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협상·재투표 가능성… 러시아에 지원요청
독일은 `유감`… ECB “유동성 지속 공급”

▲ 키프로스 시민들이 19일(현지시간) 수도 니코시아의 의사당 밖에서 예금 과세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키프로스 의회는 예금 과세를 골자로 하는 구제금융 협상안 비준을 거부했으며 이에 따라 키프로스 정부는 유로그룹과 구제금융협상을 다시 하거나 새로운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AP=연합뉴스

키프로스 의회가 예금 과세를 골자로 한 구제금융 협상안의 비준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키프로스는 유로그룹(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 회의체)과 구제금융 협상을 다시 하거나 재원 조달 방안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기가 여의치 않거나 유로그룹과 구제금융 재협상마저 실패하면 키프로스는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에 직면한다.

키프로스 의회는 19일(현지시간) 오후 임시회의를 열고 구제금융 협상 비준안을 표결해 반대 36표, 기권 19표로 부결했다.

앞서 키프로스 정부는 1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받는 대가로 은행 예금에 6.75~9.9%를 과세하는 한편 긴축 재정과 공기업 민영화 등을 추진하는 내용의 협상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은행 예금 과세라는 유례없는 조치에 반발이 크게 일자 예금 잔액 2만 유로 이하는 과세를 취소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이날 제출했지만 찬성표를 한 표도 얻지 못했다. 비준안 부결 후 니콜라스 파파도폴루스 의회 재정위원장은 “며칠 내 새로운 합의에 이를 때까지 은행은 폐점할 것”이라고 밝혔다.

키프로스 은행은 지난 18일 국경일 휴무 이후 21일까지 뱅크런(예금대량인출)을 방지하기 위해 영업 중지 조치를 받았다.

키프로스 의사당 앞에 모인 수백 명의 시위자는 협상안 부결 소식에 환호하며 국가를 제창하기도 했다.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20일 오전 정당 지도자들과 부결에 따른 향후 방향과 대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지 언론은 키프로스 정부가 유로그룹 등 채권단과 재협상해 애초 예금 과세로 충당하려던 58억 유로의 재원을 벌충할 새로운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새 방안으로는 국채를 더 발행하거나 키프로스 은행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등이 검토된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미할리스 사르리스 키프로스 재무장관은 차관 조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9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았다. 그는 출국 전 사표를 제출했으나 대통령이 수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도 비준안 부결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으며 대통령실은 양국 정상이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키프로스 구제와 관련해 강경한 태도를 견지해 온 독일은 결국 키프로스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다며 이번 비준 거부에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무책임한 해결책은 안 된다”며 “구제금융을 요청한 것은 키프로스”라고 말했다. 그는 “구제금융을 위해서는 키프로스가 금융시장에 복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방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키프로스의 부채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과 IMF는 비준 거부에 따른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독일 정부가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 유로존 관계자는 전했다.

ECB(유럽중앙은행)는 “키프로스가 필요하다면 `현행 규정`대로 유동성 공급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다페스트·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