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석 포항 기쁨의교회 담임목사
최근에 들어서 우리 사회에서 급성장하는 산업이 있는데 바로 `위로 산업`이라고 합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이나,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없어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줄 애완용 동물이 인기를 끌고, 싱글 여성들은 “남자 친구 팔베개 쿠션”을 애용하기도 한답니다. 또 술을 판다기 보다는 말상대를 해주는 토크 바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또 호주에서 유행하여 전세계로 널리 퍼진 프리 허그(Free Hug) 운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포옹함으로 따뜻한 위로와 정을 나누어주겠다는 운동입니다.

위로 산업이 번창하고, 프리 허그 같은 운동들이 일어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위로에 굶주려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숫자가 하루 평균 33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일년에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 것 같지만 곳곳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1장 3절에 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자비의 아버지 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이 말씀은 초대 교회의 사도 바울이 선교 사역 중에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통과하면서 만난 하나님에 대한 설명입니다. `위로의 하나님` 이 때 위로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는 `파라클레시스`입니다. `파라`는 헬라어로 가까이라는 뜻이고 `클레시스`는 부르다 라는 뜻입니다. 위로가 성립되려면 누군가를 가까이 불러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때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사실 말이 별로 필요 없습니다. 그저 나의 고통과 형편을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위로와 도움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깊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위로하지 못할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우리 가까이 불러야 합니다.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우리 삶의 자리로 가까이 초청할 때 하나님의 위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고통하며 위로가 필요한 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불러 보십시오. 분명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기 원하시는 자비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우리 모두의 영혼에 풍성히 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