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 2020.08.03 19:49
  • 게재일 20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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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출판사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에 출간한 ‘사설시조의 맛과 멋’이라는 신간이 올해 세종도서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됐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전공자가 아니면 그다지 볼 일도 없는 학술서건만 그래도 글을 쓴답시고 밤새 글자 한 자 한 자 뜯어보며 수정하던 지난 날이 문득 떠올랐다.

한참 교정을 볼 때였다. 한 지인이 하는 말이 아니, 요새 책들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더군다나 인문학 학술서를 누가 그렇게 신경 써서 본다고 그러는지, 단어 하나에까지 참, 대충 좀 하라는 것이었다. 국어과 교수 아니랄까 봐 그렇게 공들이며 시간을 한참 보내는 게 이해도 가지 않을뿐더러 답답해 보인다고까지 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인문학의 가슴 아픈 현실을 일깨우는 말들을 콕콕 집어하는 말이 어찌나 얄밉던지. 오랜만에 본 반가움은 잠시, 말 한마디에 괜히 샐쭉했던 기억이 있다. 결과적으론 오기가 나서 글자 하나에 더 신경 쓴 덕에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지금은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사실,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말을 잘해 천 냥 빚을 갚기도 하나 반대로 말 한 번 잘못해 멸문지화를 당한 경우도 수두룩하다. 조선 개국 공신인 정도전이 공공연히 ‘한 고조 유방이 장자방을 쓴 게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쓴 것’이라며 함부로 말하고 다님으로써 태종의 미움을 받아 끝내 죽임을 당한 일이나 왕자의 난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세 치 혀끝 실수로 죽음에 이른 태종의 처남 민무구 형제 이야기는 설화(舌禍)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한 번 입 밖에 나온 말은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도 따라잡기가 어렵다 했고, 혀 밑에는 도끼가 들었다 여겨, 늘 조심에 또 조심을 해왔다. 공자가 말을 어눌하게 하라 하고, 또 말조심에 관한 시경 구절을 하루에 세 번씩 읽은 남용(南容)에게 질녀를 시집보낸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양의 고전 ‘탈무드’에도 말이 당신 안에 있을 때는 노예이지만 입 밖으로 나오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고 한 것은 모두 말조심을 강조한 것들이다.

이렇게 조심해야 할 ‘말’, 그런데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이를 매우 가볍게 생각하는 이들이 꽤나 많다.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없는 말을 지어내어 타인을 모함하는 것은 예사요, 걸핏하면 이 사람 저 사람 밥 사준다고 불러내서는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들을 험담하고, 파당을 짓고 뒷담화를 하다가 들키면 그나마 사과하는 사람도 있고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발뺌하는 사례 또한 부지기수다. 스스로의 인격을 갉아먹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8월이다. 코로나로 시작한 한 해가 이제 제법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곧 휴가철이니 지인들과 만나 ‘썰’을 푸는 게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좋을 법하다. 다만 ‘썰’을 풀기 전, 작자 미상의 우리 옛 시조 하나 떠올려 보면 어떨까? “말하기 좋다하고/남의 말 말을 것이/남의 말 내 하면/남도 내 말 하는 것이/말로써 말 많으니/말 말을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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