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당송 팔대가 가운데 한 사람인 동파(東坡) 소식은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삼소(三蘇)라 불렸다 한다. 그의 ‘적벽부’에 나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실상을 보고 나니 감회가 적이 새롭다. 본디 ‘우화등선’이라 함은 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방으로 변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일정한 상태의 근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며칠 전 오후의 일이다. 마당에 심은 루드베키아의 크고 노란 꽃잎 하나가 아래로 축 처져 있는 것이다. 다른 꽃잎들은 하늘로 당당히 얼굴 쳐들고 있는데, 쟤는 무슨 일이야, 하고 혼잣말한다. 가까이 가보니 매미 유충이 여섯 개의 발가락으로 꽃잎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녀석의 두 눈이 마치 나를 쳐다보는 듯하다. 오호라,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갈 심산이로구나.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살핀다.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그렇군, 저 아래 칠흑 같은 땅속에서 대여섯 해를 살았다는 얘기지. 미국에 사는 어떤 매미 유충은 지하세계에서 15년 넘게 견디는 일도 있다고 한다. 보름 남짓 밝은 세상 구경하려고 장구한 세월 굼벵이로 살아야 하는 매미의 가혹한 운명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짧지 않은 세월 굼벵이는 땅속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일까?! 몸집을 불리고, 밖으로 나갈 날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견디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해 질 무렵까지도 루드베키아 꽃잎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튿날 아침 동트기가 무섭게 마당으로 나가본다. 어제와 다르게 꽃잎이 빳빳하게 고개 쳐들고 있다. 옆 줄기에 딱딱한 껍데기가 남아있다. 등줄기 한복판에 세로로 찢어진 자국을 남긴 황갈색 껍데기만 동그마니 남았다. 그래, 언제 우화한 걸까?!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어찌 됐거나 녀석이 성공적으로 날개를 달고 창천으로 날아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가 생각이 오래전 옛일로 미친다. 백양로를 따라 늘어선 사철나무에서 기괴한 물상(物像)과 만난다. 등껍질을 뚫고 나오려던 굼벵이가 때마침 쏟아진 소나기에 날개를 펴지 못한 채 죽어 있었다. 굼벵이의 몸은 절반가량 껍데기 밖으로 나온 채 화석처럼 굳어 버렸다. 과거를 벗어나 미래로 질주하다가 현재의 족쇄에 걸려 처참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해괴한 몰골의 그것, 굼벵이도 아니고 우화를 마친 매미도 아닌 사체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연구실로 데려왔다. 강의자료로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이다. 학생들이 어렵다는 ‘그로테스크’ 개념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좋은 재료는 찾기 어렵다. 과거와 작별하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 온 힘을 다했으되, 시운을 만나지 못해 참혹하게 죽어버린 생명체. 그런 까닭에 우리는 과거가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대못을 소리 나게 내려쳐야 한다.

누군가는 과거를 묻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현재는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과거에서 미래가 나온다는 자명한 사실을 우화등선에서 확인하는 아침이다. 현재가 붕괴한다 해도 미래의 토대는 현재와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