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붓다
인간적인 붓다
  • 등록일 2020.05.27 20:14
  • 게재일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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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 스님 포항 운제산 자장암 감원 중앙승가대 강사

유럽의 불교학자들은 역사적 붓다를 인간적 존재로 보는 경향이 농후했다.

붓다가 되기 전 고타마는 그의 재세 시대에서 무한하면서 초월적인 존재로 체현된다.

신화와 우상화가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참답고 실다운 인간미 넘치는 분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완벽한 분이었고 절대적 경지에 이른 성인을 인간적 관점의 붓다로 조명하려는 까닭은 신과 인간이 종속적 관계인 주종관계임을 철저하게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의 노예인 인간이 해탈하여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상세하게 일러주신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눈깜짝할 찰나의 시간이면, 검색이 가능하며 인공지능을 삽입한 로봇에게 인간능력의 수백배를 부여하고 그 역할을 주어 기능하게 하는 것을 보면, 눈부신 과학문명 사회에서 이제는 인간이 거의 신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였다.

그러나 이렇게 최첨단 문명 속에서 살던 인류가 어느날 창궐한 전염병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역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돌파하고자 죽음 앞에서는 늘 두렵고, 내세를 기약할 수밖에….

깨달음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는 삶을 곧 완성된 인간인 붓다라고 한다.

미완성의 인간이 중생이라면 자기 절제와 수행을 바탕으로 완성된 붓다를 이루는 것이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초월적이고 절대적 존재로 붓다를 부각했고 이후 대승불교권에서는 붓다를 더욱 신격화 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붓다재세 시 그 이후에도 무한하고 초월적인 것을 선례가 없는 방법으로 체현했고 붓다 설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언제나 ‘진실’이었다.

무조건적인 신격화 보다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붓다의 삶에서 인류가 신과 인간의 종속적인 관계에서 해방되고 인류사에서 가장 휴머니즘에 입각한 종교를 창시한 것이 불교이다.

중생이 살고 있는 이땅은 오염된 ‘예토’이다.

중생의 업보로 정결치 못한 예토에서 정결한 정토를 지향하는 불자는 늘 나무 아미타불을 염송하기도 하는데, 이는 ‘정토’라 하여 아미타불의 주불인 서방정토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방정토를 포함해 타방(他方)에 존재하는 모든 불국토를 포괄하고 있기에 죽어서 가는 극락이 결코 아니다.

현세의 예토를 정토로 바꾸고 금생의 지극한 환희와 기쁨의 세계가 극락이며 불교도 믿음을 출발점으로 하지만 이교도에 비하면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할 뿐.

절대적인 신과 주종관계이고 죽어야만 가는 천국의 세계가 아닌, 현세의 극락을 지향하여 금생의 예토를 현세에 정토화 하는 것이 불자의 당면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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