장에 다니는 아이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두 명 왕복 열차 값이면 포크레인 하루 부르고도 남는다는 내 푸념에도 남편은 고집스럽게 제 주장대로 밀고 나갔다.

눈앞에 웃자란 부추가 땅에 늘어져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들깨가 출렁이며 흔들린다. 알싸하고 고소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어설프지만 우리 부부가 힘들여 지어 놓은 농막 하우스에는 붉은 고추가 널려있다. 유례없이 긴 장마를 이겨 내고 올겨울 김장 양념으로 식탁에 오를 생각을 하니 여태껏 고생한 수고로움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진다. 물건의 질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 내가 기른 농산물은 내게 최고의 가치다. 많은 시간과 노력, 땀방울과 한숨이 그 속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한 해의 결실이 손에 쥐어지면 힘들었던 과정은 깡그리 잊어 버리고 다시 내년 농사를 준비할 것이다. 농부가 아니라 진정한 농사꾼으로.

/김지연(경주시 마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