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 대

수염을 한동안 깎지 않았더니 마음 밭이 더욱 황폐해져 간다

좀 더 황폐해져도 되리라, 코끼리들이 지나간 내 마음의 강변 그 구석 어디엔가 물살에 씻긴 깨끗한 돌멩이 하나 있으리라 수염을 한동안 더 깎지 말아야겠다

턱수염을 손끝으로 만지면

손끝에서 돋아나는 베트남의 대나무 숲

호찌민처럼 내 마음에 공화국 하나 세워야 하리라

황폐한 들판에 세워질 턱수염 공화국

폐 공화국으로 들어간 담배연기의 밀사들이

언젠가 콧수염 공화국으로 내면의 밀서를 갖고 돌아오리

수염을 깎는 것은 외부의 시선에 대한 단정함을 제공하고 자신의 용모와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역설적으로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왜일까. 시인의 상상력은 베트남의 영웅 호찌민처럼 자기 마음에 공화국 하나를 세우는 일이라고 한다. 기발한 상상력을 펴보이면서 문명의 제국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의 표현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