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용 락

단촌역 입구에

큰 은행나무가 몇 그루 서 있네

40년 전 내가 중학교 통학할 때는

결코 보지 못했던 그 나무들

새벽 통학생 발자국

서울 공장 간다고 기다리던 밤기차

모두 사라지고 화물차의 기적만

이따금 산협을 울리는 간이역

만추의 가을비 속에서

안부를 여쭙는 듯 떨어뜨리는 노오란

저 멀리 허공이 된 세월 속으로

아! 정말 인생이 깊다

고향마을이 역사(驛舍)앞에 서 있는 오래된 은행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일들을 다 알고 있다. 누가 서울로 공장 간다고 떠나는지, 누가 공부하러 대처로 떠나는지, 누가 울면서 시집을 오는지, 누가 저승길 떠나는지. 시인은 만추의 가을비를 맞고 서 있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세상의 시간을, 인생의 깊이를 가만히 읽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