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모던의 이분법, 그 긴장을 끝끝내 감내하다
전통과 모던의 이분법, 그 긴장을 끝끝내 감내하다
  • 등록일 2020.02.17 19:34
  • 게재일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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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의 작가 백신애 <상>

소설가 백신애. 도발적인 모습의 일본 체류 시절과 전통적 모습이 대조적이다.

백신애는 영천의 작가이다. 문학평론가 서영인은 “백신애는 영천에서 태어나 영천에 묻혔고, 그녀의 문학 역시 영천에서 태어나고 발견되었으며 더 깊이, 새롭게 읽혔으니 백신애는 과연 영천의 작가이다.”(‘백신애 문학의 안과 밖’, 전망, 2018, 10면)라고 명쾌하게 규정하였다.

이러한 백신애는 두 개의 ‘최초’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경북 최초의 여성 교사이자 최초의 여성 신춘문예 당선자인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범인이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반적인 선구자의 삶은 그녀의 것일 수 없었다. 백신애는 이광수와 같은 고아가 아니라 영천·대구 일대에서 소문난 갑부인 백내유의 외동딸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은 전통적인 가치와 인습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역이었다. 백신애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전통 사회의 각별한 보호와 관심 속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을 반영하여 그녀는 신식교육과 더불어 오랜 시간 한문학자인 이모부에게 한문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남녀차별이 극심한 사회의 여성이었기에, 그녀가 겪어야 할 심정 갈등은 더욱 컸을 것이다.

 

…전통적인 부덕(婦德)에 안주하기에 백신애는 너무나 큰 개성이었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은 말할 것도 없고, 10대에 단신으로 상경하여 사회주의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시베리아·일본·중국을 드나들 정도로 백신애는 강하고 모던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

백신애가 처한 환경에서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조차 축복이 될 수 없었다. 박화성, 장덕조, 모윤숙, 최정희, 노천명, 이선희와 자리를 함께 한 ‘여류작가 좌담회’에서 백신애는 거의 침묵을 지키다가 “글을 쓰면 당장에 축출을 하려는 아버지 아래엿고 놀면서도 여가 업는 터이라, 한 가지 무엇이나 쓰려고 하면 밤중 남들이 다- 잠든 후 이불 속에서 전등불을 감초아 원고지만 빛어 놋코 가만히 씁니다.”(‘여성’, 1936.2)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부덕(婦德)에 안주하기 백신애는 너무나 큰 개성이었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은 말할 것도 없고, 10대에 단신으로 상경하여 사회주의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시베리아·일본·중국을 드나들 정도로 백신애는 강하고 모던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개인의 재능과 그것을 거부하는 사회적 환경이라는 굴레는 백신애를 문제적 인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문제적 성격은 그녀가 남긴 두 개의 대조적인 독사진에서도 확인된다. 20세 무렵에 찍은 사진은 전통적인 한복을 입고 곱게 머리를 빗어 넘긴 모습인데 반해 일본 체류 시절 찍은 사진은 화려한 양장을 차려 입고 도발적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가족/사회, 전통/근대, 윤리/욕망, 공동체/개인, 중앙/지역, 남성/여성이라는 수많은 이분법 속에서 백신애는 자신의 고유한 삶과 문학을 힘겹게 펼쳐 나간다.

앞에서 열거한 여러 이분법에서 비롯된 갈등은 백신애 문학의 시작과 마지막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나의 어머니’(‘조선일보’, 1929.1.1.-6)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된 ‘混冥에서’(‘조광’, 1939.5)는 이러한 갈등을 거의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두 작품은 22편(콩트·소년 소설 4편 포함)에 이르는 백신애의 소설 중에서 자전적인 성격을 갖는 예외적인 작품들이다.

‘나의 어머니’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신식 여성인 ‘나’와 전통적인 가치관에 충실한 어머니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딸은 교원으로 근무하다 여자청년회를 조직하였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하고, 지금은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거나 책과 씨름을 하며 지낸다. 어머니는 이런 딸을 “언제든지 놀고 있는 것”으로만 여기며 늘 걱정한다.


소설은 청년회의 문예부에 관여하는 ‘내’가 연극 준비를 하다가 한밤중에 귀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머니는 잠도 자지 않고 밤늦게까지 딸을 기다린다. 연극연습을 하다가 왔다는 딸의 말에, 어머니는 “아무리 상것의 소생이라도 계집애가 그런 데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니? 모이는 자식들이란 모두 제 아비 제 어미는 모른다 하고 사회니 지랄이니 하고 쫓아다니는 천하 상놈들만 벅적이는데”라며 나무란다. 이 말을 통해 어머니는 사회운동을 이해하지 못 하며, 특히나 “계집애”가 그런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면서부터 완고한 옛 도덕과 인습에 폭 쌓인 어머니”인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확대해 볼 수 있다. 트레머리(신식 여성 헤어스타일)를 한 여인이 사오인에 불과한 이 “완고한 시골”에서, 여자들은 남자들과 연극하는 것을 죽기보다 더 부끄러워하거나 부모의 야단이 두려워서 연극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어머니’는 자전적인 작품으로 이 당시 백신애의 신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백신애는 등단하기 이전에도 영천공립보통학교와 경산자인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조선여성동우회, 경성여자청년동맹, 영천청년동맹, 신간회 영천지회, 근우회 영천지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녀는 재능이 뛰어난 여성이었으며, 사회 변혁에 대한 관심이 큰 여성이기도 하였다. 작품 속의 ‘내’가 여자청년회를 조직하였다는 이유로 교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백신애도 서울에 가 사회주의 여성단체에서 활동한 사실이 탄로나 학교에서 권고사직을 당한다. 또한 이 작품에 언급된 오빠의 모습도 실제에 부합한다. 어머니와 ‘나’의 가장 큰 근심은 XX사건으로 ‘나’의 오빠가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백신애의 오빠인 백기호는 조선공산당 당원으로 1926년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여간 옥살이를 하였다.

 

백신애 문학 연구서.
백신애 문학 연구서.

보통의 혁명적인 서사라면 ‘나’는 당연히 이 고루한 어머니와 결별하고 역사의 새벽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경멸과 반감만큼이나 강렬하게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느낀다. 어머니가 “자신의 편함과 혈육(血肉)을 사랑하는 것 밖에 아모것도 모르고 도덕과 인습에 사모친” 인간이라 생각하면서도, 어머니가 오빠와 자기로 인해 받는 고통을 생각하며 가슴 쓰린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반감과 애정은 작품의 마지막에 압축되어 나타난다. ‘나’는 자신처럼 “불행과 저주에 헤매는 가난한 신세”인 장래의 남편이 될 연인이 있으면서도, 어머니가 결혼하기 원하는 김(金)가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에 “죄송함”을 느낀다. 그러나 바로 자신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김가에게도 이 몸을 바치지 않을 것”이고, 내일 밤에도 연극연습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가엽슨 나의 어머니.”라는 탄식으로 끝낸다. ‘나’는 가족과 사회 혹은 개인의 욕망과 전통의 윤리 중에 그 어느 곳에도 완전히 자신을 투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설가 백신애의 고향인 영천의 옛 모습.
소설가 백신애의 고향인 영천의 옛 모습.

이러한 갈등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심각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백신애가 췌장암으로 경성제대병원에서 사망(1939년 6월 23일)하기 한 달 전에 발표된 ‘혼명에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나’는 “가족들의 정성을, 아니 그보다 어느 때든지 그들을 배반하고야 말 인간임을 확실히 자인하면서도, 그들의 사랑을 배반할 수 없으며, 나에게 이 고통을 주는 가족을 미워하여야 될 것이로대 그 반대로 지극히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과 태도를 보여준다. 어머니로 대표되는 가족에 대한 이러한 사랑과 반감은 ‘나’의 결혼과 이혼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나’에게 결혼은 “내 주위의 억센 힘들이 재주끝 던저 올린 돌맹이!”처럼 억지스런 일에 해당하고, 이혼은 하늘로 던져진 돌맹이가 도로 땅 위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틀림없는 자연 법칙”에 해당한다. 이혼 이후에도 가족은 “이혼한 여자란 불명예를 회복시키”고자 근신할 것을 명하지만, 일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산(生)다는 뜻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눈물”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 ‘나’는 S를 통하여 “옛날의 용기와 정열”을 다시 가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다시 만나기로 한 S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그러한 ‘나’의 의지와 신념의 지속 가능성이 다시 혼탁하고 어두워지며(混冥) 작품은 끝난다.

시대를 뛰어넘는 의지와 재능을 지녔기에 늘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갈등하며 살아야 했던 백신애의 삶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자신을 옥죄던 수많은 이분법에 갇혀서도, 그녀는 결코 손쉬운 타협이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끝끝내 그 두 가지 세계의 긴장과 갈등을 온전히 감내하고자 했던 그 정직함으로 인해 한국문학의 빛깔은 한층 다양해졌다.

1906년 경북 영천읍 창구동에서 태어났다. 영천 공립보통학교와 대구사범학교 강습과에서 공부했다. 경산 자인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상경해서는 조선여성동우회와 여자청년동맹 등에서 활동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고,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문학과 연극에 몰두한다. ‘복선이’ ‘채색교(彩色橋)’ ‘악부자(顎富者)’ ‘빈곤’ 등의 작품을 썼다.  /문학평론가 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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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2020-02-19 22:15:08
저 두 사진처럼 내면에서도 두 가치관이 함께 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