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만든 조각품, 돌로미티에 빠지다
2019 경북산악연맹 트레킹記 ①

노란 금영화(캘리포니아 양귀비)와 멀리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올리게 한다. /경북산악연맹 제공

대한산악연맹 경북도연맹(회장 김유복·경북산악연맹)은 지난달 26일부터 9일간의 일정으로 세계 3대 트레킹코스 중 하나인 이탈리아 북부알프스지역 돌로미티 산군 일대를 트레킹했다.

경북산악연맹은 매년 연례적으로 해외 명산을 선정해 트레킹과 원정 등반을 하면서 세계적인 산군에 대한 정보를 얻고 연맹발전을 꾀하고 있다. 올해는 김유복 회장을 비롯, 13명의 회원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돌로미티 산군 트레킹을 안전하게 마쳤다. 김유복 회장의 돌로미티 산군 트레킹 인상기를 세차례로 나눠싣는다.
 

돌로미티는 백운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지각변동과 침식, 빙하작용 등으로 깎이고 조각되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풍광과 아름다움이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곳으로 스위스 태생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건축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가히 ‘신(神)이 만든 조각품’이라는 칭송을 듣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걸작품이다.

오랜 망설임 끝에 결정한 ‘2019 경북산악연맹 이탈리아 돌로미티(Dolomtes)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경북산악연맹에서 매년 실시하는 해외 명산 트레킹사업으로 2019년도 대상지를 세계 명품 트레킹코스인 이탈리아 동북부 알프스지역에 있는 돌로미티 산군(山群)을 택하게 되었다.

지난달 26일,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편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무려 11시간40분이 소요되는 장거리 비행에 13명 대원들이 무척 힘들었지만 새로운 미지(未知)의 세계를 향하는 눈망울들은 영롱하게 빛난다.

한국과 시차가 7시간이나 되어 아직도 한낮인 오후 2시 30분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에 당도했다.

그리 크지 않는 공항에서 짐을 찾아 버스에 오르니 유럽에 온 게 실감난다. 젊고 잘 생긴 ‘아이엘’이라는 이름의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가 멋져 보이는 것도 이국(異國)의 첫 모습 이었다.

첫날 목적지인 돌로미티 지역 작은 산간마을 ‘산타 크리스티나’까지 4시간여를 가야한다. 외곽지 곧은길 양편으로 포도나무 밭이 넓게 펼쳐지고 드문드문 지어진 그림 같은 집들이 전형적인 유럽 풍경을 아름답게 꾸민다.

차창 밖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버스 내에서 알리는 바깥 기온이 35도나 되는 한여름의 이탈리아가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가는 도중 휴게소가 별도로 없어 호텔과 레스토랑을 겸하는 곳에 주유소도 있고 쉴만한 장소도 있어 들렀다. 유럽에서의 화장실은 거의가 유료(有料)라고 알고 왔지만 여기는 무료다. 그런데 특이한 게 남자화장실에 소변기가 따로 없어 잠깐 난감한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바깥 날씨 탓에 진한 에스프레소커피에 시원한 생수를 타서 마신다.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곧장 달려 고속도로를 벗어나 산 쪽으로 접어드니 구불구불 굴곡진 도로가 연이어 지고 일행을 태운 버스는 운전하는 사람과 장단을 맞추며 매끄럽게 오른다.

차창너머로 돌로미티 암봉(岩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였고 하얀 눈으로 뒤덮힌 고산(高山)의 모습에 가슴이 설렌다. 돌로미티는 이탈리아 북동쪽 오스트리아 국경지역 산악지대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 영토에서 이탈리아로 병합된 ‘남(南)티롤 알프스지역’으로 ‘이탈리안 알프스’로 불리며 이탈리아 ‘트렌티토 알토 아디제’ 자치주로 분리된 곳이다.

18세기 이 산맥의 광물을 탐사했던 프랑스 광물학자 ‘데오다 그라터 돌로미외(Deodat Gratet de Dolomieu)’이름에서 유래 되었다는 정설(定說)과 백운암(돌로마이트 : Dolomite)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말도 있는 3천m 이상 고봉이 18개나 자리하고 무수한 직벽의 암봉과 빙하, 호수 등 총면적 5천500㎢의 거대한 기암절벽들이 있는 바위산군(山群)으로 전 세계 트레커들과 암벽등반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돌로미티는 백운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지각변동과 침식, 빙하작용 등으로 깎이고 조각되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풍광과 아름다움이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곳으로 스위스 태생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건축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가히 ‘신(神)이 만든 조각품’이라는 칭송을 듣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걸작품이다.

돌로미티는 이탈리아 언어 표현이고 ‘돌로미테’는 독일식 표현이라 이번 트레킹기(記)에는 ‘돌로미티’로 표기한다.

밖으로 보이는 풍광이 돌로미티에 빠져들고 있음을 알린다.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아찔한 암벽들이 우뚝우뚝 쏟아 난다. 멀리 보이는 만년설에 둘러싸인 고봉과 아래쪽 산허리에 무성한 녹색 침엽수림이 조화를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이미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의 파노라마가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어 감탄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환상의 기암절벽들이 그야말로 조각품처럼 서 있고 ‘아이엘’의 버스가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가쁘게 오르는 고갯마루를 지나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마을에는 그림 같은 예배당이 영락없이 동네 한복판에 우뚝 서 있고 목조건물들이 동화책속 그림처럼 여기저기 한낮에 졸고 있다. 창문마다 갖가지 꽃들이 가지런히 얼굴을 내밀고 불쑥 찾아온 이방인들을 반갑게 맞는다. 바람처럼 지나가면 또 다시 산길이 나오고 또 작은 산동네가 예배당을 중심으로 모여 앉아 우리를 마중하는듯하다. 동네 한 쪽에 공동묘지가 있고 비석 아래 꽃들이 놓여 있는 또 다른 풍경도 볼 수 있다.

돌로미티산군 파노라마를 보며 그림 같은 산동네의 풍경에 취해 목적지인 ‘산타 크리스티나(St Christina. 1428m)’까지 4시간을 어떻게 왔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오후 7시 30분이 되었는데도 대낮같이 훤하다.

돌로미티 트레킹 첫출발에 앞서 세체다산장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일행들.    /경북산악연맹 제공
돌로미티 트레킹 첫출발에 앞서 세체다산장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일행들. /경북산악연맹 제공

‘산타 크리스티나’는 돌로미티 산군중 ‘발 가르데나(Val Gardena)’지역에 위치한 꽤 큰 산마을이다. 우리 일행이 트레킹하는 돌로미티 하이라이트 코스(돌로미티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의 시작점으로 제법 건물도 많고 사람들 왕래도 많다. ‘산타 크리스티나’의 ‘4성급+S’의 레벨이 붙은 ‘호텔 티롤(Hotel Tyrol)’에 도착했다. 내부가 고풍스런 목조 내장제로 만들어져 첫인상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더욱 마음에 든다. 깨끗한 실내에서도 목재로 장식된 문이며 벽체, 침대 등 은은한 나무향이 감도는 아늑한 호텔방이 또 한 번 감동을 준다. 늦은 저녁을 위해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들어오기 전에 보아둔 ‘미쉐린(MICHELIN) 2019’라는 표지판 등급이 실감날 정도로 멋진 레스토랑 내부에 내심 놀랐지만 그 격에 맞는 요리들이 나온다. 이탈리아 요리가 세계적인 것은 알지만 처음대하는 요리들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른다. 한 가지 흠이라면 음식이 너무 짜다는데 있다.

필자로서는 짠 이탈리아 음식 때문에 엄청난 고행(苦行)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그때는 느끼지 못한 게 이번 트레킹에서의 가장 큰 실수(?)라 할 수 있었다.

내일부터 시작될 트레킹 일정과 거의 하루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고 이곳까지 온 피로 때문에 식사자리를 일찍 마치고 다들 방으로 돌려보냈다. 밤하늘의 별과 하얗게 높이 솟아 있는 바위 봉우리들이 감싸고 있는 산골마을 ‘산타 크리스티나’의 밤풍경을 감상하고 들어가 잠을 청하지만 제대로 잠이 오지 않는다. 함께한 내자(內子)도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여러 일들을 뒤돌아보며 뒤척이다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에서의 첫 밤으로 스르르 빠져들었다.

이튿날(6월 27일) 이른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났다.

돌로미티 트레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첫날, 상큼한 공기를 들이키며 산골마을의 새벽을 살폈다. 일출과 함께 황금색으로 변하는 암봉과 푸른 하늘, 싱싱한 침엽수림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조용한 주택가 창문마다 예쁜 꽃들이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아침이다.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야채, 달콤한 과일 등으로 아침을 먹고 오늘의 코스 ‘세체다(Seceda) 트레킹’을 위해 세체다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는 옆 동네 ‘오르티세이(Ortisei)’로 이동한다. 탑승장 가는 길에 보이는 리조트 수영장에서 이른 아침에도 여유롭게 수영을 하며 즐기는 모습에 유럽인들의 여유로운 삶이 엿보이고 동네 어귀에 만들어 놓은 예수그리스도상(像)이 이탈리아가 카톨릭 성지(聖地)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일행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무사 산행을 빌기도 한다.

넓은 초원에 노란색 야생화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넓은 초원에 노란색 야생화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두 번에 걸쳐 케이블카를 번갈아 타고 오르는 ‘세체다 후테’ 바로 앞이 고도 2천518m 세체다봉(峰)이다. ‘후테(Hutte)’는 ‘쉼터 또는 산장’이란 뜻으로 쓰인다. 케이블카에서 함께 오른 이탈리안 가족이 연신 웃으며 눈길을 준다. 일곱 살, 세 살 정도의 아들, 딸을 데리고 돌로미티 연봉을 오르는 부부가 퍽이나 행복해 보인다. 세체다 산장에서 보는 ‘오들(Odle)’ 산군의 엄청난 바위산 경관에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360도 돌아가며 펼쳐지는 파노라마 풍경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산장 아래 넓게 펼쳐진 초원에 피어난 야생화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우리를 어서 오라 손짓한다.

지천에 핀 노란 금영화(캘리포니아 양귀비), 민들레, 할미꽃 등 야생화 천국이 따로 없는 듯 어마어마한 바위 봉우리와 조화를 이루며 돌로미티 환상적 풍광의 세계로 빠지게 한다. 본격적인 트레킹에 앞서 전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각 대원들의 안전 산행을 비는 단체촬영으로 파이팅을 외친다.

드디어 돌로미티 트레킹 첫 걸음을 뗀다. 조금은 흥분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지천에 깔린 야생화 꽃길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다. 손에 잡힐 듯 세체다봉의 날카로운 정수리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아래쪽으로 난 트레일을 따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내리쬐는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나아가는 자유분방한 모습의 유럽 트레커들 속에 우리도 점점 빠져들고 있다.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