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대해초등학교 야구부 정기문 감독

추운 날씨에도 훈련에 땀 흘리는 정기문 감독과 야구부 학생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추운 날씨에도 훈련에 땀 흘리는 정기문 감독과 야구부 학생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4년간 8천만 달러(약 928억 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232억 원. 7년간 1억3천만 달러(약 1천508억 원). 연봉으로 따지면 215억 원.

어지간한 중소기업 한 해 순수익을 넘어서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야구선수 류현진과 추신수가 벌어들이는 돈. 사실 처음부터 돈만 보고 야구를 시작하는 선수는 없다. ‘내 아들을 억만장자로 만들어야지’라는 결심으로 자식에게 운동을 시키는 부모 역시 없거나 극히 드물다. 두 선수의 오늘은 어릴 때부터 흘린 고통스런 피땀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스무 살 때 코치로 지도자 생활 시작해
대구 초등학교서 10년 가까이 감독생활
“지역 유일 초등야구부 맡아 사명감 커
33년 전통 명맥 탄탄히 이어나갈 터
포항은 사회인 야구가 활성화된 곳
지자체·기업 등 든든한 지원 필요해”

대체 어떤 매력이 학생들을 야구로 끌어들이는 걸까? 궁금했다. 2020년 현재 포항시엔 초등학교 야구팀이 하나밖에 없다. 남구 양학천로에 자리한 대해초등학교(교장 박근호)가 바로 그곳. 고교 때까지 육상선수로 활약한 박 교장의 적극적 관심과 후원, 지난해 말 부임한 야구부 정기문 감독의 가르침 아래 ‘또 다른 류현진과 추신수’로 커가고 있는 어린 학생들. 야구라는 스포츠에 어떤 매혹의 포인트가 숨겨진 것인지 알고 싶었다.

바람이 찼던 지난주 목요일(9일) 대해초등학교를 찾았다. 야구부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훈련에 열심이었다. 박근호 교장의 안내로 정기문 감독을 만나 야구부 운영의 보람과 어려움, 야구인으로서의 꿈과 바람, 지역사회에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루 들었다. 아래 그날 오간 대화를 가감 없이 옮긴다.

-나이와 출신지, 경력 등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1983년생이다. 초·중·고교 모두 대구에서 졸업했다. 스무 살 때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대구 내당초등학교에서 2~3년 있다가 수창초등학교로 옮겼다. 거기서 10년 가까이 감독을 하다가 야구부가 학교 사정으로 해체돼 포항으로 오게 됐다. 돌아보니 청춘의 대부분을 학생들과 운동하며 보냈다.

-대해초등학교를 새로운 출발지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

△수창초등학교 야구부가 해체되면서 대구상고 코치를 제의받았다. 그런데 오래 전 잠시 코치를 한 대해초등학교에 대한 애정이 컸다. 야구계 선배의 “힘든 상황이지만 네가 와서 좀 도와 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여러 문제로 머리가 아파 쉬려고 했으나, 내가 필요한 곳이 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대구상고 출신이다. 모교의 코치직 제의를 거절하고 포항으로 오게 된 미안함도 있다. 그러니 포항에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고자 한다. 게다가 대해초등학교 야구부는 전통 있는 좋은 팀이기도 하고.

-포항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만족한다. 하지만 선수를 구해 팀을 구성하는 건 너무 어렵다. 발로 뛰고, 선후배와 학부모님들의 도움으로 하나둘씩 학생들을 모으고 있다. 교장 선생님이 야구부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3년간 경상북도와 포항교육청을 설득해 올해는 적지 않은 예산을 확보했고, 운동장에 인조 잔디를 깔 수 있게 됐다.

-포항 전체를 통틀어 초등학교 야구부가 1개라고 들었다. 이처럼 줄어들게 된 이유는 뭔가.

△포항에는 65개 초등학교가 있다. 그런데 야구부가 있는 학교는 대해초교가 유일하다. 인구가 줄어든 것 등의 문제도 있지만, 학교가 운동부 운영을 부담스러워하는 경향도 있다. 운동부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신문이나 TV에 비판적으로 보도가 되고, 학교 운영자로선 이런 게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으니 이해는 된다. 하지만, 단언컨대 우리 학교는 그런 문제가 없다.(웃음)

-포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야구부 숫자는.

△중학교는 포항중학교와 포항제철중학교 2군데다. 고등학교는 포항제철고 야구부가 있다. 경북 전체를 보자면 초등학교 야구부가 우리 학교를 포함해 3곳이다. 경주와 구미에 각각 한 팀씩 운영되고 있다. 예전엔 문경에도 초등학교 야구부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다른 지역에서도 학교 야구팀을 창단하려고 애는 쓰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학생들이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무언가.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서 송구스럽지만,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재미있는 동시에 힘들 때도 있고, 웃는 시간이 있다면 울어야 할 순간도 적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야구에 인생이 담겼다. 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면서, 나도 그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있다. 내 아들에게도 야구를 권하고 싶다. 단체 생활과 꾸준한 체력 훈련을 통해 협동심과 희생정신을 기를 수 있고, 팀을 위한 자기희생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으니까. 모든 운동에 있어 팀이란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다. 선수들 개개인이 한 덩어리로 뭉쳐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동료애를 몸으로 느낄 수 있기에 야구는 작은 세계다. 요즘 아이들이 이기적이라고 하는데, 야구는 그런 이기심을 넘어설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올해 대해초교 선수 9명이 졸업한다. 선수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지인들, 도와주는 부모님들, 야구계 선후배들을 접촉해 어렵게 부원들을 모으고 있다. 도움 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야구에 관심 있는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연락하고, 그분들을 만나고, 설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생활환경이 바뀌고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기에 전학을 두려워하는데, 막상 우리 학교로 옮겨오면 씩씩하고 즐겁게 생활한다. 나를 포함한 선생님들 모두가 권위의식을 버리고 그런 따뜻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당신도 한때는 지도자가 아닌 학생이었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야구 스승’은 누구인가.

△대구상고 다닐 때 코치였던 이윤효 선생님이다. 키는 작지만 스케일이 크고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학생들을 혼내는 분이 아닌데 아직도 감독님 앞에 서면 떨린다. 존경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는 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부상으로 야구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절망했을 때 지도자의 길로 안내한 분이기도 하기에 잊을 수 없다. 이 감독님은 야구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성실과 긍정의 태도를 가르쳤다.

-‘아이에게 야구와 축구 등을 시키려면 많은 돈이 든다’는 선입견이 학부형들 사이에 있다.

△음…. 이런 질문을 드려 보고 싶다. 공부나 미술·음악을 시키기 위해 학원을 보내려면 한 달에 얼마나 들까. 듣기로 초등학생의 경우도 50만~60만 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이 아닌 지방 초등학교 야구부의 경우 그 정도로 보면 된다. 상급학교 진학을 하면 더 들겠지만, 어린 시절 아이의 꿈을 위해 투자하기에 아주 부담스런 비용은 아니지 않을까?

 

팀이란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다.
선수 개개인이 한 덩어리로 뭉쳐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야구는 이기심을 넘어설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 각종 언론에 학교 스포츠에 관한 비리가 적지 않게 보도됐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안타깝고 답답하다. 나를 포함한 학교 스포츠 지도자들이 자기가 처음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가르치고자 했을 때의 초심을 잊지 않는 게 그러한 비리를 없애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류현진이나 추신수 등은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모든 야구선수가 그렇지는 못하다. 그들은 전체 야구선수의 0.01%나 될까? 돈 외에 어떤 매력이 야구에 있는 건가.

△그라운드에 섰을 때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백수천 야구팬들의 환호성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과 고통스러웠던 훈련의 시간은 그때 모두 보상된다. 그런 뿌듯한 감정은 돈으로 계산될 수 없다. 사실 대부분의 야구선수들은 돈보다는 팬들의 작은 선물, 따스한 격려에 더 큰 보람과 명예로움을 느낀다.

-올해 당신의 계획은 뭔가.

△33년의 전통을 가진 대해초등학교 야구부의 명맥을 탄탄하게 이어가고 싶다. 지난해 말 감독으로 이 학교에 왔다. 곧 울산과 김해 등지에서도 야구부 학생들이 전학을 올 것이다. 그들과 기존의 아이들을 잘 융화시켜가겠다. 그게 학교가 원하는 내 역할이기도 하고. 야구계 선후배들이 포항의 초등학교로 간다고 하니 걱정을 해줬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 내게는 작지만 버릴 수 없는 꿈이 있다. 아직 젊으니까 노력하면 이곳 포항 대해초등학교가 꿈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교장 선생님, 학부모님들과 함께 야구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기본기를 가르치는 동시에, 그들이 예의 바른 청소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학교 체육 활성화를 통해 아이들의 정신과 육체가 고르게 성장할 수 있으려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 관련 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뜻있는 기업들도 커가는 아이들의 미래와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을 후원한다는 차원에서 우호적인 시선으로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포항시는 사회인 야구가 활성화된 지역이다. 그분들이 포항에 하나 남은 초등학교 야구부에서 미래를 위해 땀 흘리는 어린 후배들에게 보다 많은 애정을 가져줬으면 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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