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푼 벌러 대전 갔다 온 날 대전 가서 하룻밤 자고 온 날 쑥구렁에 처박혔다 돌아온 날 슬픔, 아지랑이로 피어오른다 오냐오냐, 이별가로 피어오른다목이 메인 이이벼얼가를 불러야 옳은가요 돌아서서 피어누운물을 흘려야 옳은가요고운 때깔로 슬픔, 저 혼자 흥얼거리는 날 몇 벌러 대전 갔다 온 날 설움 뚫고 온 날 사랑,저 혼자 사랑하다 돌아온 날 옳은가요 옳은가요, 이별가로 아득히 피어오른다대학에서 시간강사로 동분서주한 시인의 신산한 삶이 고백적으로 그려져 있는 시다. 먹고 살기 위해 고달픔을 참고 견디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시인은 대중가요를 빌어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풀어내고 있다. 깊숙이 뿌리내린 생의 근원적 비애를 노래하는 시인의 고백은 실직의 시대라 불러도 될 만한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시인
2018-07-04
빨간 혈흔 하나 떨어졌다누군가 밤새 사랑했던짤은 삶의 딱지처럼못다한 사랑의 감정과언제 피고 질지 모르는다음 생애에 제대로사랑이 열릴까눈 감고 떨어지는 석류꽃흙에 얼굴을 묻는다죽어도 좋아끝내 잠들지 못하는 밤시인은 붉은 석류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인생을 생각하고 있다. 사랑도 우리의 짧디 짧은 한 생도 붉은 석류꽃처럼 아름답게 피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꽃잎이 떨어지듯이 사랑도 가고 우리의 한 생도 별로 거둔 것 없이 금방 나이 들어 가뭇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피력하는 시인에게서 생에 대한 깊은 성찰의 정신을 읽는다.시인
2018-07-03
내가 좋아하는 여울을나보다 더 좋아하는 왜가리에게 넘겨주고내가 좋아하는 바람을나보다 더 좋아하는 바람새에게 넘겨주고나는 무엇인가놓고 온 것이 있는 것만 같아자꾸 손바닥을 들여다본다너가 좋아하는 노을을너보다 더 좋아하는 구름에게 넘겨주고너가 좋아하는 들판을너보다 더 좋아하는 바람에게 넘겨주고너는 어디엔가두고 온 것이 있는 것만 같아자꾸 뒤를 돌아다본다어디쯤에서 우린 돌아오지 않으려나보다살다보면 무언가를 마음을 다해 챙겨오거나, 일을 다 하지 않은 상태로 다음날을 맞을 때가 있다. 어딘가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것만 같아 자꾸 자신을 들여다보고 생각한다는 시인의 고백에서 근원적인 쓸쓸함이랄까 고독함을 읽는다. 우리는 그렇게 남겨지거나 잊혀지거나 관심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시인 정신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인생론은 잔잔한 감동을 거느리고 있다. 시인
2018-07-02
꽃들은 자신의 몸 열어가끔씩 달빛에 젖은 얼굴내어 보이는데내사랑은 북쪽으로 기울어진 가지섣불리 손수건 매달지 못한다북쪽엔 그가 있다내가 찾아 가야하는 길 끝에그가 기다리고 있다잉걸불 사랑에 녹아 내리는 눈물차마 내어 보이지 못해 출렁이는연애는 밑 빠진 항아리다앞서는 바람 부르지는 않으련다다만,꽃 진 자리에 돋아나는상처 보듬으며환한 세상 열어가련다인간은 생래적으로 그리움을 품고 사는 존재가 아닐까. 시인이 말하는 북쪽은 방향성을 말하진 않는다. 다만 근원적인 그리움이 몸 안에 일렁이고 아득히 멀어져 있거나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시간 속에 간절히 그리워하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꽃 진 자리에 돋아나는 상처는 새로운 잉태와 결실로 가는 길이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움 가득 안고 그 길을 가겠다는 시인의 마음 한 자락을 읽는다. 시인
2018-06-29
찔레꽃이 피면 갈거나약산 동대진달래꽃이 피면 갈거나봄날은 다시 와 광주천변에 휘늘어진 수양버들하마 꾀꼬리 울음도 깃들일 법하다만내 고향은 넹변이야유한잔 술에도 얼큰한 복덕방 김씨 영감오늘은 어린 손주놈 손목 잡고 나와촘촘한 버들눈을 훑어내어때끼칼로 촐래를 만들어 부니고운 가락이 샘물 솟듯 한다어린 손주놈도 멋모르고 따라 솟고오가는 행인들 발끝도 따라 솟는다잠시 제가끔 아득한 향수가 물결을 친다내 고향은 넹변이야유한잔 술에도 얼큰한 복덕방 김씨 영감찔레꽃이 피면 갈거나약산 동대진달래꽃이 피면 갈거나김소월 시인의 시에도 나오는 영변의 약산 동대는 봄이면 온 천지 진달래꽃이 만발한 곳이다. 시인은 꼭 김소월을 닮은 남녘 빛고을 광주의 서정시인이다. 올 봄은 실향민 김씨 영감의 소망처럼 민족 화해와 분단 극복의 희망적인 기운이 반도를 덮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시인은 몇 해 전 돌아가셨다. 시인의 바람처럼 남북이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화합하여 통일의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시인
2018-06-28
사라진 전설이 숨쉬고 있다수면을 흔들어 물수제비 뜨는 물닭자운영 꽃빛 뺨에삼월 햇살이 졸고 있다우포늪,말밤들 까맣게 수런거리고뻘 밑 가시연 뿌리시간을 간직한다경남 창녕의 우포늪은 생태천국이다. 자연 생태계의 보고가 이닐 수 없다. 약 1억4천만년 전 형성된 그 곳에서 시인은 영원의 시간을 느끼고 있음을 본다. 1천여 종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그 영원의 시간 속에서 자신들의 아름다운 목숨들을 가꾸고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눈에 가슴에 비쳐든 3월 햇살 속 자운영 곱게 핀 우포늪의 아름다운, 살아있는 그림 한 장을 본다. 맑고 깊고 고운 생명의 빛살들을. 시인
2018-06-27
꽃 질 때를 기다리는 나이다피고 지고 기대어온 나무에게 꽃은 엄숙히 나이테를 둘렀건만오래도록은 꽃 질 때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꽃 진 자리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그대를 기다리던 저녁이 있었다어둠이 보슬비를 이끌고 찾아왔었다의자에 앉은 내 눈길이 서늘했을 것이다벚나무 아래 앉은 나이 든 사내가이제 지는 잎을 기다린들 나무는 반갑기만 할라고활짝 피었다 하르르 져 버리는 벚꽃은 황홀함과 동시에 쓸쓸함에 젖게 하는 꽃이다. 화자는 벚꽃 진 자리에 앉아 사랑을 기다리던 청춘의 시간들을 회억하고 있다. 벚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웠던 젊음의 시간들도 금방 추억 속에 묻히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는 씁쓸한 마음으로 비에 젖는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 보는 아침이다. 참으로 아득하고 아쉬운 시간들이다. 시인
2018-06-26
황사도 꽃샘바람도 멈칫절뚝이며 가는 걸음 비켜섰다지하 동굴 같은 중환자실의 벽을자유로이 넘어 상근씨는훌훌 몸 벗고저리 근엄하게 침묵하고 있으니청매실 꽃비가 내리는창 밖은 이월 스무나흐레멍든 무릎 꺾어 놓던 저녁도 지고 있다어디서부터 뒤틀렸던가볕 들 날 없었던 생의마른 옆구리에 발 내린 씨앗들떨고 섰는데반백의 고우들 씁쓸한 술잔에별이 뜬다영정 속의 상근씨도 눈 붉어지며촛불 파르르 눈물 떨군다이제 왕생원의 광경 속에서그는 관람객이다망자(亡者)를 관람객이라 일컫는 시인의 인식이 깊다. 망자는 가난과 질고, 멍든 무릎, 생의 상처와 아픔을 이제는 훌훌히 벗어버리고 진정한 자유인이라 하면 지나친 말일까. 어쩌면 자기의 죽음을 조문하러와 소주를 마시며 눈 붉히는 반백의 친구들을 영정사진 속의 망자도 관람객이 되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다는 시인의 인식이 잔잔한 감동과 깨달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시인
2018-06-25
봄이다신생이다여기저기서 밝고 온유한 것들이 몰려온다야트막한 야산 둔덕지난 해 죽고 말라 비틀어진잡풀들 사이로쇠비름, 개망초, 쑥부쟁이, 씀바귀 같은자잘한 것들이 생기 있는 얼굴을 내민다암탉이 햇병아리 떼를 이끌고종종걸음을 친다논배미의 갈아엎은 흙무더기사이로 땅강아지 한 마리가쏜살같이 달아난다아 온갖 것들이 몰려온다성한 것 하찮은 미물들 할 것없이저마다 가슴속의 하늘을 열어젖히며봄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작고 미미한 것들의 되살아남에 시인의 눈길이 세심하게 가 있음을 본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대게 아름다운 것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인의 생각은 다르다. 작고 초라하고 소외되어 있는 존재들, 곧 밝고 온유한 것들이 이 세계를 떠받치는 근본과 토대가 된다는 존재의 원리를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8-06-22
오래된 몸 서러운 색깔로 물들이는복사꽃잎, 연분홍에서 진분홍에 이르는첩첩한 꽃길, 젊은 날 그 길을그토록 두려워 떨며 걸었던 것이다한 세상 여는 일이세미하게 채도 다른꽃잎 밟는 일인 것을꽃잎 밟을 때마다 숨 멎는 줄 알았던묵시의 시간들은 아팠다이제는 헐거운 마음으로저 연분홍 꽃잎 가장자리 밟으며바람 느릿느릿 지나는 조치원에서한나절 보낼 수 있겠다 복사꽃잎흩날리는 아름다운 적소 황홀한꽃길의 자락청춘의 색깔은 연분홍 혹은 진분홍이 아닐까. 황홀한 아름다움이 그들을 사로잡고 그들을 흔들리게 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이제 나이 들어서 그리도 황홀하게 사람을 사로잡던 연분홍색도 여유 있고 안정되게 그 아름다움을 관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인의 균형감 있고 안정된 정서에 깊이 공감하는 아침이다. 그게 인생이다. 시인
2018-06-21
비가 와서, 기계면 구지리 여울로 와서 능금나무 푸른 능금 떨어지네 비가 오면, 늙은 도화지 속 설레던 그리움도 문지방 건너 구들목에 들어 축축하네 추억 저 안의 캐시미론 이불도 쟁여둔 능금 한 알의 그리움, 비에 젖네 퉁 퉁 불어 터지네비 그쳐 과수밭 잎사귀 연록으로 세수하고 볕살에 맛들일 능금의 계절, 담뱃잎 귀밑머리께와 단내 나는 가지마다 찢어질 듯 사태진 능금알로 가을하는 내 사랑, 네 거기서 그렇게 바람 맞아라 바래지 않는 한 장 흑백사진으로 오롯히 살아있으라 서쪽하늘 한 줌 선홍의 노을도 적시지 말아라푸른 여름비가 내리면 세상은 온통 푸른 물이 들고 동네 앞 여울에도 푸른 여름이 흐른다. 시인은 능금나무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붉게 익어 가지가 찢어질 듯 사태지는 능금알을 떠올리고 잇다. 푸른 여름비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결실의 시간들을 전제하고 있어서 그냥 서서 비에 젖고싶은 뜨거운 비가 아닐 수 없다. 시인
2018-06-20
꽃 그려 새 올려놓고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소식파르티잔은 빨치산을 일컫는 말이다. 해방공간과 6·25 전후 지리산을 비롯한 남도의 깊은 산악에는 좌익이념에 편향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심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같은 소설에는 이념이 얼마나 그들을 혹독한 시련을 견디게 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은신처에도 어김없이 봄이 와서 진달래와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을 것이다. 산 아래 두고온 가족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지랑이 속으로 날리어가는 그런 아픈 봄날이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짧은 3행의 시 속에 이런 것들을 다 쓸어 담아내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18-06-19
열매를 솎아보면 알지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나 처음엔열매 많이 다는 것이 그저 좋은 것인 줄 알고아니, 그 주렁주렁 열린 열매 아까워제대로 솎지 못했다네한 해 실농(失農)하고서야 솎는 일이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정이란 걸 알았네삶도, 사랑도 첫 마음 잘 솎아야좋은 열매 얻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네올망졸망 매달린 어린 복숭아 열매를 솎는 것은 튼실하고 소담스런 열매를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좋은 결과에 이르기 위해 작은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버릴 건 버리고 지키고 얻어야할 것들은 단단히 지켜야한다는 생의 원리를 일러주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8-06-18
달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누가 사다리 좀 다오(….)달이 내려와지붕에 어른거리는 목련꽃 핀 자국마다 얼룩진다이마에 아프게 떨어지는 못자국들누구의 원망일까조용히나무에 올라 발자국을 낳고 싶다오염 투성이인 이 땅이 싫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난과 질곡이 끝없이 대물림되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이 땅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달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초월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엔 순수하고 병들지 않은 생명이 푸르게 살아 있는 곳이리라. 시인
2018-06-15
산 고개 가는 길에개미도 집을 짓고움막도 심심해라까중나무 마을선푸성귀 남새살구나무 마을선때를 모를 졸음산 고개 가는 길에솔이라도 씹어야지할멈이라도 보아야지햇살이 따사롭게 내리비치는 봄날, 고요한 시골의 정경 속에 시인은 편안하여 졸음을 스밀 정도로 평화로운 시간을 느끼고 있음을 본다. 온통 봄빛과 봄 향기로 가득한 산 고갯길과 마을에는 가슴 따스하고 정겨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시인은 봄 한 때 절대평화와 안식의 시간을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8-06-14
비 맞는 구인사흰 철쭉은벼랑 끝에 저 혼자 피어한 포기 일생을 비에 다 적시고도오는 비를 마다 않고어린 비구의 염불 외는 소리에도백발성성 노인을 꿈쩍도 않고구봉팔문 제사봉 수리봉 칠봉사방 불끈거리는 힘에도 까딱 않고벼랑 위 주목나무가 떨구는감로(甘露)조차 받아 마시지 않고그 위태로운 자세 꼿꼿이 세워그저 면벽수도하는스스로 칡넝쿨 헤치고초암(草庵)을 얽어 참선하는구인사 흰 철쭉비 맞으며 벼랑 끝에 서 있는 산사의 흰 철쭉꽃을 보며 시인은 인생을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이라 할지라도 꿋꿋이 견디며 자신을 지켜내겠다는 강단진 결의와 다짐을 보여주고 있다. 불구의 세계로부터 훼절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겠다는 시인정신을 읽을 수 있다. 시인
2018-06-13
연노랑 봄빛이 남녘에서 물들어 오면산하는 생기가 되살아난다구십춘광은 노인의 맘을 불타게 하고기지개 편 정오의 툇마루에는할머니와 손자는 도란도란 이야기에가미솥 누룽지처럼 노릇노릇 익어간다구수한 할머니 옛이야기는 쇠죽솥의 군밤처럼웃음보가 툭툭 탁탁 터져 나온다밭갈이에서 돌아오신 할아버지는한 자 되는 대설대로 한 모금 길게 뽑고방귀처럼 펑펑 터진 함박웃음을 지체 못하신다오늘도 손자들은 조부모의보살핌속에서 사랑을 먹고봄빛처럼 연노랑 정서에 물들며 자라간다되살아오는 생명의 불꽃이 산하를 뒤덮는 봄날 시인은 거세게 밀려오는 희망의 봄빛에 깊이 젖고, 환희의 합창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본다. 정겨운 고향 마을에 번져오는 봄빛살을 노래하는 구수하고 따스한 노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8-06-12
오릉을 옆에 두고 달릴 때 공중에서 퍼져 나오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비상등을 켜야지 덤프트럭이 경적을 울린다 욕지기가 귓가에 쟁쟁하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트럭 도로가 순간 까무룩해진다 내 몸은 차와 함께 잠시 날아올라 쿠궁, 하늘가에서 눈이 마주친다 지지배야 지지배야 종다리가 놀려댄다 칼바람 일으키며 원을 그리는 무리 내 몸이 너무 커 무겁구나 지지배야 지지배야 아랑곳하지 않고 놀려댄다 허리 굽은 농부가 아직 허리를 펴지 못하고 흙을 다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종다리가 농부의 등에 착 달라붙어 같이 시름한다 지지배야 지지배야 삼월 중순 경 종다리하고 나하고삼월 중순, 아직은 시린 봄 하늘에서 들려오는 종다리의 지저귐을 가슴 깊이 받아내는 시인의 마음이 고운 봄빛 같다. 지지배야 지지배야 라고 들려오는 종다리의 소리에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 열리는 시린 봄을 바라보는 시인이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맑고 깨끗한 서정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인
2018-06-11
이른 봄에 핀한송이 꽃은하나의 물음표다당신도 이렇게피어 있느냐고묻는이른 봄에 피어오른 한 송이 꽃을 바라보며 시인은 인생을 생각하고 있다. 삼라만상의 극히 한 부분을 차지하고 태어난 우리네 인간의 삶도 한송이 봄꽃 같이 잠시 왔다가는 것 아닐까. 시인은 자신에게 혹은 세상을 향해 묻고 있다. 봄꽃 한 송이처럼 희망차고 아름답게 피어 세상을 아름답게 밝힌 적이 있느냐고.시인
2018-06-08
어느날썩은 내 가슴을조금 파보았다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그 흙에꽃씨를 심었다어느날꽃씨를 심은 내 가슴이너무 궁금해서조금 파보려고 하다가봄비가 와서그만두었다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비는 자연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인은 답답하고 막막한 인생의 한 노정 가운데서 맞는 봄비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본다. 어떤 예감과 기다림, 기대감으로 가만히 봄비를 맞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
2018-06-07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무처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여, 피가 잘 도라 …. 아무 병(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짧디 짧은 이 몇 줄의 시 속에 미당의 길고 긴 서정의 끈을 발견한다. 복사꽃 피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가 날아오는 이 땅의 봄을 두고 그는 몇 해 전 이 땅을 떠나 그가 말한 서역 삼 만리로 간 것이다. 그야말로 깨끗하여 어떤 병도 슬픈 일도 없을 희망의 세상이 도래한 데 대한 설레임과 환희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8-06-06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봄을 기다릴 줄 안다기다려 다시 사랑은불모의 땅을 파헤쳐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천년을 두고 오늘봄의 언덕에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사랑은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너와 나와 우리가한 별을 우러러보며천박한 자본주의를 향해 온몸으로 싸우다 간 민중시인 김남주의 간절한 기다림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순수하고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아픔을 당하고 더럽고 약삭빠른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는 불구의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매서운 회초리가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기다림과 나눔을 담아내는 그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시인
2018-06-05
부황 난 어린아이가질척거리는 시장바닥을 헤매다어쩌다 떨어진 국수 한 가닥을잽싸게 집어먹는다낙엽 같은 어린아이가시궁창 앞에 쭈그리고 앉아작은 비닐봉지를 들고혹 음식 찌꺼기가 떠내려올까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이 어린아이들 머리 위로도해는 뜨고이 어린아이들 사이로도사람들은 지나가고이 어린아이들 앞에서도꽃은 피고 새는 울고어른들은 밥장사를 하고나는 밥을 삼키고슬픈 사진 몇 장을 보여주며 시인은 무심하기 짝이 없는 현대인들의 삶을 비춰주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보장되지 않는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실상이 아닐까. 시인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비정함에 대한 자성과 함께 따가운 회초리를 대는 작품이다. 시인
2018-06-04
여행은 힘과 사랑을그대에게 돌려준다어디든 갈 곳이 없다면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가 보라그 길은 빛이 쏟아지는 통로처럼걸음마다 변화하는 세계그곳을 여행할 때그대는 변화하리라여행은 힘과 사랑을 준다는 시인의 말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마음 닿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풍광과 사람과 우주를 만나게 된다. 거기서 자기에게 갇혀있던 삶에서 세상으로 열린 삶을 살게 될 것이고, 확장되고 충만한 만남과 관계를 형성하게 되며, 변화하게 되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시인
2018-06-01
우리 집 바로 앞에조그만 산을 하나 세웠답니다쓸쓸한 날 오르려고구부러진 산길도 만들었지요마음이 구부러지면구부러진 산길 따라 걷는답니다어디론가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다만 구부러졌기 때문에 걷는답니다펼 수 없는 것들 모두 모아서조그만 산을 하나 세웠답니다구부러진 길 때문에저절로 구부러진 산이랍니다현대의 기계문명은 거의 직선으로 이뤄져있다. 고속도로가 그렇고 고층 빌딩이 그렇다. 시인은 이러한 단절과 일관성이라는 문명의 속성을 비판하며 구부러진 산길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옹호하고 있음을 본다. 구부러진 자연 속에 구부러진 인간이 깃들어 사는 여유롭고 넉넉한 세상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시인
2018-05-31
하늘이 싫어할 일을 내가 저질렀습니다오늘 또 저질렀습니다못 자국을 들여다보고창에 찔린 옆구리에손을 넣어 만지기까지내가 감히 하늘을 의심하였습니다돌아서서 그런 낯으로남몰래 하늘을 바라보는내 가슴은 온통 못으로 박혔습니다겸허하고 진솔한 고해성사를 통해 처연한 반성에 이르는 시인을 본다. 님은 가시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경험주의적인 신앙에 빠진 시인은 그 것을 의심하고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시간들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있음을 본다.시인
2018-05-30
너의 눈에는 집과 유리창과 나무가 있고 커다란 염소의 젖을 짜는 여자가 있고 검은 하늘에 담긴 흰 구름이 있다 새들이 날아가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너의 눈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본다 너의 눈에는 어둠을 달리는 고양이가 있고 어둠을 밝히는 불빛들이 있고 피 흘리면 쓰러지는 영화의 주인공들이 있고 그들을 버리고 떠나는 검은 기차가 있다 기차가 지나가자 흔들리는 나무와 풀들이 있다 너의 눈에는 세계가 담겨 있다 너의 눈 속엔 너의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내 눈이 있다 나는 너의 눈을 통해 내 눈을 오래도록 바라본다시인의 시선은 너라고 일컬어지는 시적 대상의 눈동자에 가 있다. 너의 눈에서 비쳐지는 세상과 자연과 우주를 보면서 자신의 눈도 그 속에 있음을 느낀다. ‘나’ 라는 존재의 타자화를 통해 현대인들의 정체성의 혼란, 위기감 같은 것을 꼬집어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
2018-05-29
볏잎 뒤에 붙은 밀잠자리 한 마리속나래와 겉나래 두 닢저 수많은 땡볕과 폭풍우를 치고와서겹눈을 뜨고 날개는 수평 그대로인 채손을 댔더니 겹눈도 나래도 바스라져섬뜩해라, 폭싹 재가 되는 걸!무얼 남기겠다고주접 떨지 마라아 저 시원한 늦가을 창공한 자락시인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삶의 원리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볏잎에 붙어있던 잠자리 한 마리의 바스라져 재가 되는 것을 얘기하면서 존재의 순간성과 함께 또 다시 새로운 생명의 잉태라는 순환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공(空)의 세계와 색(色)의 세계, 해체와 생성의 순환이라는 불교적 원리를 깨우친 것이다. 그래서 득도의 경지에 이른 고승(高僧)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모른다. 시인
2018-05-28
곳곳의 부지런한 나무들이 풀들이돌들이 집들이 길들이제각각의 글자를 쓰고 있다어느새 방대한책이 되어버린 봄길아마도 맹인들만이무사히 이 봄을 건널 수 있으리함부로 아름답다 그러지 말게!온갖 사물들도 이제공부하고 있으니새 생명이 움트고 연두색 새싹들이 일어서는 모양을 자연이라는 종이에 제각각의 글씨로 글을 쓰고 있다고 표현한 발랄하고 재밌는 시다. 주마간산 격으로 아무 감동 없이 도래한 봄을 스쳐 지나치는 현대 문명인들을 향한 경계를 하면서 진지한 생명활동을 하는 봄을, 봄길을 봄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인
2018-05-25
은빛 사닥다리은빛 사닥다리를 타고지붕 위에 오르겠네사닥다리, 뼈로만 이루어진 사닥다리한 디딤마다 내 발은 후들후들 떨겠네내 손은 악착같이 사닥다리를 쥐겠네사닥다리, 발이 손을 따르는 사닥다리구름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대추나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종달새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돌멩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땅바닥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내 사랑이 아슬아슬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봄이 되면땅바닥은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네사닥 사닥 오른다 해서 사닥다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경우는 손이 발의 움직임에 따르는데 사닥다리를 오를 때는 손이 먼저가고 발이 따른다는 시인의 발상이 유쾌하다. 시인은 사닥다리를 통해 인간의 혹은 자연의 상승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새봄에 웅크린 것들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서듯이 생명으로의 일어서고 나아가고 오르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8-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