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개혁자라는 별명이 붙은 텔레마쿠스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이집트 외딴 사막에 은둔하며 하루 빵 한 조각과 약간의 물 그리고 노동과 기도로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로마로 가라. 그곳에 네 일터다. 로마가 너를 부른다.”

즉시 로마로 떠납니다. 주말이면 원형극장에서 포로로 잡혀온 검투사들이 서로 칼싸움을 합니다. 한 쪽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잔혹한 경기입니다. 텔레마쿠스가 도착했을 때 경기장에는 8만명 넘는 관중들이 칼 싸움에 흠뻑 빠져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며 광분하고 있었지요.

“이것을 막으라고 신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도다.” 텔레마쿠스는 경기장 안으로 뛰어내립니다. 경기가 중단됩니다. 텔레마쿠스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신께서 명령하신다. 이 싸움을 즉시 멈춰라!” 관중들은 이벤트인 줄 알고 폭소를 터뜨리며 함성을 더 크게 지릅니다. 심판은 텔레마쿠스에게 나가라고 지시하고 다시 경기를 재개합니다. 텔레마쿠스는 굽히지 않고 외칩니다. 오랜 실랑이 끝에 심판관은 검투사 한 명에게 텔레마쿠스를 처치하라는 손짓을 내리지요. 번뜩이는 칼날로 텔레마쿠스 배를 찌릅니다. 힘없이 나동그라진 텔레마쿠스는 분수처럼 피를 뿜으면서도 외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신께서 명령하신다. 이 싸움을 즉시 멈춰라!”

침묵이 흐릅니다. 숙연한 기운이 관중들의 광기 어린 함성을 순식간에 잠재웁니다. 누군가가 퇴장합니다.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입니다. 원로들이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갑니다. 뒤를 따라 관중들이 하나 둘 모두 자리를 떠나고 검투사들도 고개를 푹 숙인채 퇴장하지요. AD 391년 로마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로마에서는 검투사 경기 문화가 사라집니다.

텔레마쿠스가 사막으로 나가 은둔자가 된 것은 기다림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을 바꾸려는 사막의 구도자들. 그들의 우선 순위는 놀랍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론 ‘숨은 조화’에 나오는 한 토막입니다. “모든 불행은 그대가 상궤를 벗어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즉시 돌아오라. 그대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본질과 내면적인 존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그대는 더욱더 행복해진다. 본질의 소리를 잘 듣도록 하라.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라.”

그대의 귀 기울임과 용기를 통해 왜곡된 문화들이 조금씩 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