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환

광화문 지하도 계단에 거지가 있었다

하루도 자리를 비운 적 없는

안면 주름살이 복잡한 나이 먹은

거지였다

삼복더위 여름 한 철 어느 날엔가

사흘씩이나 거지가 눈에 띄지 않았다

자리를 비웠어도 빈자리가 아닌 듯

그 사흘 동안 양평인가 덕평 쪽으로

식구들과 함께 피서 다녀왔다는

앞에 빈 소쿠리를 만지작거리며

꼬깃꼬깃한 삶을, 손금을 손바닥에

펴보이며

씨익 웃고 있던 검게 탄 맨얼굴

내 마음에 빗금을 긋던 그 망설이던

길목에

시인이 제시하는 두 개의 풍경은 다소 해학적이기도 하지만 그 속엔 시인 현실인식의 틀이 비쳐 있다. 광화문 계단에 늘 보이던 늙은 거지가 삼복더위에 보이지 않아 내심 걱정하던 시인의 눈앞에 며칠 뒤 나타난 거지는 가족들과 피서를 다녀왔다고, 그래서 얼굴이 까맣게 그을렀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늘 동정의 대상이었으나 그런 인식의 틀은 틀린 것이라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는 이웃이고 평행선상에 놓인 실존적,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