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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시, 젠더 이슈에서 분석한다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2012년 성별영향평가법 시행 이후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과 같은 지역개발에 대한 평가가 활성화되고 있고 있다. 이를 정책개선으로 연계하려면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 젠더 이슈에 따른 모니터링 운영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때문에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의 젠더 이슈는 여성과 남성의 생활특성 차이와 요구를 고려한다고 본다. 즉 돌봄, 접근성, 편의성, 안정성, 체감도 다섯가지 영역을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의 젠더 이슈로 살펴본다.돌봄은 전통적인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환경을 촉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녀 모두 가정과 사회의 공적인 일이 조화롭게 도모할 수 있도록 돌봄 기능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안전하고 편리한 양질의 돌봄 시설이 제공돼야 한다. 편의성은 중요한 젠더 이슈 이며, 여성의 돌봄이나 여성 친화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문화·복지·체육시설 배치 및 설계, 공공기관 내 유·아동 보호 및 편의시설 설치, 휴식 공간 제공 등을 검토해야 한다. 안전성은 필수적인 요인이며, 장소와 시간대에 따른 범죄로부터의 여성 안전 확보, 여성의 보행환경을 고려한 도로 포장, 여성의 보행속도를 고려한 신호체계 구축,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주택 및 도심시설 설계, 생활체육 시설 및 공원 등을 고려해야 한다. 체감도는 정책 및 계획의 수행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 즉 어떤 항목이 반영 되었고 반영하지 못한 항목은 무엇인지 살펴본다.이처럼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의 젠더 이슈와 함께 모니터링에서 검토할 부분을 제시한다. 첫째, 기획에서는 법령 및 지침 등의 성인지적 관점 반영 여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익증진을 위한 시설 설치 규정 여부,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 관련 성별 통계 생산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정책의 성별 관련성에서는 성별 간 서로 다른 요구 파악,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 관련 의견수렴 과정(주민 설명회 등) 실시 여부, 정보 접근성의 용이성을 살펴본다. 또한, 위원회의 성별 형평성을 고려한 여성위원비율 및 위원들의 성인지 감수성, 사업추진 주체의 성별 구성 및 성평등 의식을 점검한다. 둘째, 과정에서는 성인지 예산 연계, 시설 및 장소의 접근 용의성과 안전성, 서비스 및 프로그램의 접근 용이성을 확인해야 한다. 임산부 및 영유아 동승자를 배려한 일정 크기의 주차공간이나 공원 및 체육시설 내 여성 및 노인, 어린이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시설물 배치 등을 살펴본다. 그리고 거주 공간의 안전성 뿐만 아니라 야간보행 안전성을 위한 조명시설도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평가에서는 성별 요구에 따른 시설 및 환경만족도, 복지 만족도, 여가 및 커뮤니케이션 시설, 평가결과의 수행정도 및 실효성 파악, 성인지 예산 반영 및 집행결과를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 관련하여 성인지 예·결산서 작성이 수행되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이 체계화되려면, 단편적인 조사와 분석이 아닌, 상시적인 점검과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19-09-16

내 마음 중심에 있는 것 (2)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 크리스틴 스페인(Christine Spain)은 54세 여성입니다. 어느 겨울날, 이웃에서 모임을 갖고 늦은 밤 애완견 릴리와 함께 귀가하던 중 갑자기 쓰러집니다. 알코올이 문제였습니다. 릴리는 갑자기 쓰러진 주인 주위를 빙빙 돌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멀리서 화물 열차 불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두면 크리스틴은 그대로 열차에 깔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지요. 릴리는 미친 듯이 주인을 선로에서 끌어내려 애씁니다.기관사가 멀리서 목격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습니다만 열차는 제동거리 때문에 서서히 크리스틴과 릴리를 향해 접근합니다. 릴리는 필사의 힘을 다해 주인을 선로 밖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하지요. 그러나 릴리는 오른쪽 앞발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열차 바퀴에 깔리고 맙니다.동물 병원으로 가족들이 달려옵니다. 옛 주인을 알아본 릴리는 부끄러운 눈빛으로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듭니다. 앞 다리를 절단하고 내장이 파열된 심각한 몸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흔히 충견(忠犬)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충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한자의 충(忠)은 가운데 중(中) 아래에 마음 심(心)이 놓여 있습니다. 내 마음 중심에 놓여 있는 것. 우리는 그것에 충성을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그 중심에 놓인 것이 돈이면 우리는 돈의 충실한 노예입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명성이면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몸값과 명성을 높이기 위해 충성을 다 합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권력이라면, 우리는 파워를 획득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겠지요. 결국,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은 내가 무엇에 중심을 두고 충성을 바쳐왔는가, 하는 것의 최종적인 결과물입니다.“강아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조쉬 빌링스의 말이 뜨끔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6

독일과 일본의 역사관

강희룡 서예가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지난 1일 폴란드 중부 비엘룬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행사에 참석해 과거사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그는 이날 당시 독일군에게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애도했다.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기리며 용서를 구한다.1939년 9월 1일 오전 4시 40분 독일이 폴란드의 비엘룬을 기습적으로 침공함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방어력이 없던 소도시 비엘룬은 순식간에 도심 전체가 파괴됐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1천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후에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후 5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폴란드에선 유대인 300만 명을 포함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6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바르샤바를 비롯한 주요 도시는 폐허가 됐다.비엘룬에서의 행사는 8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전 4시40분에 시작됐다.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린 비엘룬 공습은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이자 전쟁범죄였다’고 말했다. 두다 대통령은 독일 대통령의 비엘룬 방문을 일종의 도덕적 배상으로 규정하면서 ‘힘겨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는 행동에는 용서하고 우정을 쌓을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독일은 그동안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폴란드, 프랑스, 영국 등을 비롯한 전쟁 피해국들에 많은 배상을 해왔고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를 계속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독일 하이코 마스 외교장관은 지난달 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추모하고 용서를 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지난 7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해 ‘우리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억을 보존하고 이어가야 하며,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지역에서 1차 세계대전으로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일본은 지역적 한계와 서방국가들에 비해 조선 이외 다른 식민지를 보유하지 않았기에 경제침체에 빠졌다. 도조 히데키와 일본 군벌은 이 대공황을 타개하고 제국의 세력 확장을 위해 만주를 침략하여 만주국(1932)을 세우고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2차세계대전에 뛰어든다.일본은 10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을 강제징용 또는 징병해서 죽음으로 내몰았다. 전쟁 가해국으로 오늘날까지 사죄는커녕 오히려 한국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한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아베의 야망은 ‘전범국가에서 전쟁국가’ 즉 군국주의 부활이 주 목표다. 이번 개각에서 호전(好戰)적 사관을 가진 반한(反韓)인물들을 중심으로 ‘초우향우’ 개각을 단행했다. 이 개각으로 역사인식 문제를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피해 입은 모든 나라에 사죄를 해왔다. 사죄 없는 일본과 과거사를 대하는 역사인식이 서로 상반되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우리는 지난 비극의 역사를 잊지 말고 반드시 미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9-09-16

우리가 알고 있는 주막은 근래 100년 사이의 일이다

주막은 사라졌다. 바쁜 세상이다. 사라진 것은, 아름답지만, 잊힌다.사극 드라마에는 늘 주막이 등장한다. 주막은 생생하다. 초가집 마당 한가운데 평상(平床)이 있다. 건장한 사내 몇몇이 술잔을 기울인다. 장국밥을 먹는다. 멀찌막이 떨어진 곳에 수상한 남자가 혼자서 술잔을 기울인다. 포졸도 고정배역이다. 활극도 펼쳐진다. 미행도 한다. 주모는 트레머리다. 주모를 흠모하는 중노미도 있다. 가끔 봉놋방의 나그네들도 등장한다.불행하게도 엉터리다. 드라마의 주막은 드라마일 뿐이다.주막은 ‘酒幕’이다. 주점(酒店)과 다르다. ‘술 파는 막(幕)’이다. ‘막’은 집이 아니다. 천막 등으로 덮은 ‘임시 가 건물’이다. 건물이라고 부르기 옹색하다. 비를 긋거나 햇빛을 가릴 정도의 천 쪼가리를 덮었다. ‘임시’다. 드라마의 주막은,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 이후의 모습이다. 초가집, 주모, 평상, 봉놋방, 포졸은 상상이다.잠도 자는 공간을 왜 ‘술 파는’ 주막이라고 불렀을까? 주막의 시작이 ‘간단하게 목을 축일 수 있는 임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주막은, 간단하게 목을 축이는 임시 공간이었다. ‘임시, 탈법, 불법적으로’ 세운 것이다. 주막은, 끊임없이 변했다. 허술한, 겨우 하늘을 가린 ‘가 건물’ 형태에서 잠도 자고, 술과 밥을 내놓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술, 밥, 잠이 모두 가능한, 우리가 그리는, 주막은 근래 100년 사이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역원(驛院), 역참(驛站), 참(站), 점(店) 주점(酒店), 탄막(炭幕), 주막(酒幕)이 뒤섞여 있었다.역원, 역참, 참, 주점은 공식 합법의 공간이다. 탄막, 주막은 탈법적인 민간의 공간이다.조선은 역원(驛院)의 나라다조선 시대, 움직이는 사람은 한정적이었다. 공식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관리들이다. 이들을 위한 장소가 역과 원, 역원이다. 각 지역 도로에 촘촘히 역과 원을 만들고, 공식적인 이동 시에는 반드시 역원을 이용했다. 조선 초, 중기에는 이동 인구가 한정적이었다. 공무로 출장을 가는 관리, 지방으로 부임하거나 한양 도성으로 향하는 관리 정도가 이동 인구의 대부분이었다. 농경사회다. 상업은 아직 발달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인근 동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이동은 제한적이었다. 더러 움직이는 사람들도 ‘아는 집’에서 하룻밤 기식(寄食)했다.민간의 여행자는 과거 보러 한양 가는 수험생 정도였다. ‘과거 수험생’들도 민간의 집에서 유숙했다. 동문수학한 이들도 있었고, 혈연, 지연으로 얽힌 이들의 집에서 하룻밤 유숙했다. 동리에서 가장 번듯한 반가나 더러는 깊은 산속 외딴집에서 묵기도 했다. 드라마 ‘전설 따라 삼천리’에서는 깊은 산속에서 아리따운 처녀로 변신한 여우를 만나기도 했다.‘역’은 잠을 자지 않는 곳이다. 전해야 할 문서를 챙기거나 물을 마시고, 말을 바꿔 타는 공간이었다. 파발마로 급하게 달리는 관리들이 이용했다. 서울 ‘양재역’은 전철역에서 시작된 이름이 아니다. 조선 시대에 이미 ‘양재역’이 있었다. ‘역원제도’의 ‘역’이다. 양재역 부근에 말죽거리가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말은 기차가 아니다. 때때로 갈아야 한다. 양재역은 말을 갈아탔던 ‘역’이다.1795년(정조 19년) 가을, 다산 정약용은 외직인 ‘금정찰방’으로 부임한다. 찰방은 역에 근무하는 종6품이었다. 역에는 9품직의 역승도 있었고, 역을 운영하는 역원(驛員)들도 있었다. 국가는 역원(驛院)에 농사지을 땅[驛田, 역전]과 노비 등을 제공했다. 역원의 책임자는 땅, 노비, 책임 구역의 도로 등을 관리했다. 역원에 들르는 관리들에게 음식, 잠자리, 말 등을 제공했다. 마패는 역원에서 말을 제공받을 때 사용하는 표식이었다. 관리, 암행어사는 역원에 마패를 제시하고 말을 구했다.조선 후기, 주막이 역원을 대신하다‘원’은 숙박, 식사가 가능한 공간이다. 말에게 사료를 주고 잠을 재웠다. ‘원’은 국가의 공식적인 시설이다. 근무자는 주모가 아니다. 관리들이 정식으로 운영했다. 한때는 전국에 1천여 개의 원이 있었다. 원은 30리마다 하나씩 세우는 것이 원칙이었다. 오늘날도 남아 있는 ‘조치원’ ‘이태원’ ‘사리원’ ‘인덕원’ 등이 모두 조선 시대 역원제도의 ‘원’이다.공식적인 역원과 달리 민간에서는 탄막(炭幕), 주막(酒幕) 등이 발달한다. 숙종 조 이후 잉여농산물이 생기기 시작한다. 잉여생산물은 민간의 ‘탈법적인’ 상업행위로 이어진다. 움직이는 사람, 상인들이 생긴다. 이들이 주막을 이용한다. 민간의 ‘탈법적인 주막’도 늘어난다.‘조선왕조실록’ 영조 4년(1728년) 4월 2일의 기사다.“경기감사(京畿監司) 이정제가 장계하여 말하기를, (중략) 지금의 이른바 주막[今之所謂酒幕]은 곧 옛날의 관정[卽古之關亭也]으로서, 적도가 밤에는 주막에서 자고[賊徒夜宿酒幕] 낮에는 장터에서 모이니, 착실하게 형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략)”영조 4년 3월 15일(음력), ‘이인좌의 난’이 일어난다. 소론 준론계(강경파)의 반란이다. 청주 이인좌를 중심으로 반란이 시작되었고 영남과 호남 일부까지 난에 합세했다.반란 초기, 한양으로 건너오는 배도 철저하게 검문하고 긴요하지 않은 경우가 아니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글 중에 “적도들이 밤에는 주막에서 잠을 잔다”라는 표현이 있다. 18세기 초반, 이미 ‘잠자는 주막’이 있었다. 주막을 ‘예전의 관정’이라고 설명한 것은, 주막이 아직 보편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주막은, 탈법적인 민간의 공간이다‘잠자는 곳’의 역사는 짧지 않다. 미암 유희춘(1513~1577년)의 ‘미암집’은 선조 7년(1574년) 무렵에도 잠자는 곳, ‘탄막’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주막이 아니다.“(전략) (유희춘이) 또 진술하기를, “근래에 도둑이 점점 불어나 경기도의 탄막(炭幕)은 나그네가 숙박하는 곳인데 도둑들이 엄습하여 그 집을 불태웠다고 하고, 서울 안에도 저녁이나 밤사이에 노략질하는 수가 많다고 합니다.(후략)”이글에서 ‘나그네들이 숙박하는 곳’은 탄막이다. 탄막은 숯이나 건초, 나무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16세기에 이미 탄막은 주막이 된다. 주모, 평상, 국밥은 없어도 잠자는 곳이었다.탄막은 오랫동안 나타난다. 200여 년 후다. 정조 13년(1789년) 2월 ‘일성록’의 기록.황해도 신계에 살던 한조이가 억울함을 호소한다. “남편 이귀복과 저는 길가에 살면서 탄막으로 업을 삼고 있었습니다. 재작년(1787) 5월, 나그네가 저희 탄막에 와서 아침을 사 먹고 있는데 (황해도) 곡산의 기찰 장교가 그를 잡아가고, 남편도 잡아가서 유배 보냈습니다.”관의 주장은 다르다. 남편 이귀복이 범인 두 명을 탄막에 재우면서, 숨겨주었다는 것이다. 18세기 후반에도 탄막이 있었다. 탄막에서는 아침밥을 팔았고, 잠도 잘 수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주막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조이는 주모와 닮았다.주막과 탄막은 혼란스럽게 나타난다. 주막과 탄막,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청장관 이덕무(1741~1793년)의 ‘청장관전서_62권_서해여언’의 내용이다.(전략) 점(店)은 주막(酒幕)인데, 술[酒]과 숯[炭]의 발음이 비슷하여 그대로 탄막(炭幕)이 되어버렸고 심지어 관문(官文)까지도 탄막으로 쓰고 있다.(후략)‘관문’은 관청 문서다. 청장관의 주장은, 주막이 술막으로 그리고 발음이 비슷한 숯막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숯’은 곧 ‘탄(炭)’이니 탄막이 되고 결국 주막이 탄막이다.‘점’이 주막은 아니다. 고려 성종 2년(983년)에 송도에 처음으로 ‘주점’이 생겼다. 공식적인 주점이다. 사설 주막과는 다르다. 중국에도 한나라 이후, 독점, 공식적인 술 파는 제도가 있었다. 술을 전매하는 ‘각고(榷酤)’다. 주막은 사설, 탈법적 존재다. 공식적으로 금주령이 잦았던 조선이다. 민간의 주막에서 술을 내놓고 팔기는 힘들었다.조선 시대 기록에는 주점, 주막, 탄막, 참, 역원, 역참 등이 어수선하게 나타난다. 조선 말기, 국가 관리의 역원은 서서히 무너진다. 부패와 재정의 어려움 때문이다. 주막, 주막의 변형이 역원을 대신한다. 가볍게 목을 축이던 탈법 공간이 잠, 밥, 술이 모두 가능한 주막으로 발전한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9-16

엎질러진 한 통의 발효액… 김천 수도암(修道庵)

포장된 외길을 오르다보면 은둔하듯 숲속에 터를 잡은 김천 수도암을 만난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길이 울창한 초록숲의 유일한 출구이다. 본사인 청암사가 수도산을 지키는 여신(女神)같다면 해발 1000m 쯤에 자리 잡은 수도암은 남신(男神)이라 할 만하다.신라 헌안왕 3년(859년) 절을 창건한 도선국사가 터를 발견하고 만대에 수도인이 나올 곳이라 기뻐했다는 천하 명당, 풍수적으로 여인이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형국이다. 대적광전 앞에는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동탑과 서탑이 늠름하고, 실 감는 도토마리석이 발견되어 전설 같은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경내는 세 단으로 나뉘어져 높고 웅장하다. 관음전에 들러 백팔 배를 하고 가파른 계단을 천천히 오르면 오래된 대적광전을 만난다. 대적광전에 봉안된 보물 307호 석조비로자나불은 석굴암 본존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풍만하고 장대하다. 게다가 천년의 세월을 이겨낸 불상답지 않게 보존상태도 양호하다.운무도 고요한 골짜기를 유빙처럼 떠다니며 기도 중인가. 절은 참선에 든 듯 고요하고 까마귀 한 마리 죽은 나뭇가지에 앉아 간헐적으로 울어댄다. 수행하는 스님들은 굳게 닫힌 선방문 안에서, 나는 까마득한 옛날을 떠올리며 소리 없이 걷는다. 꾹꾹 눌러 밟는 시간 속에 그리움이 피어난다. 오늘처럼 안개 냄새가 나는 천 년 전 어느 구월의 하루를.왕희지의 재림이라 일컫던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로 추정된다는 도선국사비 앞에 마주 선다. 선명하던 눈빛이 꺼져가던 순간 빛나던 말씀은 얼룩으로 남고, 옛사람이 남긴 지문은 바람이 지워 버렸다. 수많은 날들이 통증을 일으키며 손을 내민다. 무심히 지나쳤던 별 특징 없던 비(碑)가 새로운 의미가 되어 내게로 온다.내 안에 깊게 뿌리내린 이 알 수 없는 뜨거움, 결코 만질 수 없는 아득한 그리움 같은 이것을 누군가는 얼이라 했다. 큼지막하게 음각해 놓은 (개)창주도선국사(開5231主道詵國師)라는 글자만 뚜렷이 들어온다. 그 등판에 흐르는 유일한 김생의 친필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이제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가 없다. 대부분 마모되고 10여 자만 낡은 무늬로 남아 자유를 꿈꾼다. 이름을 남긴다는 건 빛나는 존엄 뒤에 깊고 여윈 빈 의자 하나 만드는 일인지 모른다.약사전 툇마루에 앉아 잠시 사색에 잠긴다. 절 살림을 맡아하는 실장님이 차 한 잔을 권한다. 종무소에 앉아 보이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내 눈은 높다란 계단 위에 앉은 비로전으로 향한다. 자유롭게 자라는 풀숲에는 이른 가을이 일렁이고 공양주 보살은 텃밭에서 막 따온 고수를 다듬는다. 목청을 낮추지 않고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마저 평화롭게 들리는 산사의 오후다.스스로 빛을 낸다는 수도암의 비로자나불상, 그 위신력(威神力)에 관한 신비성보다 세속의 삶을 뒤로 하고 산중에서 봉사하며 살아가는 두 분의 이야기가 더 감동적이다. 어떤 깨달음이 있어 평생을 열망하며 이루어놓은 화려한 이력들을 버릴 수 있었을까.향이 강한 고수 같은 분들이다. 피를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켜주어 예로부터 스님들이 애용했다는,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채소다. 절집에서 맛보는 고수의 맛이 궁금해 한 잎 따서 베어 문다. 내 몸은 낯선 이국의 향기를 거부한다. 천천히 보이차로 입가심을 한다. 발효된 차가 은은하게 온몸을 돌아 나를 안정시킨다.미생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친환경 농법 EM(Effective Micro-organisms)으로 채소를 키운다는 소식은 얼마나 겸손한가. 이랑마다 촘촘한 망들을 씌워 유해한 벌레를 차단하고 주지 스님이 손수 풀을 깎는다. 수행과 울력을 기도처럼 하시는 스님은 뵙지 않아도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선지식 같은 분이리라.조낭희 수필가산사를 나서는데 공양주보살이 커다란 통 하나를 건넨다. 주지 스님이 손수 만들고 희석시켜 놓은 발효액이다. 친환경적인 삶에 욕심이 생겨 반가운 마음으로 넙죽 받고 말았다. 발효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유익함을 준다는 말이며, 앎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커다란 EM 한 통을 트렁크에 싣는다. 묵직하다. 기도하고 실천하는 삶 그리고 무심으로 베푼 정성이 덤으로 실린 까닭이다. 하지만 기쁨은 짧았다. 밤늦게 집에 도착한 후 트렁크에 있는 발효액을 꺼낸다는 걸 잊고 말았다. 다음 날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여 살펴보니 엎질러져 깨진 통 틈새로 발효액이 죄다 흘러나와 차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참담하다. 바빠서 종종걸음을 치던 내게 일거리 하나가 보태졌다.텃밭이며 정원에서 향기를 피워야 할 발효액이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오물로 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몸의 수고로움 없이 좋은 결과를 원했던 나의 아둔함과 설익은 동경이 불러온 참사였다. 향이 강한 고수처럼 혹은 눅진눅진한 발효액처럼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고수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자기 고유의 향을 지키며, 발효가 된다는 것은 내가 없어지고 또 다른 나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수도암에는 고수 같은 보살과 발효액 닮은 스님이 계신다. 그 곳을 다녀온 후 쓸쓸한 삼귀례(三歸禮)의 고백 하나, 지금까지 내 가슴에서 그렁거린다.

2019-09-16

로마네스크 건축의 완성 佛 클뤼니 수도원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의 흔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프랑스 중동부에 위치한 부르고뉴 지방의 시골마을 클뤼니(Cluny)를 찾아가야만 한다. 오늘날 인구가 채 오 천명이 되지 않는 이 시골 마을이 과거 한때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 혹은 ‘제2의 로마’로 불렸다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클뤼니의 모습에서 과거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이 한때 세계 기독교의 중심지였다는 것과 제2의 로마로 불렸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다.때는 카롤링거 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서유럽사회의 새로운 정치적 지형이 형성되던 시기였고, 사회는 전반적으로 불안정 하였다. 이 시기 교회와 성직자의 타락상 또한 극에 달해 있었다.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행위는 너무나 공공연한 일이었고, 성직자 임명권을 둘러싸고 왕과 교황은 서로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910년 열두 명의 수도자들이 마콩강에서 멀지 않은 경건공 기욤(875∼918)의 땅 클뤼니에 들어왔다. 이들은 성인 베네딕트의 규율에 따라 살기위해 수도원을 짓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한 것이다. ‘Ora et Labora’(일하고 기도하라)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규범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부터 그 위대한 수도원 개혁운동이 시작되었다.910년 처음 문을 연 클뤼니 수도원은 개혁의 여파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맞춰 수도원 교회를 증축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개축공사가 이루어졌다. 건축사에서는 원래의 교회와 훗날 개축된 부분을 구별하기 위해 클뤼니I, II 그리고 III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클뤼니I은 910년 수도원이 처음 설립되었을 때의 모습을 가리킨다. 981년 마이올루스(Maiolus) 수도원장 하에 개축된 건물을 클루니II, 위고(Hugo)가 수도원장을 지내던 1089년에 완성된 모습을 클뤼니III이라고 부른다.클뤼니 II는 상하로 긴 라틴식 십자가형의 기본 구조를 지니는 3랑식 바실리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제단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좌우로 가로지르는 익랑을 마주한다. 익랑에는 외부로 출입이 가능한 문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제단방향으로 밀폐된 느낌의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이곳을 통하여 제단이 있는 내진으로 접근할 수 있다.클뤼니 III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교회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이다. 크기가 커짐에 따라 내부구조에도 큰 변화를 보이는데, 우선 3랑이었던 클뤼니 II에 두 개의 측랑이 더 붙으면서 5랑이 되었다. 천장의 구조에도 변화가 있다. 원래는 신랑 측랑 모두에 평평한 나무 패널이 천장을 덮고 있었는데, 이제 측랑에는 ‘교차형 궁륭’이 나타난다. 클뤼니 II는 하나의 익랑을 가졌지만 클뤼니III에서는 익랑 하나가 더 설치되어 십자가에 팔이 모두 넷으로 늘어났다. 구조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후진의 외벽에 모두 다섯 개의 소예배당이 마련되었다는 것과 내진과 후진사이를 지나다닐 수 있는 ‘주보랑’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클뤼니 수도원은 종교적 쇄신으로 유럽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클뤼니 III이 보여주는 건축구조는 프랑스의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 그리고 더 나아가 일 드 프랑스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고딕건축의 근간을 마련해 주었다. 클뤼니 교회는 1790년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과거의 위용과 웅장하고 장엄했던 모습은 폐허로 변해버렸고 지금은 그 흔적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을 뿐이다./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09-16

진영논리에 갇힌 궤변론자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온 나라가 진영논리의 광풍(狂風)에 휩싸여 있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이념’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언론인과 교육자도 진영논리에 갇혀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행태가 ‘조폭들의 집단 패싸움’을 닮아가고 있으니 나라가 걱정이다.문 대통령은 야당과 다수 국민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국 교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였다. 국론분열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명분으로 밀어붙였다. “검찰은 검찰 일을 하고, 장관은 장관 일을 하면 권력기관의 개혁이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변명은 너무나 궁색하다. 검찰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는 법무장관 아내는 기소되었고, 장관 자신도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데도 개혁의 적임자라는 말인가?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진보진영의 궤변은 ‘정의의 편이 아니라 진보의 편’이었다. 검찰이 후보자 아내를 전격 기소하자 청와대 인사들은 “미쳐 날뛰는 늑대의 칼춤”이라고 거칠게 비난하였다. 이는 대통령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임하라”고 당부했던 말과 완전히 모순된다.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검찰의 정당한 압수수색에 대해서 “사전에 협의 없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공격하였고, 유시민은 서울대 학생들의 순수한 촛불시위에 대해서 “한국당의 손길이 어른거린다.”고 폄훼하였다. 또한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후보자 딸이 의학전문학술지의 제1저자가 된 것이 문제 되자 “에세이를 제출한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옹호하였다. 교육감이라는 사람이 에세이(essay)와 학술지 논문(treatise)을 구별하지 못하고 ‘내 편 살리기’에만 급급하였으니 참으로 한심하다.이처럼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즉,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외눈박이 오류’를 범한다. 조국 사태의 본질이 부정·비리·도덕성 문제임에도 진영싸움으로 만들어 진실을 왜곡하였다. 강남좌파들이 사적 네트워크로 얽혀서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오죽하면 진보진영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진보언론 ‘한겨레’의 일선기자 31명은 성명을 내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기관지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한겨레의 칼날은 한없이 무뎌졌다.…정권에 따라 후보자의 검증 기준과 수위가 변하는 것이 한겨레의 논조인가”라고 비판하면서 편집국장단의 사퇴를 요구했다. 또한 진보원로 최장집 교수도 “과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촛불시위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자임하는 정부가 보여주는 정치적 책임이라고 대통령이 말하는 것인가”라고 강력히 비판했다.따라서 이제 대통령은 진영논리를 버리고 국민통합을 약속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과 같은 극심한 국론분열 상황에서 대통령이 진영논리에 매몰되면 ‘내란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온 국민의 대통령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2019-09-16

탈코세대

탈코는‘탈코르셋’의 준말이다. 코르셋은 흉부를 압박하는 보정 속옷을 뜻하는데, 탈(脫)코르셋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예쁘게’ 혹은‘여성스럽게’ 꾸미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주의 운동을 말한다. 2015년을 전후해 메갈리아·미투운동 등 20대 여성 위주의 2세대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탈코운동’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졌다.특히 탈코세대의 등장으로 화장품·헤어샵·성형외과 등‘꾸밈’과 관련된 업종에서 소비성향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16일 통계청 빅데이터센터가 제공한 ‘현대카드 매출기록’분석 결과에 따르면 화장품·헤어샵·성형외과 등 ‘꾸밈’과 관련된 업종에서 20대 여성의 매출이 꾸준히 줄고 있는 반면, 그 대신 자동차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20대 여성의 소비 변화에서 ‘탈코’의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기존의 여성상을 탈피하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함에 따라 점차 남성과의 연인·결혼 관계에서도 벗어나는 모습이다. 의류 등 배달이 가능한 제품 뿐 아니라 배달이 불가능한 여성 미용실 등에서도 거의 대부분 품목에서 일관된 소비 감소세가 보이고 있고, 또 성형·피부과 병원 등 미용 관련 의료 서비스 소비도 일관되게 감소했다는 점은 탈코세대의 특징적인 경향이 뚜렷하다.심지어 대학교 교실에서 탈코운동에 합류하는 여학생들이 늘면서 누군지 못 알아볼만큼 차림새가 바뀐 학생들이 많아졌다. 이런 경향은 지난해 ‘여성성을 강조하는 소비품을 하루라도 사지 말자’는 취지의 ‘여성 소비자 총파업 운동’이 있은 후부터 더욱 짙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탈코운동은 여성주의 운동에 실용적인 면이 접목되는 변화로도 해석될 수 있을 듯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16

조국 법무장관의 검찰개혁은 성공할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여야 정치권의 갈등이 초래되고 있다. 그 파장이 곧 수습될지 오래갈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키 어렵다. 여권이 내세운 그의 법무장관 기용배경은 그를 통한 검찰개혁에 두었다. 청문회 전부터 제기된 조 장관 딸의 논문 1저자 등재, 동양대 총장상 의혹, 사모 펀드 의혹 등은 야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찬반양론이 비등한 가운데 대통령은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장관 임용을 강행해 버렸다. 조국 법무장관의 검찰 개혁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임은 분명하다.이 나라 검찰 개혁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과거 군부 독재시절 보안사나 국정원처럼 특정 기관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검찰의 권력이 견제 장치 없이 행사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대로 권력을 행사한다면 이는 ‘정치 검찰’로 비난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공수처를 신설하고 검경의 합리적 역할 분담은 검찰개혁의 핵심 사안이다. 그 개혁의 정당성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 절차와 방법에는 아직 쟁점이 많다.조국 장관의 기용은 검찰 개혁을 검찰 자체 개혁에만 맡길 수 없다는 대통령의 결심이 작용한 결과이다. 그간 검찰 출신 장관의 셀프 검찰 개혁에는 언제나 한계가 따랐다. 과거 노무현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의욕적인 개혁 의지만으로 검찰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조정하려는 검찰 개혁안은 결국 검찰의 기득권 포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번 법무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합의한 검찰 개혁안이 검찰개혁의 토대가 되었다. 대통령이 야당 등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검찰 개혁의 절박성 때문이다.문재인 정부와 조국 법무장관의 검찰개혁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검찰 개혁을 주도하는 조국 법무장관은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검찰 내부의 반대와 조직적 저항을 극복하는 문제이다. 조직에 충성한다는 윤석열 총장이 검찰 조직의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검찰은 이미 청문회 전부터 조 장관 임용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고, 장관 부인까지 전격적으로 기소해 버렸다. 조국 장관은 취임 직후 검찰개혁 추진단 구성을 지시하고,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통해 강력한 개혁 의지를 밝혔다. 조국 장관이 검찰내부를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제가 검찰 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다음으로 검찰개혁은 국회의 입법화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청문회과정에서부터 자유한국당은 조국의 장관 임명을 결사반대했으며 불신임 결의안까지 제출할 전망이다. 공수처 신설과 검경의 수사권 조정을 골자로 하는 검찰 개혁 법안은 이미 패스트 트랙에 올려져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검찰 개혁에 대한 입법화는 야당의 엄청난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조 법무 장관은 이러한 검찰 내부와 정치권의 합의라는 내외의 압력을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 앞에 서 있다. 장관 부인이 기소되고 본인의 도덕적 신뢰까지 손상된 장관이 검찰개혁의 동력을 유지할 것인가. 현재는 검찰의 수사 등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2019-09-15

내 마음 중심에 있는 것 (1)

“쾅!”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갑자기 사무실 바닥이 요동칩니다. 건물이 좌우로 미친 듯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회의 중이던 마이클 힝슨 씨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집니다.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연달아 들립니다.‘지진이 난 걸까?’ ‘미사일에 건물이 파괴된 건가?’ ‘전쟁일까?’ 온갖 생각이 스칩니다. 시각 장애인으로 앞을 볼 수 없는 마이클 힝슨 씨는 본능적으로 안내견 로젤과 연결된 끈을 꽉 붙잡습니다. 911 테러 현장입니다.맨해튼의 세계 무역센터 78층에 위치한 컴퓨터 판매회사 뉴욕 지사장이었던 마이클 힝슨은 안내견 로젤의 침착한 인도에 따라 78층에서 탈출을 시도합니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인 마이클씨는 비상사태를 대비, 늘 건물의 구조나 주변 지형지물을 잘 익혀 두었던 터라 로젤의 도움을 따라 신속하게 건물 계단을 이용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원래 앞이 안 보이는 저로서는 타인을 보고 행동하거나 누군가를 따라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었어요. 늘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홀로 다니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겨우 건물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대피하려는 순간 100미터 떨어진 쌍둥이 건물 북쪽 타워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사방이 건물이 무너지면서 쏟아진 먼지와 잔해 폭풍으로 휩싸입니다. 안내견 로젤이 당황하지 않도록 힝슨은 호흡을 맞춰 뛰기 시작합니다. 잿더미를 피해 코너를 도는 순간 갑자기 로젤이 멈춥니다. 위에서 파편 더미가 쏟아져 내렸던 겁니다. 힝슨은 로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그냥 달리다가 파편 더미에 묻혀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겁니다.힝슨은 눈에 재 가루가 들어가 앞을 볼 수 없는 한 여인을 구출해 함께 로젤의 안내로 탈출에 성공합니다.“제 생명의 은인은 로젤입니다.” 그녀는 그 순간을 회상하며 눈물짓습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5

당신이 잘 있으면, 저도 잘 있습니다

김현욱 시인‘한 달에 한 권 읽기’ 책모임에서 8월의 책으로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을 읽기로 했다. 한동일 교수는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타(Rota Romana) 변호사다.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려면 유럽의 역사와 교회법, 라틴어와 기타 유럽어까지 능통하고 합격률이 6∼7%에 불과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단다. 학교에 있으면서도 영어 울렁증 때문에 원어민과 마주치면 쭈뼛거리기 일쑤인 나 같은 범인은 상상조차하기 어렵다. 영어, 불어, 독일어도 아니고 까다롭고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라틴어라니.라틴어, 하면 고등학교 때 읽은 스탕달의 적과 흑이 떠오른다. 치정(癡情) 소설이었지만, 아름다운 심리 묘사가 탁월했다. 주인공 쥘리앵 소렐은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마을 신부에게 라틴어를 배우며 야망을 키운다. 1830년대 당시 프랑스에서 성직자가 되려면 라틴어는 필수였다. 쥘리앵은 뛰어난 라틴어 실력으로 베리에르 시장인 레날 씨의 라틴어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레날 부인과 운명적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 상승을 꿈꾸던 쥘리앵은 정략결혼을 선택하며 파국을 맞는다.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으면서 ‘라틴어’는 출세의 문을 열기 위한 열쇠로 내게 각인되었다.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한동일 교수는 어떤 출세(?)를 위해 라틴어를 공부했을까 색안경을 끼고 읽다가 점점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현대판 쥘리앵의 라틴어 성공담이 아니었다. 지혜로운 삶의 태도에 관한 책이었다. 서강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타 학교 학생과 교수들, 일반인들까지 최고의 명강의라고 치켜세운 것은 그가 어려운 라틴어를 쉽게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라 라틴어를 통해 삶의 자세와 태도에 관해 조언했기 때문이다.이를테면, “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Si vales bene, valeo),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하던 첫 인사말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조언한다.“타인의 안부가 먼저 중요한, 그래서 ‘그대가 평안해야 나도 안녕하다’는 그들의 인사가 문득 마음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내가 잘 살 수 있다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요즘 우리의 삶이 위태롭고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중략) 내 작은 힘이나마 필요한 곳엔 더불어, 함께 하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주위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삶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더 나빠지지 않을 겁니다. 아니, 지금보다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요?”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라는 뜻의 라틴어 ‘베아티투도(beatitudo)’처럼 한동일 교수는 라틴어 수업 내내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는 싶은 것을 하라!”라며 우리의 어깨를 다독인다. 라틴어 수업을 읽으며 손난로처럼 따뜻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님을 떠올렸다.“당신이 잘 있으면, 저도 잘 있습니다.”

2019-09-15

100세 삶과 과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100세의 삶이 실현돼 이목을 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일본의 100세 이상 노인인구가 7만명을 넘어섰다고 했다. 통계 시점은 다르나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인구 3천908명인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숫자다.일본은 1963년부터 100세 이상 초고령자 통계를 잡아 왔으나 첫해 153명이던 것이 1998년 1만명을 넘어섰고 이후 줄곧 증가세라 한다. 현재 7만명의 100세 이상 노인 중 여성 비율은 88%다. 남성을 압도한다.유엔은 2009년 세계인구 고령화 보고서에서 ‘호모 헌드레드’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00세의 삶이 보편화되는 시대라는 말이다. 당시 유엔 보고서에서는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는 국가가 2000년 6개국에서 2020년에는 31개국으로 급증할 것을 전망했다.사람의 수명은 18세기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크게 늘어난다. 그 이전만 해도 35세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의학의 발달로 늘어난 인간의 수명은 이제 일본처럼 100세 문턱을 넘보고 있다.2015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이 1970년보다 무려 20살이 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과 40년 동안 20살이 늘어난 것은 기적적 변화다. 지금 선진국에서는 평균 10년에 2.5년, 1년에 3달, 하루에 6시간 수명이 는다고 한다. 인간의 수명이 의학술과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장차 얼마나 더 늘지 알 수 없으나 호모 헌드레드 시대가 열리고 있음에는 틀림 없다.호모 헌드레드는 인간이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닥친 100세 시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민거리다. 인생의 노후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15

‘달’과 ‘손가락’의 혈투

안재휘 논설위원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세상에 나돈 건 지난 1988년 10월이었다. 교도소 이감 중이던 지강헌(池康憲)을 비롯한 미결수 12명이 집단 탈주한 뒤, 9일 동안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서로 총을 쏘거나 경찰에게 사살 또는 검거됐다. 주범 지강헌은 인질극을 벌이는 와중에 “돈 있으면 무죄요, 돈 없으면 유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취임은 아무리 돌아봐도 무리다. 문재인 정권은 가라앉지 않는 여론 악화를 차단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하고 있다. 조국 장관 딸의 의학 논문 제1 저자 등재로 촉발된 공분을 ‘물타기’ 하는 일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아들의 서울대 실험실 사용 문제를 소환했다.때마침 제1야당의 공격수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 음주운전 물의가 발생하자 오만 논리를 다 동원해 역공에 나섰다. 조국의 수신제가(修身齊家) 실패 모욕에 ‘물타기’ 하려는 치사한 선동술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민심의 거울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기본적으로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검찰이 조 장관의 5촌 조카를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했다. 의혹의 키맨으로 불리는 혐의자가 날쌔게 해외로 달아났다가 장관 임명 직후에야 돌아오는 모습을 국민들은 과연 순수하게 읽어줄까. 조 장관 임명과정에서 불거진 논란 중에 최대의 모순은 ‘피의사실 공표’ 시비다. 조국 관련 수사기밀이 검찰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의심인데, 새삼스럽고 뜬금없는 불평으로 들린다.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아니고서는 출처를 따로 짐작할 수 없는 수사기밀들이 언론과 야당에 흘러 다닌다는 주장이다. 돌이켜 보면 언제 그런 적이 없었던가를 오히려 생각하게 된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 공표)는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생생하게 기억되는 일들이 있다. 대통령 자리에서 끌려 내려와 치욕스러운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수사는 시종일관 ‘피의사실 공표’의 광풍 속에 펼쳐졌다. 광폭으로 전개된 소위 ‘적폐 청산’ 수사는 또 어땠나. 정치보복으로 비친 그 편파 수사 역시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선동을 앞세워 자행돼온 게 어김없는 사실 아니던가.그때는 괜찮고 지금은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진 유치한, 법치를 향한 어불성설의 ‘내로남불’ 의식이 탄식을 부른다. 온전한 정신이라면 그때도 잘못됐고, 지금도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도둑놈 잡으라고 소리친 사람을 망신주기 위해 온갖 허물을 털어내는 구상유취한 짓은 제발 멈춰야 한다. 달을 보라 했더니 가리키는 손가락만 시비하는 일에나 몰두하는 구태정치는 청산돼야 한다. 아니, 그 ‘달’과 ‘손가락’의 혈투, 유권무죄(有權無罪)의 몰염치에 짓밟혀 쓰러지는 민생과, 무너지는 나라의 미래를 살려내야 한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2019-09-15

산소카페 청송군, 황금사과를 낳다!

윤경희 청송군수고대 그리스의 우화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황금사과를 낳는 청송군이 있다. 청송사과는 청송을 대표하는 특산품이 된지 오래다. 7년 연속으로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을 수상하며 이를 증명하고 있다.지역 농수산물이 특산품이 되기까지는 최고의 품질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탁월한 자연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청송군은 해발 250m 이상의 산간지형이자 고지형 분지이며 생육기간 중 일교차가 13.4℃로 커 사과 재배에 아주 적합하다.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교차하는 등의 날씨 여건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타 지역에 비해 고목의 사과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데다 계속해서 시대에 맞는 품종으로 경신하고 있다. 관수 및 지주시설 등에 대한 투자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품질 좋은 퇴비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지속적인 교육으로 사과재배 기술까지 월등히 향상됐다. 이런 여러 조건들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딱딱 맞아 들어가 명품 청송사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시너지 효과라는 말이 있다. 여러 요인이 한꺼번에 작용해 하나씩 미칠 때보다 더 커지는 상승 작용을 일컫는다. 청송사과가 그 예에 딱 맞는다. 천혜의 자연이 만들어 준 생육 환경이라는 바탕 위에 다양한 정책이 덧대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시너지 효과는 명품 청송사과의 품질, 유통 및 홍보 등 다방면에서 업그레이드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먼저 남북농업교류협력사업을 들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축적해놓은 사과 재배기술을 북한으로 이전하여 청송사과원을 조성한다면 ‘통일사과’, ‘평화사과’라는 브랜드와 또 ‘국민사과’라는 이미지까지 얻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브랜드 가치의 상승을 불러올 것이며 사과의 국내 소비가 확산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해외 수출로 확대되리라 전망한다.두 번째는 청송사과의 한국시리즈 진출이다. 지난 해 한국시리즈 2차전이 열린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청송황금사과 한국시리즈 나들이’라는 주제로 대대적인 청송사과 홍보를 펼쳤다. 현장에서 사과 맛을 본 서울시민들의 반응은 야구장의 함성만큼이나 뜨거웠고 청송사과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일조했다.다음은 전국 146개 이마트에 청송사과를 납품하게 된 일이다. 청송 사과 판매를 위해 ‘세일즈 군수’가 되겠고 임기 초부터 굳은 결의를 다졌다. 전국 최고의 사과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홍보 마케팅 활동과 유통시설 확충, 지속적인 브랜드 관리를 통한 대도시 대형마트로의 진출 등 다양한 판로를 개척해 농가 수입창출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게 됐다.이밖에 국내 최대 농산물 도소매 매장인 서울 하나로클럽(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지역 농협들과 함께 청송사과 홍보 판촉행사를 벌이는가 하면 청송사과GAP사업단, 농촌지도자청송군연합회 등의 지역 농민단체들도 부산, 포항 등지에서 홍보에 발 벗고 나서며 청송사과의 위상을 견고히 다졌다.청송군은 최근 청송황금사과 브랜드 ‘황금진’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개발했다. 황금색 품종인 시나노골드의 브랜드를 선점하기 위한 청송군의 야심찬 계획이자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청송사과의 영예를 이어갈 황금사과 출시를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이를 통해 청송사과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황금사과 시장에 선제 대응해나갈 전략이다.여기에 어깨를 나란히 해 올해 청송사과축제의 주제를 ‘산소카페 청송군! 황금사과의 유혹’으로 정했다. 깨끗한 공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 청송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청정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황금사과’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지기 위한 수단이다. 또 나흘간 열렸던 청송사과축제를 닷새간으로 하루 연장키로 했다. 오는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5일간 열린다.최근에는 청송사과유통센터(APC)를 새롭게 운영할 법인이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평가단 대부분이 농업인으로 구성돼 농민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됐다.결론적으로 청송사과의 브랜드 가치와 명성을 한 단계 드높이고 급변하는 유통시장에 대응할 독점적이고 시장 선도적인 브랜드 디자인을 활용해 청송황금사과를 전국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겠다. 청송사과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발돋움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2019-09-15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할 책임

허진욱 직장인 생각학교ASK 연구원요즘 딸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말로만 듣던 중2병 증세일까? 같이 밥을 먹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이내 표정이 굳는다. 레이저 눈빛으로 아빠를 째려본 후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잠깐 당황스럽지만 허허 웃으며 이내 마음을 추스른다.딸 모습은 33년 전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니다. 나는 딸보다 백배는 더 심했을 것이다. 아침부터 학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런 미성숙한 나를 인자한 표정으로 한 번도 감정 상하지 않게 깨워 주던 어머니 마음을 이제 와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중이다. 늦잠 때문에 아침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려 집을 뛰어나가면 어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금이라도 먹이려 했다.평생토록 ‘자식이 행복’이라며 나를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 준 어머니 덕분에 지금 나도 존재한다. 권투를 하다 다쳐 얼굴에 멍이라도 생기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걱정했다. 멍을 풀기 위해 받은 달걀로 우스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비비고 있으면 그 모습에 파안대소하며 웃는 어머니로부터 나는 행복의 방법을 배웠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먼저 웃음을 잃지 않을 때 행복해지는 비결을.지난 주말 요양병원을 찾았다. 자식을 못 알아보는 어머니는 그래도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내게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딸에게 줄 책임이 있다. 중2병이 심하게 도지면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난데없이 우락부락 인상 쓰지만 아무래도 어떤가. 그저 사랑스럽다.‘욱’하고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수 있다.권투 선수였던 나는 훈련이 힘들어도, 시합을 못 해도, 친구 때문에 힘들 때도 늘 어머니에게 짜증 냈다. 어머니는 폭우를 막아주는 우산처럼 다 받아주고 끝까지 사랑을 잃지 않았다.2018년 2월 11일 새벽 5시 3분, 모두가 깊이 잠든 고요한 새벽에 갑자기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고 흔들리고 있는 느낌처럼 몸이 떨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곧장 딸 아이 방으로 달려간다. 딸도 놀라 울면서 방에서 뛰어나온다. 아내와 딸아이를 진정시키고 무슨 일이진 TV를 켜보니 포항에 규모 4.7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TV와 영화로 접했던 지진을 실제로 겪어 보니 그 위력은 대단했다. 집이 이렇게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배웠다.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기 전에 지켜야 한다. 비단 가족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잃어가는 소중한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맑은 공기다. 미세먼지가 요즘처럼 기승 부리기 전에는 공기의 소중함을 제대로 모르고 살았다. 봄마다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후에 비로소 맑은 공기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미세먼지는 노약자나 어린이에게 아토피, 천식, 비염을 치명적으로 유발한다. 노인과 어린 아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다.포항 남구 지역 생활폐기물 시설(SRF) 굴뚝 높이 때문에 문제가 많다. 다른 지역 소각장은 굴뚝 높이가 150m인데 포항은 불과 34m다. 이 낮은 굴뚝은 인근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아이에게는 치명적이다. 쓰레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다이옥신, 발암물질, 미세먼지 등 환경 오염물질이 그 연기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굴뚝을 더 높게 쌓으려면 물론 돈이 들 것이다. 소리없이 우리 아이들 폐와 몸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무서운 물질들이 주는 피해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자녀가 아픈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부모로서 큰 고통도 없을 것이다. 방심하다 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책임감을 갖고 소중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자식이 당신에게 아무리 짜증을 내고 힘들게 해도 환하게 웃어 주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사랑과 긍정, 희망, 감사를 배웠듯 지금 내가 딸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 중2병이 아무리 심해도, 세상이 나를 좌절하게 하여 힘들어도 내가 웃을 수 있고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소중한 사람이 곁에 안전하게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19-09-15

조국 장관과 중국 고사

사실상 만신창이가 된 조국 후보자를 반대 여론이 우세한데도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에 기용했다. 조국 사태는 일시적 소강국면에 들어선듯하지만 지금부터 또다른 국면에 돌입할 것이다. 이것이 정국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 중국 고사를 통해 조국 사태의 의미를 한번 짚어 보았다.첫 번째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다. 읍참마속은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벴다는 뜻이다. 공정한 업무 처리와 법적용을 위해 사사로운 정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촉나라 승상 제갈량이 가장 가까운 친구의 동생인 마속을 군령 위반죄를 물어 참수형에 처한 것을 두고 나온 일화다. 더 큰 전쟁에 이기기 위해 불가피했던 결단이었다. 머리가 비상하고 군략에도 능한 젊은 장수의 목을 베면서 제갈량도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문 대통령도 조국 후보자의 장관 임명을 두고 밤새 노심초사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고심 끝에 내린 선택이 향후 정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제갈량의 선택과는 달랐다는 점이 눈에 띈다.두 번째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고사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다. 서로가 의지하고 있어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운 관계를 뜻한다. 조국과의 돈독한 관계이기 때문에 이번 결단이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면 대통령에게도 역풍이 몰려 올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마지막은 권토중래(捲土重來)다. 항우가 유방과 패권을 다투다 패하여 자살한 것을 두고 당나라 시인 두목이 항우가 좌절을 딛고 훗날 새롭게 도모하지 못하였음을 아쉬워한 시에서 나온 고사다. 조국 장관의 검찰개혁이 만약 성공한다면 이 고사는 조국 장관의 성공을 뒷받침할 고사가 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9-10

민주가 문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한 달의 소동. 장관 한 사람을 살펴 임명하기 위하여 어지러웠다. 결과를 놓고도 편갈린 마음들이 혼란스럽다. 보수와 진보, 이념 성향을 기준으로 딱 절반으로 나뉘었다. 틀린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확신범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무엇을 향하고 있을까. 그게 혹 민주주의가 아닐까.민주주의(民主主義). 어원을 찾으면, ‘국민이 다스리는’ 정체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군주나 독재자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지향성. 이를 구현해 가는 길에 ‘어떻게’를 놓고 보수와 진보가 갈린다. 그래서 우리 국회는 국민의 손으로 선출한 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하여 법을 만든다. 그 법을 역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하여 이끄는 행정부가 시행한다. 이 모든 일들이 국민을 위하여 정의롭게 진행되는지 판단하기 위하여 사법부가 존재한다. 각료의 자격과 도덕성을 살피기 위하여 국회에서 열리는 청문의 과정은 ‘국민’이 따져보는 일이 아닌가. 한 달의 진통과 청문회를 굳이 가진 뜻도 ‘국민의 검증’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국회는 이념을 놓고 갈리었을지언정, 청문 중이었다. 청문 대상 후보자를 놓고 검증하던 말미에 이르러 돌발변수가 발생하였다. ‘검찰’의 개입. 일단의 국민은 불편하였으며, 다른 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국민을 대표하여 국회가 청문을 진행하는 중에, 행정부에 속한 ‘검찰’이 재단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돕는 일일까 아니면 해가 되는 것일까.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을 살피는 국회의원들은 이 일이 부끄러울까 아니면 자랑스러울까.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당신의 마당이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이들의 판단에 어지러워진 모습이 아니었던가. 이념을 내려놓고 생각해도 이는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간섭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닌가. 앞으로 언젠가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 땐 또 어찌할 것인가.개혁(改革)은 누구를 위하여 하는가. 특정 이념에 복무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개혁이야말로 모든 국민에 공평해야 하며 누구나 인정하는 새로움을 지향해야 한다. 보수나 진보에만 유리한 개혁은 정권이 바뀌면 반드시 도루묵이 된다. 오늘 정부가 의도하는 개혁에도 ‘국민을 마음에 담은’ 구상이 실렸기를 기대한다. 오늘 국회는 ‘국민을 위한 청문’이 국민의 기대를 담아 끝까지 정리되지 못한 일을 돌아보아야 한다. 검찰의 권력이 도를 넘었는지 판단도 국민을 위하여 내려야 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도 국회는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되기 위하여 국회의 본질을 회복하여야 한다.문제는 이념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국민이다. 국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정의롭게 구현해야 한다. 이념에도 휘둘리지 않을 개혁을 당겨내야 한다. 믿음과 소신에 따라 정당한 주장도 펼쳐야 하고 필요한 타협에도 나서야 한다. 완성판 민주주의는 없다.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이 마침내 스스로 다스리기 위하여. 문제는 민주주의다.

2019-09-10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이 72명 아이들에게는 주변 사람 중에 적어도 한 사람 이상 그 아이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어른, 믿어주는 어른이 존재했다는 겁니다.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삼촌, 이모, 이웃 중에서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 주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무조건 적인 사랑을 베풀어 아이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심리적 언덕이 되어 준 사람이 반드시 한 명 이상 존재했다는 것을 에미 워너 연구는 입증합니다.이 한 사람이 없는 아이들, 즉 나머지 129명 아이들은 악순환의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만, 믿고 지지해 준 한 사람이 있었던 아이들 72명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에미 워너 교수는 이 속성을 회복탄력성(Resilience)라고 이름 붙입니다. 어릴 때 받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이 회복 탄력성의 근간을 이룬다고 결론을 내립니다.한 사람의 믿음이 우리를 살립니다. 덴마크 농가 가난한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1955년부터 40년간 걸친 하와이‘카우아이 종단연구 1’을 통해 그 믿음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비록 그가 하는 행동이 이해할 수 없고 타산이 맞지 않으며 하는 일마다 최악의 결과를 낸다 하더라도, 비난하거나 채찍질하거나 찌르는 말을 하지 않고, 덴마크 할머니처럼 믿어주고 맞장구쳐주고 기뻐해 준다면 그 한 사람의 지지와 격려로 세상은 지금보다 한결 아름답고 멋지게 변할 것을 믿습니다.어둠으로 캄캄한 방에는 창문이 여럿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창문만 있어도 그 방은 신선한 공기와 환한 빛으로 가득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0

지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전국 각지의 도시들은 어떻게든 소멸도시의 위험에서 벗어나 생존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다. 일부 도시들은 중앙 관청이나 대형 공기업의 이전 또는 혁신도시 지정 등에 힘입어 도시의 면목을 일신하기도 하였다. 그에 따라 인구증가라는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자 다른 도시들도 이와 유사한 발전 전략에 주목하는 모습이다.하지만 적어도 포항만큼은 유사한 전략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포항 정도의 지방 대도시들은 대부분 지난 수십 년 동안 산업과 소비, 물류 등 경제기반이 도로교통망과 밀접한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오늘의 도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때문에 어떠한 단일 공기업의 본사나 대기업의 공장 하나를 유치한다고 해서 도시 전체 네트워크가 재편되거나 새로운 산업의 생태계가 조성될 정도로 파급력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결국 이들은 지금의 기반을 활용하여 활로를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도시가 지닌 장단점, 그중에서도 약점을 제대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사실 포항시만큼 잠재력이 큰 지방도시도 드물다. 적어도 일정 수준만큼은 도시의 생산과 고용 그리고 소비를 책임지는 철강 산업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발전의 계기도 생겨났다. 최근 영일만 해안선 주변의 구도심 일원이 영일만관광특구로 지정된 것이 그것이다. 이번 기회에 해양관광도시 포항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야만 한다.그렇다면 이것을 방해할 포항의 약점은 무엇일까. 하나만 꼽는다면 영일만이라는 천혜의 수변공간임에도 해운대 마린시티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바다에서 조망할 만한 랜드 마크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포항이 자랑하는 포스코 야경도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하지만 독보적인 야경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영일만 바다에서 바라보는 송도와 영일대해수욕장에는 단 하나의 고층빌딩도 찾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해양관광도시 포항으로 가는 길을 막는 최대의 약점이자 걸림돌이 아닐까 한다.사실 멋진 수변공간을 가지면서도 초고층 특급호텔이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부산기상청 포항기상대가 송도에 자리잡은 이래 송도가 고도제한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기상대는 일제강점기였던 1943년 설치된 포항측후소가 전신인데 1963년부터 국내 유일의 고층기후관측소로서 우리나라 기상관측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송도에서만 기상관측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거의 포항은 모르지만 십여 년 이상 지역경제가 정체된 지금의 포항은 어떠한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약점을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해양관광도시의 핵심은 영일만관광특구다. 그리고 그 특구의 꽃인 송도는 ‘영일만의 홍콩’처럼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지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포항이 해양관광도시로 거듭나려면 먼저 송도개발의 약점인 포항기상대문제부터 해결하여 어떠한 랜드 마크라도 들어설 수 있도록 환경부터 조성해야만 한다. 포항이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도시가 생존하려면 주어진 환경에 순응만 해서는 안되고 필요하다면 아예 그 환경조차 바꾸려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2019-09-10

추석(秋夕)과 밀레의 ‘만종’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30도를 넘나들던 한여름의 더위가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벌써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이 성큼 다가와 버렸다. 한여름 농부들의 고단한 땀방울로 수확한 곡식들을 조상과 신들에게 올리는 감사의 풍습은 동·서양의 공통된 문화이다. 중국은 중추절, 일본은 오봉절 그리고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과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등은 인류가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경배의 기념일이다.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며 농사에 의존해 생활했다. 이후 점차적으로 유럽 전역에 도시화가 확산되면서 열악한 농촌 환경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가치가 살아 있었던 농촌생활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프랑스의 빈촌인 바르비종으로 이주해 죽는 날까지 그곳에 머물며 자기만의 농민상을 화폭에 담은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농민들의 노동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진정한 수확의 기쁨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화가였다.그가 남긴 ‘이삭줍기’와 ‘만종’은 그의 대표작들로 평가받고 있는데, 둘 다 같은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로 그중 ‘이삭줍기’는 1857년 살롱에 출품되어져 당시 비평가들의 뜨거운 공방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으로 유명하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그림 속에서 빈민계급에 의한 혁명 사상을 보고 비난했으며, 중산계급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진보적인 좌익계통의 비평가는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읽고 이것을 칭찬하며 환영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비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려는 일관된 작가관을 구사했었다. 그림속의 부부는 감자를 수확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기도를 하고 있다. 이들의 발 근처에는 쇠스랑과 바구니, 자루, 손수레 같은 농기구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렇듯 그림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은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지만, 관람자는 그림의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그림 전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웅장함과 차분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밀레의 독특한 화법과 더불어 크게 부각되어 그려진 인물의 모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농부 부부는 마치 그림의 전경으로 분리된 것처럼 그려져 외로운 느낌을 강하게 주지만, 화폭 전체를 차지하면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그림의 모든 소재는 농촌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림 속 여인들은 어렵고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조금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스스로의 노동으로 떳떳하게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며 어떤 노동이든 노동은 인간을 존엄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사람이 노동하기 때문에 천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리기 때문에 천박해지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잃게 된다는 농민화가 밀레만의 깊은 철학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밀레가 가졌던 삶의 철학처럼 우리 농부들의 진정한 노동의 가치와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한다.

2019-09-10

네바다 주-미국여행 2

캘리포니아 주에서 네바다 주로 넘어가 들어간 곳은 라스베이거스, 도박의 도시였다. 우리가 머무른 곳은 피라미드 모양을 흉내낸 호텔, 그래서 그런지 안에서 길 잃어버리기 딱 좋았다.강행군 여행 탓에 내일이면 당장 애리조나 그랜드 캐년으로 떠난다니 여기서 ‘한 재산’ 날릴 기회는 오늘밖에 없었다.도박도 재미없고 마굴 구경도 재미없고, 그래도 낮밤이 뒤바뀌어 잠은 않고, 새벽에 억지로 일어나 도박장에 내려가 룰렛 게임 구경하다 심심풀이로 울긋불긋 동그란 원판이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손가락 튕기다 아침을 맞는다.버스는 또 다시 광야를 달린다. 나라가 아름답다기보다 넓디 넓은 황무지다. 미국은 윤택하다고들 말하는데 그 대신에 끝없이 이어지는 메마른 황야, ‘사보텐’ 선인장 풍경이다. 철 들기 전 어릴 적에 나는 이 일본말 ‘사보텐’을 만화책에서 배웠다. 카우보이들이 마차를 타고 선인장 삐죽삐죽 솟아난 광야를 달리는 만화는 도대체 왜 1970년대 중반의 우리 만화책에 등장했던 것일까. 가이드 분이 갑자기 노래를 틀어준다.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채찍을 말아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저 멀리 인디언의 북소리 들려오면 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1959년에 파라마운트레코드에서 찍어낸 유성기판에 가수 명국환의 이 노래가 들어 있었다 한다. 6·25 전쟁으로 미국이 이 나라의 시장과 영화관과 군사도시를 휩쓸고 있을 때 이 ‘이국종’ 노래도 꽤나 인기몰이를 했다는 것이다. 황야를 달리며, 나는, 윤택함보다 이 광활한 황무지, 희박한 인구밀도가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나이들고 너무 오래 작은 나라 안에서만 살았던 것이다.잠깐 원고에 한눈 파는 사이에 버스가 그랜드 캐년 지역으로 들어선다고 한다. 어디가? 어째서 그랜드 캐년이란 말이야? 땅가죽이 양옆으로 좍좍 갈라지고 천길, 만길 낭떠러지가 코앞에 박두해 있어야 하는 것을. 그러나 있다. 버스 주차장에서 내려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갑자기 측량할 수 없는 광대한 단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육백만 년 동안의 지질학적 활동과 콜로라도 강의 침식 작용이 만들어낸 장대한 결과물. 이런 것이었나? 나는 이쪽 땅끝에 서서 저쪽 건너갈 수 없는 ‘피안’의 땅을 바라본다. 부연 저편 절벽은 무슨 스크린화처럼 공중에 떠 있다. 왔다. 오기는 왔다. 영영 이런 곳에는 못 올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낭떠러지 끝에 꼼짝 않고 서서 생각한다. 나는 이편에 아직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9-10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어요. 그러니 추석에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제발 당신의 조카에게 사촌에게 취직은 했니 따위의 말은 묻지 말기 바란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하이네켄은 인턴 채용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배포한 일이 있었다. 인턴지원자 1천734명 중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킥오프’, ‘응급처치’, ‘출구’ 라는 세 가지 면접방식을 소개했다. 먼저 지원자는 면접자의 손을 잡고 면접장소로 이동한다.인터뷰 도중 면접관이 쓰러지는 응급상황이 발생하고, 비상벨이 울려 건물 밖으로 탈출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최종 후보자 세 명을 선발한다. 하이네켄 직원이 투표를 통해 세 명 중 한 명을 뽑는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면접자는 유벤투스 경기장에서 마지막 미션을 행하게 된다.마지막 미션은 커다란 전광판을 통해 채용 사실을 통보받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으로부터 축하를 받는 일이다. 하이네켄은 이러한 면접방식을 통해 전형적인 채용과정에서 파악하기 힘들었던 지원자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했고, 창의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 광고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여기서 꼭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여기에 지원자가 1천734명이라는 것이며, 더욱 정유한 것은 이 많은 사람 중 겨우 한 명을 뽑았다는 것이다. 1천734: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가이 루히팅이란 지원자는 좋겠지만 나머지 1천733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채용된 사람은 유벤투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에게 환호와 갈채를 받았겠지만, 나머지 1천733명은 어디서 어떻게 위로받아야 하는 것일까? 어쩌다 취업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일까? 취업을 했을 뿐인데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은 왜 모두 자기 일처럼 그렇게 열렬히 환호하는 것일까?‘미생’이란 웹툰은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이 드라마는 ‘미생’ 신드롬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여기에는 한국 기원의 연구생이었으나 프로입단에 실패한 장그래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장그래는 프로기사의 꿈을 접고 대기업의 계약직 직원에서 정직원으로 채용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웹툰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장그래가 꺼내놓은 일기장이다. 장그래는 한국기원 연구생 시절 두었던 대국을 기보로 남겨 왔다. 이러한 습관은 회사 생활에서도 이어져 그날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매일매일 일기를 쓴다. 문제는 그렇게 열정적이며, 성실하게 일했고, 높은 실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는 채용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 물어야 한다. 어쩌다 청년취업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일까?활판인쇄를 하던 시절, 식자공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원고대로 활자를 활자판에 배열하는 일을 했다. 인쇄술이 발전하자 식자공은 사라졌다. 통신기술이 발전하자 전화교환수라는 직업이 사라졌다. 증기선이 나오게 되자 뱃사공이 사라졌으며, 자동차가 보급되자 인력거꾼이 사라졌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무수한 직업이 있었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많은 직업이 사라졌다. 스탠퍼드대의 토니 세바(Tony Seba)는 2030년에는 현재 있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으며 미국의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Tomas Frey)는 20억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한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는 5년 후에는 현재의 일자리가 710만여 개가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 200만여 개 만들어져 결국 500만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 답은 분명해진다. 취업이 어려워진 것은 기술산업의 발전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1970년대를 기준으로 근대적 자본주의(1970년 이전의 자본주의)와 탈근대적 자본주의(1970년 이후의 자본주의)를 구분한다. 그는 근대적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가 생산과 노동이었다면, 탈근대적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가치는 소비와 자유라고 말한다. 생산과 노동이 중시되었던 시대는 일자리가 남아돌았다. 그런 이유로 언제든 노동시장에 투입될 수 있는 예비 노동 인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국가는 실업자를 부양했다. 하지만 소비를 통해 자유를 만끽하는 1970년대 이후 실업자는 골칫거리이자 ‘잉여’ 인구가 되었다. 생산자사회에선 누구건 일해야 하지만 소비자사회에선 누구건 소비해야 한다. 과거에는 일하지 않는 자가 문제였다면, 오늘날은 소비하지 않는 자가 문제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일하지 않는 자를 일하게 하고, 소비하지 않는 자를 소비하게 만들면 사회적 문제는 많이 해결된다. 그런데 어떻게 소비하게 만들 것인가? 직업은 한정되어 있고, 한정되어 있는 것마저 줄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바우만이 내놓은 대책은 노동과 노동시장을 분리하고, 소득 자격과 소득 능력을 분리하라는 것이다. 어렵게 들릴지 모르나 기업은 노동자를 채용하려고 애쓰고, 노동자는 실업자와 노동시간을 나누고, 정부는 실직자가 살아갈 수 있도록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 정부는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실직자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다시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기에 제2, 제3의 인생을 설계할 필요가 있는 고령인구에 관한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검토되어야 한다.이런 상황이니 올해만은 제발 취직을 못한 취준생을 괴롭히지 말 것!

2019-09-10

개 코 이야기

개는 후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한다. 개의 뇌는 인간의 뇌보다 10배정도 작지만 개의 후각망울(olfactory bulb)은 인간에 비해 3배나 크고 1차 신경세포의 숫자도 인간에 비해 40배나 더 많다. 개는 특정 유기화합물에 대해서 인간이 맡을 수 있는 냄새 농도의 몇백분의 1만 되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심지어 몇백만분의 1만 되어도 냄새를 맡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개는 한꺼번에 뒤섞인 냄새들 중에 자기가 관심있는 냄새를 찾아내어 구별하는 능력이 있다. 개가 마약탐지견이나 수색견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인간의 경우 코의 감각수용체는 5백만개이지만 개는 약 2억 2천만개를 가지고 있다. 개는 인간의 한 발자국과 다음 발자국의 미묘한 냄새의 차이도 구별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른 냄새 정도의 차이까지도 개 코는 감지한다는 것이다.개가 이렇게 냄새를 잘 맡는 이유는 숨을 내쉬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기류를 만들어 내고 이것이 들숨의 속도를 높여주어 더 많은 새로운 냄새가 안으로 빨려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코를 촉촉이 유지하여 작은 분자들이 코의 외부조직에 들러붙고 분자들이 붙으면 용해되어 내부 운송기관을 통해 콧속의 감각세포를 활용하여 냄새를 감지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영국의 경찰견인 블러드하운드는 개 중에서 후각이 가장 발달한 종이다. 몸의 많은 특징들이 특별히 강한 후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머리를 약간만 흔들어도 귀가 펄럭이면서 더 많은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며,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침은 보습코기관으로 더 많은 액체가 흘러들어가게 하는 완벽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도그타임에서 발표한 후각능력에 대한 개의 순위는 1위가 블러드하운드, 2위가 바셋하운드, 3위가 비글, 4위가 저먼 셰퍼드 5위가 래브라도 리트리버였다.최근에는 개를 위한 아로마쎄라피가 유행이다. 아로마는 식물에서 채취한 정제유를 사용해서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고, 개의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좋은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람의 경우 좋은 향기를 맡으면 뇌파의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는데 개도 비슷한 체험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에게 아로마세라피를 적용할 때 사람에게 쓰는 농도를 그대로 쓰는 것은 자극이 강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주의할 사항은 개가 어떤 향기를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이동훈만일 개가 싫어하는 냄새를 억지로 맡게 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높아질수 있으니 아로마를 사용하기 전에 개가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반드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희석한 아로마를 개의 코에 가까이 대고 싫어하는 기색은 없는지 흥미를 보이는지 먼저 관찰해 본다. 우리 개가 좋아하는 향을 선택했다면 아로마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거실이나 집의 분위기에 맞는 사용방법을 찾아야 한다.향을 피우거나 개집 바닥에 깔아주는 타월에 아로마 오일을 소량 묻혀두는 방법도 좋다. 까다롭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개의 경우에는 아로마 요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개의 경우 아로마 향을 피워 마음을 진정시킬수도 있다.아로마 요법은 우선 주인이 좋아하는 향을 고르고 개에게도 적용되는 향을 선택해보자. 라벤더 향은 긴장을 완화시켜주는데 효과가 있어서 쉽게 흥분하는 개, 잘 짖는 개 산만한 개에게 적합할 수 있다.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서 개가 출산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레몬이나 오렌지와 같은 감귤류 향은 기분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소심한 성격의 개의 기분을 밝게하는 효과가 있다. /서라벌대 교수(마사과)

2019-09-10

역경을 이긴 아이들의 특징

“말을 암소하고 바꿨지.” “어머, 우유를 실컷 먹을 수 있겠군요. 버터와 치즈도 식탁에 올릴 수 있고요. 정말 잘 바꿨어요.”“암소를 양하고 바꿨다오.” “그게 더 나은걸요! 양젖과 치즈와 털옷과 털 양말까지! 암소는 아무리 털이 많아도 그런 건 주지 않잖아요? 당신은 현명해요.” 할머니는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양을 거위하고 바꿨는데?” “그래요? 올해는 거위 요리를 먹게 되었으니 더 좋아요.” “거위를 암탉과 바꿨지.” “최고예요. 닭이 알을 낳아 부화하면 병아리를 얻게 될 테니까요. 이제 마당에 닭이 가득하겠군요. 바로 그거예요.” “그렇지? 하지만,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꿔 버렸는걸.”“어머나, 당신께 키스해 드려야겠군요. 영감, 고마워요! 오늘 저녁 당신을 부추를 넣은 오믈렛과 베이컨을 해 드리려고 했는데 부추가 없지 뭐예요. 그래서 옆집에 가서 부추를 조금만 빌려 달라고 하니 이러더군요. ‘빌려 달라고요? 하지만, 할머니 집에는 썩은 사과 한 알도 없을 텐데. 어떻게 빌려줄 수 있겠어요?’ 그 부인에게 썩은 사과 한 자루를 통째로 빌려줄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재미있어요, 영감.” 할머니는 남편 입술에 키스합니다.“거참 유쾌하군. 갈수록 손해를 보는데도 저렇게 너그러우니, 이 정도면 금화를 줄 가치가 충분히 있어.” 부자 영국인 두 사람은 내기에서 진 것을 인정하며 할아버지에게 금화 한 자루를 선물하지요.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에이미 워너라는 심리학자는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가장 열악한 아이 201명을 관찰합니다. 3분의 2는 심각한 문제아로 자랐지만 72명은 최악의 환경에서도 대도시 남부럽지 않은 정상 가정 아이들처럼 성장합니다. 72명 성장에 담긴 비밀을 연구하던 중 이들에는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공통 속성이 있음을 발견하지요.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9

9월, 배려의 달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얼마 전, 결혼한 지 5년이 채 안 된 후배가 추석 인사 겸 감사의 뜻도 전한다며 연락이 왔다. 그런데 긴 한숨을 푹~ 내쉬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즉슨, 작년까진 회사에 급한 일로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었는데 올해는 가야 해서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명절 때가 되면 연중행사처럼 스트레스증후군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하니, 괜한 씁쓸함이 몰려왔다.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명절 때만 되면 어김없이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이들이 많다. 큰 명절을 쇠고 나면, 이혼율이 평소보다 몇 배나 급증한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물 만난 고기처럼, 명절 연휴가 긴 경우는, 그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서둘러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명절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자의 몫이지만, 어쩌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옛날, 추석에 행해진 많은 풍습들 중에 반보기라는 것이 있다. 이는 며느리가 떡, 술병, 닭이나 달걀꾸러미 등을 들고 친정에 가는 근친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때, 친정과 미리 통문하여 친정과 시집 중간의 경치 좋은 곳을 정해, 친정어머니와 만나게 하던 풍습이었다. 이때, 딸과 친정어머니는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서 만났는데, 중간에서 만난다 하여 중로회견(中路會見)이라고도 했다. 한번 결혼하면 친정에 가기가 쉽지 않았던 그 때, 그래도 추석동안만은 짧지만 친정어머니와의 회포를 풀도록 한 시댁의 아름다운 배려였던 셈이다.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할까? 명절 때만 되면, 친정 방문을 앞두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침부터 서둘러 친정에 가려고 온갖 일거리를 바삐 마무리하는 며느리와 그 마음을 모른 채 늑장부리는 남편 간의 미묘한 감정 다툼, 빨리 가라 재촉하는 시부모님이라면 참 다행이지만, 점심까지 먹고 가라고 붙들면 이제 며느리는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짜증스러울 법하다. 차라리 일을 핑계로 시댁에 안 가거나 해외로 멀리 갔으면 하는 마음마저 생겨날 터.옛날, 추석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여름내 고생한 농군들이 소놀이(일을 잘한 상머슴을 농우에 태워 마을을 누비던 풍습)·거북놀이(“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큰 집을 찾아가던 풍습)를 하면 주인들은 음식을 크게 대접하였고, 가난해서 추석 음식을 장만 못하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었고, ‘추석빔’이라 하여 머슴들에게까지 새 옷을 마련해 주었으며, 친정에 자주 못가는 며느리를 위해서는 손수 음식들을 장만해서 친정어머니를 보고 오라 독려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 알뜰살뜰 챙겨주는 아름다운 풍습들이 아닐 수 없다.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명절은, 진정한 명절이 아니다. 비록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개인주의가 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그래도 추석이 있는 9월 달에는, 한번쯤, ‘나’가 아닌 ‘우리’, ‘너’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햇과일, 햇곡식만 풍성한 계절이 아니라 진정 마음과 정신이 풍성한 계절 가을일 수 있게 말이다.

2019-09-09

미국이 필요한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

강희룡 서예가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834년 아시아지역에 파견되었던 미국의 로버츠 특사가 조선과도 교역할 가능성이 있다고 귀국보고를 하면서부터이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1845년 Z.프래트 의원이 조선에 대한 통상사절 파견을 제기한 데서 비롯된다. 양국이 공적으로 접촉할 계기가 된 것은 ‘제너럴 셔먼호사건’과 신미양요이다. 일본 주재 청국 외교관 황준헌이 조선의 외교진로에 관해 쓴 ‘사의조선책략(1880)’이 입수되어 이것이 어전회의에 상정된 뒤부터 미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양국관계가 호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략이 가장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의 남침을 막는 방아책(防俄策)으로 중국, 일본, 미국과 연대함으로써 자강책을 도모하라는 것이다.오늘날 미국은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 세계에서 제2의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잡는 것을 우려하는 미국에게 한국의 지리적 위치는 전략적 요충지로 적절하기에 한미동맹관계를 통해 동아시아 정세를 주도함으로써 세계 패권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리처드 에머슨의 ‘교환이론’에 따르면 한미는 서로에게 얻고자하는 가치 있는 자원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존재이다. 한미동맹의 두 나라간 결합관계를 설명하려면 북한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국가안보의 안정성을 보장받으며, 또한 이 동맹으로 한국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확연하게 떨어진다. 교환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동맹은 불균형관계이다. 이런 상황은 서로 교환하는 자원의 필요성부분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자원을 한국이 좀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한국에 사드배치의 미국요구는 미국이 힘의 우위에 있다는 이유에서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국가 간의 불균형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미동맹의 불균형관계를 균형화상태로 실행하려면 미국으로부터 받는 자원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이며, 그 대안으로는 국방력을 높이는 것이다. 즉 미군 없이도 자체국방력으로 북한의 남침을 억제할 수 있다면 미군이 제공하는 안보의 안전성이라는 자원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주한미군 역사에서 미군을 용병으로 운운하는 트럼프 대통령 재 임기는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에게 동맹의 개념이 희박하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평택 캠프 험프리는 중국을 코앞에서 제압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기지 건설비의 90%인 97억 달러를 한국이 부담했다. 트럼프 요구대로 되면 동북아의 요충지에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면서 매년 수 조원을 한국에 부담시키는 셈이 된다.연간 ‘방위비분담금 50억 달러(약 6조원)’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천박한 장사꾼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것은 물론 피로 맺은 동맹국과 동북아의 안정을 파괴하는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9-09-09

‘커다란 도약’ 있게 한 ‘작은 발걸음’에 대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어떤 성공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성공을 있게 한 고난과 역경의 과정은 가물가물하고 성공의 첫 발자국과 감회의 한마디만 깊게 각인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1969년 7월 16일 지구를 떠나 7월 21일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른 도약이다”라는 말과 함께 흑백 영상과 몇 장의 사진으로 길이 남는다. 그가 어떻게 그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는지, 뚜렷한 기억과 별다른 호기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그 놀라움이,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던 그 감동적인 순간이 너무나 강렬하여 당연히 준비된 선물처럼 그 성공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퍼스트맨’은 성공을 있게한 첫번째 실패에서 시작한다. 성공을 위해 몇 번의 실패가 있었으며, 거대한 프로젝트 속에서 한 인간이 느꼈을 감정은 어떠했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커다란 도약’보다는 ‘작은 발걸음’에 집중한 영화다.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하기까지 아폴로 1호부터 10호가 있었으며, 그 이전에 제미니 1호부터 12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있었던 미항공우주국의 초음속 실험용 비행기 X15에 탑승해 시험비행을 하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된다.1957년 소련이 쏘아 올린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는 냉전시대 미소의 우주를 향한 경쟁의 도화선이 된다. 이후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최초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하게 되자 우주 경쟁에서 계속 뒤쳐지던 미국은 “1960년대 안에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바로 아폴로 계획의 시작이 된다.이를 위해 선결해야할 과제는 엄청난 무게를 지구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막강한 추진력을 가진 로켓을 개발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주 공간에서 본선과 탐사선의 랑데뷰, 도킹, 분리 등의 우주 비행기술을 발전시켜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시행된 것이 제미니 계획이었다.영화는 닐 암스트롱과 연관된 우주 계획의 과정을 보여준다. ‘커다란 도약’을 있게했던 동료의 사망과 개인의 두려움, 과정의 어려움이 제미니1호에서부터 12호, 아폴로 1호에서부터 11호까지 우주선의 이름과 함께 점증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좁은 우주선에 몸을 구겨넣은 모습. 커다란 진동과 거대한 소음 속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모습. 죽을 수도 있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는 여정을 앞두고 차마 어린 두 아들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커다란 도약’을 있게 했던 한 명의 인간이 내딛었던 ‘작은 발걸음’의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우리는 50년 전에 있었던 아폴로11호의 성공을 알고 있다. 익숙한 이야기에 가려졌던 한 인간의 고독한 여정 앞에서 달에 착륙해 첫발을 내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환희의 기쁨, 성공의 안도보다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가슴 먹먹함이 앞선다.영화 ‘퍼스트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영화다. 우리가 인류의 달 착륙 과정을 지켜보던 위치에서 함께 달에 착륙시키는 영화다. 그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퍼스트맨’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견뎌야했던 엄청난 무게의 고통을 안고 지구로 귀환한 ‘퍼스트맨’이었음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영화‘퍼스트맨’은 네이버영화, 구글플레이,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19-09-09

젖은 눈빛이 전하는 말… 영천 영지사(靈芝寺)

비가 지나간 뒤 숲은 온통 젖어 있다. 도랑물이 콸콸 젖어 흐르고 이끼 낀 부도들도 잿빛으로 젖어 있다. 젖은 나무들이 천년고찰의 일주문을 대신한다.영지사의 주차장은 키 큰 참나무 숲이다. 세속을 비켜 앉은 무념의 기운이 지배하는 소박한 곳,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발 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를 담담히 돌아앉아 고요히 참선하는, 그런 절이다.영지사는 신라 무열왕 때 의상대사가 웅정암(熊井庵)이라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때 중창하면서 영지사(靈芝寺)로 바뀌었다. 영조 50년에 중수하였다는 유적비와 지금까지 사찰을 지켜 온 주지 스님들의 부도 네 기가 나란히 초입을 지킨다.가난한 민초들의 등 휜 일생을 말없이 보듬으며 함께 늙어갔을 법한 절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마중을 나온다. 느릿느릿 한가로운 걸음걸이와 방문객을 맞는 애교가 보통이 아니다. 고양이의 안내를 받는 사이 먼저 온 불자와 차담을 나누던 스님이 인사를 건네 온다. 편안하다. 절도 스님도.절은 작지 않다. 공사중이라 그런지 숙환을 앓는 노인의 젖은 눈빛 같은 안쓰러움이 묻어난다. 그 중심을 범종각(泛鐘閣)이 지키고 있다. 누하진입식(樓下進入式) 형태를 갖췄는데 현판에는 루(樓)가 아닌 각(閣), 불경 범(梵) 대신 들 범(泛)자를 쓴 까닭은 옛날에 이곳은 물 위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타원형으로 생긴 법고도 특이하고 종을 치는 당목의 나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운판과 목어, 갖출 거 다 갖춘 범종각이 어딘지 외롭고 허전해 보인다. 시방세계를 깨우치며 지옥중생을 구제한다는 법고는 속울음 삼키듯 안으로 우는 법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범종각 위를 서성이며 한 때는 찬란했을 영지사의 옛날을 그려본다.해질녘 절간에서 울리는 타종 소리나 노을을 등에 업고 댕강대는 교회의 종소리는 생각만 해도 엄숙하고 평화롭다. 타종 소리는 종과 당목, 온도와 습도, 절간의 분위기에 따라 그 울림이 다르다. 영지사의 타종소리가 궁금하다. 그리운 것들 떠나보내느라 한철 꽃잎 지듯 아플 것 같다. 쇠줄과 당목을 연결하는 무명천의 낡고 쓸쓸한 눈빛 위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머물다 갔을까.대웅전 법당문은 굳게 닫혀 있다. 기도하는 불자 대신 여름풀들이 드문드문 앞마당을 지키고 고양이와 강아지가 삼층석탑 주변을 돌며 장난을 친다. 일상적인 그들의 평화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인간만이 불성을 가진다는 말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양측 문이 잠겨 있어 조심스럽게 어간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도하는 불자보다 스님 홀로 예불 보는 시간이 많을 것 같은 작은 법당, 문 여는 소리에 숲과 바람이 먼저 귀를 세우고, 축원을 담은 불자들의 주소와 이름이 천장에 매달려 무심히 바라본다. 이 찰나적 순간에도 계절은 오고 한동안 익숙했던 계절은 또 사라져 갈 것이다.주지 스님이 가리키는 곳에 작은 악착보살이 줄을 잡고 반야용선에 오르고 있다. 악착(齷齪)스럽다는 강한 말의 이미지와는 달리 귀엽고 천진한 표정이다.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꽉 찬 비움의 상태임을 말해 주듯이. 흔하게 쓰는 ‘악착스럽다’는 좋은 의미를 가진 절집 용어였던 것이다.어원은 이렇다. 불심 깊은 한 여인이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에 오르기로 했는데 그만 늦고 말았다. 반야용선을 타지 못해 발을 구르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이 밧줄을 내려주자 여인이 악착같이 매달려 반야용선에 오르게 되었다. 용맹정진 수행하라는 뜻으로 악착보살은 그 오랜 세월 법당에 매달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권위와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성천 주지 스님의 미소는 소탈하다. 삶의 철학도 분명해 보인다. 드러나는 것이 실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기에 나는 긴장을 놓지 않는다.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부질없는 분별심을 습관처럼 즐기고 있다.그럴수록 스님은 여유롭고 나는 점점 방향을 잃고 미궁을 헤맨다. 고양이 요요가 소리도 없이 잔디밭을 지난다. 그 발걸음과 스님이 닮았다고 생각할 때, 스님이 말씀하신다.“언행이 실망스러운 스님을 만나면 감정을 소진하지 말고 ‘스님, 초심으로 돌아가십시오’ 하고 마음으로 기도하세요.”조낭희수필가와르르 아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산사를 찾아다니면 번뇌가 줄어들 거라 믿었던, 어리석음을 위한 송가이기를 바란다. 허탈하다. 처음 출발선 그 자리에서 여태 맴 돌고 있는 나를 보았다. 무욕(無慾)의 가벼움은 멀고도 멀다. 절집을 찾아다닐수록 허기졌던 이유를 알 것 같다.스님이 어떤 분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음을 비운다는 건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리라. 일상의 진리 앞에서 나는 지나치게 얕았거나 깊었다. 마음과 마음을 드나들 수 있는 바람 한 줄기 내 안에 재워두고 살고 싶다.낮은 창문을 기웃거리던 은행나무 그림자가 넉넉해지는 오후, 고양이 요요의 몸짓도 느려지고, 젖었던 내 발걸음의 뒤축도 한결 가벼워 온다. 영지사는 여전히 돌아앉아 참선 중이다.

2019-09-09

송이를 귀히 여겼지만다른 버섯을 멸시하지는 않았다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는 표현이 있다. 능이버섯, 표고버섯, 송이버섯 순서라는 뜻이다. 엉터리다. 근거는 없다. 언제 누가 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이런 문구는 없다. 표고버섯, 석이, 목이버섯, 싸리버섯[鳥足茸, 오족이]은 기록에 있지만, 능이버섯은 없다. 능이는 2000년 이후 나타난다.능이나 표고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이런 순서매김은 없었다. 우리 선조들은 버섯뿐만 아니라 음식물, 식재료의 순서를 정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식은 진귀한 식재료를 구하지 않는다. 모든 식재료를 귀하게 여긴다. 이파리부터 뿌리까지 모두 귀하게 여긴다. 한식의 길이다. 생선의 부위를 세밀하게 가르고 그 부위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은 일본 음식의 방식이다. 버섯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선조들은 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기긴 했지만 다른 버섯을 멸시하지는 않았다. 버섯의 순서를 정하는 것은 터무니가 없다.조선 시대 문신 계곡 장유의 시 ‘적상산의 승려에게 지어준 시’에 버섯이 나타난다.부처님 귀 모양의 향긋한 버섯/고목나무 등걸에서 커 나왔는데/따다가 솥에 넣고 우려낸 그 맛/연하고 부드럽기 고기보다 훨씬 낫네(계곡 선생집_25권)‘부처님 귀 모양의 향긋한 버섯’이 정확히 어떤 버섯인지는 알 수가 없다. 송이버섯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고목 등걸에서 컸다고 했다. 송이버섯은 나뭇등걸에서 자라지 않는다. ‘적상산 승려에게 주는 시’라고 했다. 적상산은 전북 무주의 산이다. 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의 대량 산지는 아니다. 계곡은 ‘연하고 부드럽기가 고기보다 낫다’고 추켜세웠다. 송이버섯 향이 좋긴 하지만, 가장 으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른 버섯도 좋다. 다만 송이버섯은 점잖은 솔 향기가 나니 좋다는 정도였다.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긴 이유는 바로 ‘향’ 때문이었다. ‘송이(松茸)’는 ‘소나무 버섯’이다. 소나무의 향기를 지닌다.한반도에 가장 흔한 나무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한겨울에도 ‘독야청청’한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민족 기개다. ‘송(松)’은 ‘목(木)+공(公)’이다. 나무 중의 귀족이요, 으뜸이다. 한반도에는 흔하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의 향과 친숙하다. 유럽인들은 송이버섯을 피한다. ‘테라핀 냄새’가 난다. 소나무의 독특한 향을 싫어한다. 송이버섯도 피한다. 우리는 다르다. 귀하지만 흔한 나무, 소나무 아래서 자라고, 소나무 향을 고스란히 지녔다. 송이버섯은 귀하다. 송이버섯은 죽은 나무, 썩은 나무에 기생하지 않는다. 대부분 버섯은 죽은 나무에 기생하거나, 부패한 흙에서 자란다. 더러 생나무에서 자라는 버섯도 있지만, 송이버섯처럼 아예 맑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버섯은 귀하다. 송이버섯은 거름이 강한 땅에서도 자라지 않는다. 송이버섯을 귀하게 여긴 또 다른 이유다.음식, 식재료는 대부분 맛으로 가른다. ‘맛있다’ ‘맛없다’로 가른다. 송이버섯은 맛이 아니라 향이다. 고려의 문신 이규보(1168~1241년)가 송이버섯에 대해 남긴 시가 있다. 송이버섯을 정확히 설명한다. 제목은 ‘송이버섯을 먹다’이다.버섯은 썩은 땅에서 나거나/아니면 나무에서 나기도 한다/모두가 썩은 데서 나기에/흔히들 중독이 많았다 하네/이 버섯만은 소나무 아래에서 나/늘 솔잎에 덮였었다네/소나무 훈기에서 나왔기에/맑은 향기 어찌 그리도 많은지/향기 따라 처음 얻으니/두어 개만 해도 한 웅큼일세/내 듣거니, 솔 진액 먹는 사람/가장 빨리 신선 된단다/송이도 솔 기운이리니/어찌 약 종류가 아니랴이규보는 약 800년 전, 고려 후기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송이버섯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송이버섯 식용의 역사는 길다. ‘삼국사기’에, “신라 성덕왕(702~737년) 때 왕에게 송이버섯을 진상했다”는 내용이 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송이버섯 이야기다. 무려 1,300년 전의 기록이다. 송이버섯이 성덕왕 때 갑자기 나타났을 리 없으니 식용의 역사는 그보다 앞선다고 추정한다.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고려 시대에도 송이버섯에 관한 내용은 꾸준히 나타난다. 고려 말기 문신 근재 안축(1282~1348년)의 시는 제목이 ‘송이버섯[松菌, 송균]’이다.서늘한 가을 지팡이 짚고 소나무 사이 걷다가/손으로 따서 새로 난 것 먹어 보니 맛이 좋구나/관가의 좋은 반찬[粱肉, 양육]도 향이 이만 못하여/구름 보고 젓가락 던지며 청산에 부끄러워하네(근재집 제1권)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은 소나무 숲에서 자란다. 맛은 어떠했을까? 근재는 송이버섯의 ‘맛’을 ‘향’으로 설명한다. ‘양육(粱肉)’은 좋은 음식 혹은 ‘쌀밥과 고기’다. ‘양(粱)’은 기장(혹은 수수)이다. 중국에서는 손님이 오면 기장밥을 내놓았다. 기장밥이 일상 최고의 음식이었다. ‘양육’이라고 표기하고, ‘쌀밥과 고기’라고 해석하는 이유다. ‘양육’은 최고의 음식이다. 송이버섯의 향은 ‘관가의 양육’을 넘어선다. 조선 시대의 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송이버섯을 설명한다. 조선 중기의 문인, 관료 고산 윤선도(1587∼1671년)의 칠언절구다. 시의 끝부분에 “이 시는 송이버섯을 보내준 것을 사례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솔 사이에 자란 식물 맛[嘉味]이 좋아서/쓰지도 시지도 않고 맵지도 않아/이파리, 줄기 없어도 제대로 몸을 갖췄고/싱그런 향기에 정신이 벌써 상쾌해라/오랜 벗이 성중의 객에게 선물을 보냈나니/부엌 아낙 도마 먼지 닦느라 바쁘다/만약 장공에게 한 젓가락 맛보게 한다면/오회 강의 가득한 순채를 어찌 말하리오송이버섯은 ‘가미(嘉味)’다. 좋은 맛, 진미다. ‘프리미엄 향’이다. “이파리, 줄기 없이 제대로 몸을 갖췄다”는 표현은 절묘하다. 잎도 줄기도 없지만 여느 식물을 앞서는 향이 있다.‘장공’ ‘오회 강의 가득한 순채’는 설명이 필요하다. 장공은 진[西晉, 서진]나라 제왕(齊王) 시절, 동조연(東曹掾)으로 벼슬생활을 하던 장한(張翰)이다.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문득, 고향 강동(江東) 오중(吳中)의 순채 국과 농어회를 떠올린다. 장한은 그길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순갱노회(蓴羹鱸膾)’의 고사다. 순갱노회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로망이었다. 고산은 송이버섯이 ‘순갱노회’를 앞지른다고 말한다.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의 주산지는 소나무가 흔한 곳이다. 소나무나 그 지역의 토질, 바람, 습도, 온도, 강우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송이버섯의 생산량과 품질을 정한다. 송이버섯은 자연산이다. 실험실에서 ‘일부’ 양식에 성공한 적도 있지만 ‘실험실의 성공’에 불과하다. 일본과 한국 모두 ‘양식 재배’는 여전히 힘들다.생산량, 품질로는 경북이 가장 앞선다. 전국 생산량의 40-50%가 경북 영덕 몫이다. 봉화, 청송 역시 송이버섯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송이버섯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경북 울진, 영덕, 봉화, 영양, 문경, 영주 그리고 태백산맥의 끝자락인 영천 등에서 송이버섯을 생산한다. 경북 생산량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한다.송이버섯은 4단계로 분류한다. 상품 1, 2, 3등급이 있다. 등외품도 있다. 1등품 기준으로 한때 1Kg, 100만 원을 넘긴 적도 있지만 대략 30-40만 원 선이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송로버섯(트러플)에 비하면 낮은 가격이라지만 여전히 비싸다. 2등품은 크기가 작고, 갓이 일부 핀 것이다. 3등품은 생장을 멈춘 생장정지품 혹은 갓이 1/3 이상 핀 것이다.가격은 한결 싸지만, 실제 식탁에서 느끼는 향은 1등품과 큰 차이가 없다. 다행히, 냉장 보관의 경우 향도 큰 차이가 없다. 봉화, 영덕에서는 ‘송이라면’을 내놓는 집들도 있다. 송이라면, 송이버섯 덮밥의 경우, 굳이 1등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도 마찬가지. 선물용이 아니라면 굳이 가격이 높은 1등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9-09

K-푸드

드라마·영화나 K-팝 같은 콘텐츠로 인한 한류열풍 만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게 ‘K-푸드’ 열풍. 한국음식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미국시장에서 불고 있다.과거 미국에 알려진 우리 음식은 불고기와 김치 정도였고, 한국인 이민자들의 주요 정착지인 하와이나 로스앤젤레스(LA) 코리아타운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빵, 라면, 만두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 대표 브랜드를 미국 어느 지역에서나 만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맛이 미국을 물들이고 있다.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브랜드는 CJ제일제당의 만두 ‘비비고’다. 비비고 만두는 미국 코스트코에서 중국 만두 ‘링링’을 제치고 만두부문 판매 1위에 올라섰다. 링링은 미국 만두시장을 25년간 독식해 온 브랜드인 데, 미국판 비비고 만두는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부추 대신 고수를 넣은 현지화 전략으로 미국인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라면 중 매운 맛 브랜드도 인기다. 신라면, 육개장사발면 등 농심의 라면 브랜드들은 미국의 면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베이커리업계에서도 한국 맛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대표 프랜차이즈로 꼽히는 SPC는 파리바게뜨 브랜드로 미국을 공략 중이다. 2005년 LA 코리아타운에 미국 1호점(웨스턴점) 오픈을 시작으로 맨해튼 핵심상권, 캘리포니아 주의 대표적인 주택가 등에 진출했다. 풀무원은 국내에서 생산한 김치를 미국 전역 대형 매장부터 슈퍼마켓까지 1만 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달 29일‘꼬북칩’(미국명 터틀칩스 ‘TURTLE CHIPS’)을 미국 코스트코에 입점, 본격적으로 미주시장 공략에 나서게 됐다. K-푸드의 한류열풍 합류는 세계를 한 울타리로 만드는 호재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9-09