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진<br>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박화진
전 경북지방경찰청장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설을 준비하는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방앗간 가레떡, 장터 뻥튀기, 설빔 같은 것들이 흑백 영사기가 돌리는 빛바랜 모습이 된 것 같습니다. 완성된 제수용품을 마트에서 준비하는가 하면 심지어 차례를 대행하는 업체까지 생겼습니다. 조상님께서 제대로 적응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설 명절은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즐겁고 행복해야할 명절에 형제간 말다툼, 부모와의 갈등으로 예기치 않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평소 왕래가 뜸한 핵가족 시대에 익숙한 탓인지 모처럼 대가족 행사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혹시 가족, 친지간 잘못된 배려로 생긴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 장면1(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월남전에서 돌아온 일가친척 아저씨, “이 놈 많이 컷구나!”라며 당시 5살인 나의 여린 갈비뼈가 짓눌릴 정도로 잡고서 번쩍 들어올렸다. 아저씨의 사랑표현에도 불구하고 빨리 내려놓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갈비뼈 통증 트라우마가 생겼다. 조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이었을 것이다(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서 얘기를 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 장면2(기분 좋아 회식하자는 서장님)

아침 회의시간, 서장님께서 상부로부터 칭찬 전화를 받고 과장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회의 분위기는 급상승하고 서로 수고했다는 덕담을 나눴다. 서장님께서 자축하는 의미라며 그날 저녁 회식제안을 불쑥 던졌다. 회의실 안은 갑자기 정적이 감돌았다. 서장님은 과장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회식을 제안했다(과장들 중 일부가 동창모임, 결혼기념일 등 개인 일정이 있었다).

# 장면3(오! 아버지 같은 원사님)

어느 신병훈련소, 훈련병 A는 겨울날 찬물로 식기를 세척하고 있었다. 옆을 지나가던 하사는 A에게 “식당에 가면 더운 물이 있으니 가져와서 씻어”라고 했다. A는 감읍하고 식당으로 달려가 더운물을 찾았다. 취사반장으로부터 “쫄병이 군기가…”라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다시 찬물로 식기를 씻던 A를 본 원사님, “손 씻으려는데 식당에 가서 더운 물 좀 가져와” 이후 일사천리로 물공급이 진행돼 원사님 앞에 대령된 더운물 한 바케스, “응 이걸로 식기 씻어”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면 누구나 약자를 향해 마음을 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잘못된 배려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남에게 우월적 지위에서 내려 보며 베푸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수평적이거나 오히려 위를 보며 이뤄져야 합니다. 남에게 배려함은 상대의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위의 장면 #1, #2처럼 배려받지 않은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배려는 각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명절에 대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를 위한 배려는 세심하게 해야겠습니다. ‘가족이니까’ 쉽게 생각하며 내 위주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잘못된 배려가 가족관계를 배리게할 수 도 있지 않을까요?

“설겆이 다했냐? 수고했다! 가족화목을 위해 즐겁게 윳놀이 한판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