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울릉군수

지난달 31일 오후 11시 30분께 독도 인근 해상에서 홍게잡이를 하던 선박의 선원이 손가락이 절단돼 후송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중앙119구조 헬기가 출동, 독도에서 응급환자와 보호자를 태우고 이륙 직후 바다에 추락했다는 비보를 보고받았다. 직감적으로 매우 위급하고 위중한 상황으로 판단, 행정선과 독도평화호의 현지 출동을 지시했지만 선박 규모보다 항로상의 파도가 높고 야간이라 항해가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 대책을 고민했다.

어찌 보면 울릉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항으로 소극적인 시각으로 사태를 관망하거나, 기초적인 대응 단계에서 역할을 해도 되겠지만, 울릉군민에게 독도에서 추락한 ‘119 응급구조 소방헬기’ 또한 독도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 보면 내 가족에게 일어난 사고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부터 울릉군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가족대기실을 설치하는 한편 울릉군이 보유한 독도행정선 독도평화호 출동 등 울릉군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 오고 있다.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 주권 상징의 섬으로 일본의 영토침략에 맞서 울릉군민이 대대로 지키고 가꾸어 왔고, 온전하게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대한민국의 아픈 손가락이다.

이곳 독도에서 그동안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울릉군민의 생명을 구해온 한 가족 같은 119소방헬기가 추락했기에 독도를 관할하는 울릉군수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9년 한 해는 울릉일주도로의 완전개통, 울릉 신항 공사의 순조로운 추진과 울릉공항 건설이 확정되면서 군민 모두의 숙원이 점차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10월에는 지난해 취임 때 제1호로 공약 한 대형여객선 유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는 등 군민 행복과 미래를 향한 밝은 청사진이 제시된 한 해이다. 그러나 울릉군민에게는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는 한 가지 숙원이 있다.

울릉도에 제대로 된 병원이 하나 없어 생명이 위급한 환자는 머나먼 동해바다를 건너 내륙병원으로 응급이송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울릉도에서 응급상황은 비단 울릉군민에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울릉도는 연간 40여만명이 입도, 2박 3일을 머물면서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울릉도에 체재하고, 독도와 울릉도의 황금 어장을 중심으로 동해상에는 수많은 우리나라 어선들이 오징어, 대게, 홍게, 복어, 새우잡이 등 각종 어로작업을 하고 있다. 울릉도 독도 부근 공해상에는 중국어선 등 수천 척의 외국 어선도 조업 중이다. 환자가 발생하면 울릉도 병원으로 후송이 가장 가깝다. 또한 러시아, 중국, 북한 상선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통과해 태평양에 진출하는 길목이다.

동해바다에서 발생하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려면 가장 가까운 곳이 울릉도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울릉군 보건의료원에 외국인 환자의 방문도 심심찮다. 이런 요충지 울릉도에 입대를 대신해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만으로 구성된 울릉군 보건의료원이 전부다.

이런 이유로 울릉도에 제대로 된 병원이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이 또한 경제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당장 유치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병원이 어렵다면 빨리 환자를 후송할 수 있는 ‘구급헬기’(닥터헬기)가 울릉도에 상주하고 있었더라면 이번 사고가 있었을까?

평소 군민들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올 때가 있다. “군수님 헬기 좀 띄워 주세요! ○○가 아파서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기상이 악화돼 내륙에서 응급헬기 출동이 어렵거나 울릉도에 착륙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군민의 애타는 목소리이다.

이럴 때에는 군수라도 어찌할 방법이 없어 같이 애타는 심정이다. 올해에도 4명의 군민이 함정, 여객선 등으로 이송 중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1분 1초를 다투는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울릉도에 구급헬기가 상주해야 하겠다는 절실한 바람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나?’ 되물어본다. 여건을 갖추지 못하여 군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군수로서 막중한 책임감이 밀려온다.

지금까지도 독도에서 구조 활동을 펼치다 희생한 119구조대원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추락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실종된 분들이 하루빨리 수습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