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

시조시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까지 휩쓸어 각종 매스컴이 모처럼 잔치분위기였다. 감독과 출연자들의 영광을 넘어 세계만방에 국위를 선양한 쾌거라 할 만하다. 작년 여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아 일약 유명해진 영화라 궁금하던 차에 때마침 무료로 상영하는 곳이 있어 관람을 했다. 같이 영화를 본 지인은 기대와는 달라 좀 실망스러운 표정이었고, 나 역시 벅찬 감동보다는 씁쓸하고 착잡한 기분이었다. 영화가 타작이어서 실망했다는 게 아니라, 주제랄까 스토리에 가슴 뭉클한 감동이 없었다는 얘기다. 언젠가 텔레비전으로 ‘울지 마 톤즈’란 기록영화를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런 감동과는 거리가 먼 영화였다.

나는 영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작품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를 못한다.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극찬을 한다니 그런가보다 할 따름이다. 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영화의 작품성이란 인간승리나 인정미담이 주는 감동으로만 따질 수는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내가 느낀 착잡한 감정 역시도 그 영화의 뛰어난 작품성이 유발한 효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한 편의 영화가 전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을진대 거기에는 분명 그만한 까닭이 있을 터이다.

기생충이란 회충이나 촌충처럼 다른 동물에 기생하는 벌레를 말한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위의 영화에선 전원이 백수로 반 지하 단칸방에 살다가 사기를 쳐서 부잣집에 들어가 살게 된 기택의 가족들이 기생충인 셈이다. 기택의 가족은 경제적으로만 전략한 것이 아니라 인격까지도 파탄지경에 이른 사람들이라는 점이 보는 사람을 씁쓸하게 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런 인격을 가진 자들이 비단 이 사람들뿐이겠는가를 말하려 한 게 아닐까. 사흘을 굶고 남의 집 담을 안 넘을 놈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이 드러내는 본성에 양심 따위는 없다는 것인가?

사실 이 영화에는 바람직한 인격이나 성품을 가진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의 양극화와 계층이동의 단절이 가져오는 폐단이 일차적인 사회문제이자 원인이라 할지라도, 그렇듯 양심이나 도덕성이 마비된 사람들이 우리사회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여간 씁쓸하고 서글픈 일이 아니다. 근자에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한 소위 ‘조국사태’가 말해주듯이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학벌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들조차도 지성이나 정의감은 고사하고 부정과 비리에 대한 일말의 반성이나 부끄러움도 없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제시하는 스토리의 개연성을 뒷받침해주는 셈이다. 우리가 어쩌다가 양심이나 도덕성, 정의로움 따위를 진부하고 공허한 개념이나 가치로 치부하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부도덕과 몰염치가 판을 친다 한들 그것을 정당화 하고 일반화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기분이 착잡했던 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