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 <br>죽전성당 주임신부
김종기
죽전성당 주임신부

몇 년전 이맘 때 신자 몇 분과 동해 방면을 다녀온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가는 길에 예쁘게 피어난 봄꽃들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날은 공휴일이라 나들이 가는 차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던 중에 한 분이 “여러분, 보니까 어때요?” 하고 일행들에게 물었습니다. 동시에 두 분이 대답했습니다. 한 분은 “꽃들이 참 곱네요!” 다른 한 분은 “차가 굉장히 많네요!”

우리나라 속담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평소에 자기가 마음을 두고 있는 것과 관련된 것만 본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동일한 사물이지만 평소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짐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똑같은 풍광을 보고도 어떤 이는 ‘아름다운 꽃’을 생각하고, 어떤 이는 ‘복잡한 도로교통’을 생각하기에 말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르코복음에서 바르티메오는 비록 소경이지만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앞을 못 보는 처지에서 어떻게든 ‘볼 수만 있다면!’하는 바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었을 겁니다. 그런데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신다는 “예수”라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무조건 자비를 빌었습니다. 그분만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눈을 뜨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세상을 산다고 믿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그 돈이 없어서 남의 돈을 훔치고, 뇌물을 받고 남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돈이 인간다운 삶의 척도라 생각하는 사람의 눈에는 돈만 보입니다. 명예가 인간다운 삶의 척도라 생각하는 사람은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다 합니다. 하지만 인간다운 삶의 기준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기준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진정 무엇을 바라고 살아갑니까? 마르코복음에서 바르티메오는 자신의 믿음으로 소경이었지만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육신의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진정 하느님께서만이 우리를 인간답게 살도록 해 주시는 분이라 믿는다면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올바로 보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분을 보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