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삶의 여정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바른길도 있고 그릇된 길도 있다. 대개 그릇된 길은 개인 욕심이나 집단의 그릇된 목표로 인해 본의 아니게 택함으로서 패가망신하거나 목숨까지 던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조선후기 금석학파를 창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실학자인 김정희의 완당집(阮堂集)에 ‘천 리 길을 가는 말(適千里說)’에, 갈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아는 사람이 바른길과 잘못된 길을 자세히 알려주면서, 잘못된 길은 가시밭길이고, 바른길은 반드시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라고 성심을 다해 알려줘도 의심과 욕심이 많은 자는 이를 믿지를 못해 딴 사람에게 묻고,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고 한다.

결국 ‘남들이 모두 옳다하여 내가 감히 따를 수 없고, 남들이 모두 그르다 해서 그것이 과연 그른 줄 모르겠으니 내 직접 경험해 보리라,’ 라는 생각으로 가다보면 결국 함정에 빠져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거나, 설령 끝에 가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되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이미 시간과 심력을 다 소모해 버린 터라 돌이킬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남들이 분명하게 일러준 바른길을 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여기서 완당이 말하는 천 리 길은 단순히 먼 노정만을 뜻하지는 않기에 우리 삶의 긴 여정에 비추어 보면, 인생의 여정에도 수많은 갈림길이 나타나기에 그때마다 어느 길로 갈지 신중히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일단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여간해서는 돌이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당은 이러한 갈림길을 만나서 헤매지 않는 해답을 이미 행간에 암시하고 있다. 모르는 길은 마음대로 가지 말고 남들이 일러 준 것을 믿고 그 길로 가라는 것이다.

완당은 선현들은 진리와 지혜를 고전을 통해서 가보지도, 겪어보지도 못 해 미로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욕심이나 위선을 앞세운 삶의 결과는 반드시 망양지탄(亡羊之歎·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서 길을 잃음)으로 돌아온다는 교훈도 함께 전달하고 있다.

조선 인조 때의 학자인 홍만종의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 ‘적반하장(賊反荷杖)’에 대한 풀이가 나온다. 이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로 풀이된다. 오늘날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빌거나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을 내면서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기가 차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

공(公)과 사(私), 정(正)과 사(邪)는 함께 할 수 없다고 검찰총장을 향해 법무장관이 내뱉은 말이다. 명언이다. 허나 여기서 누가 공과 정이고 누가 사란 말인가? 장관 입장에서 보면 본인이 공과 정이고, 검찰총장이 사라고 풀이되는 대목이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 반대로 풀이됨을 아는가! 추 법무장관의 임무는 임명부터 조국 전 장관 비리와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 같은 패거리의 각종 권력형 비리 등을 수사 중인 검찰지휘부를 장관직을 이용해 와해시키고, 임무에 충실한 윤 총장을 찍어냄으로서 검찰개혁이라는 포장으로 정치검찰화 시키려는 의도를 국민들이 읽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